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석 데뷔?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석 데뷔?
  • 최소연
  • 승인 2018.05.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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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을 보며
대한민국청와대
대한민국청와대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한국발 기사와 미국발 기사 양쪽 다 조금씩 챙겨보고 있다. 한국발 기사에서는 회담 배경을 비롯한 회담의 의미를 나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디테일들을 얻고, 미국발 기사에서는 미국정부의 동향 약간과 미국인들의 시각을 엿본다. 특히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미국발 기사들은 곧바로 올라오는 수많은 댓글을 통해 생생한 반응을 볼수 있어서 흥미로운데, 생각보다 상식적인 댓글도 제법 있다. 이 회담의 성과는 남한 문대통령의 공이다, 트럼프가 한 일은 하나도 없으며 이 회담의 성공은 모두 남한측의 노력 덕분이다, 같은 댓글들을 꽤나 여럿 보았다. 

그런데 회사에 가서 동료들 몇몇과 이야기해 보니, 새파랗게 진보적인 이들은 다들 skeptical하다. 직접적으로는, 김정은이 몇달 만에 미사일 발사를 중단할뿐 아니라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는 것 자체가 곱게 보이지가 않는 것이 큰 이유이다. 여전히 '악의 축'이자, 간헐적인 핵무기 개발 뉴스 혹은 미사일 발사 뉴스로 미국을 위협(?)하는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간접적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의심스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긍정적일 수 있는 장면에 등장해 숟가락을 얹을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이들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것 같다. 대도시에 사는 많은 미국인들이 마음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대통령에게는 어떤 성공의 스토리도, 차기 선거에 도움이 될 어떤 빌미도 주고싶지 않은 마음이겠지. 시민권은 미국에 둔, '그들' 중 한사람드로서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지난 이십 여년 간 보여준 북한의 변덕과, 그에 맞먹는 미국의 변심, 그 사이 남한 내부에서 정치세력의 교체 등 남북간 세세한 역사들을 난 자세히는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을 희망적으로 볼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미국 기사에 다 나오지 않는 디테일' 때문만은 아니다. 김정은과 문대통령 사진 뒤에 숨은, 일 년 가까운 시간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발로 뛰고 계획을 고치고 또 고쳤을 문대통령과 그 스태프들의 수고가 보였고, 무엇보다 우직하게 이 일을 추진해온 문대통령을 나 자신이 믿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외교적 기교보다는, 문대통령이 여지껏 보여준 행보들이, 직접 쓴 투박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연설문들이, 새로운 방향에서 제시되는 몇몇 정책들이, 무엇보다 세월호 가족들과 걸어온 시간들이 준 신뢰 때문 아닐까.  

그런데 문대통령과 그 스탭들의 노고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겐 여전히 김정은과 트럼프 둘 사이의, 혹은 두 나라의 문제일 뿐이다. 그 두 나라의 관계 진전에 있어서, 난 미국인들이 정말 김정은을 위협으로 느끼는지 skeptical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해당사자이자 역사와 현실 속의 주체인 남한이 운전석에 앉은 것을 이들이 정확히 인지하는지, 적지 않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떠안고도 큰 걸음을 뗀 두 당사자들의 현실을 여전히 그들만의 고정된 시각으로 보지는 않는지 정직하게 묻고싶다. 

이들의 skepticism은 뒤로 하고, 아마 김정은이 월드무대 데뷔도 이런 비슷한 신뢰가 생겨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이유있는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김정은의 월드무대 데뷔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여지껏 남북, 북미 관계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던 남한의 데뷔이다. 운전석 자리를 트럼프, 아니 미국에게 계속 내주지 않고, 그대신 자신있게 그 자리를 잡아가는 남쪽 정부가 앞으로 쭉 있을 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길 기대해 본다. 판문점 회담의 만찬과 쇼가 멋져보였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의 아이스크림도 넉넉히 대접하는 장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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