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만 두고 한국 갈까?
우리, 아빠만 두고 한국 갈까?
  • 엄경희
  • 승인 2018.04.08 22: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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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 맘 엄경희의 사우디 통신
"우리, 아빠만 두고 한국 갈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산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언제까지 더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도서관이나 교육 인프라가 거의 전혀 없다 할 수 있는 사막에서, 자연과 책을 커다란 두 축으로 시작한 홈스쿨을, 그것도 다섯째까지 출산하며 계속해 유지해 오기란, 사실상 나에게 인간 승리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하의 대학 입시가 진지해지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아빠만 사우디에 두고, 나머지 가족은 그냥 한국에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처음에는 아빠와 떨어진다는 것에 말도 안 된다고 격렬하게 반응하던 아이들이, 손쉽게 떠올라지는 한국에 가면 좋은 점들을 몇 가지 던져주자 금세 갸우뚱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한국에 가면 도서관이 있어 마음대로 책도 볼 수 있고, 성하 경우 대입 관련 교재나 정보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원하면 대학 청강도 들어볼 수 있고, 다른 홈스쿨 가정과 교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산에 실컷 갈 수 있고, 아두이노 부품도 원할 때마다 구할 수 있고, 원하는 동물도 다 키울 수 있고, 맛있는 한국 음식도 마음껏 먹고, 눈도 볼 수 있고,벌레도 실컷 잡을 수 있고, 음악, 태권도, 미술 학원 등 가고 싶은 학원도 얼마든 갈 수 있고, 이제 유럽 여행은 많이 다녀서 더 안 다녀도 될 것 같고...

저마다 잠깐 머리를 굴리고 나름의 계산을 끝마치더니 만장일치로 그럼 한국 가자~~~!!!” 한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남편은 아이들 교육과 삶을 생각해 차마 반대가 할 수 없으니, “그래. 그렇게 하자. 아빠도 여기 일 열심히 마무리 해 놓고 빨리 돌아가도록 노력할게.”

남편은 그렇게 아빠답게(?) 아무렇지 않듯 담담하게 말해놓고는, 저녁 내내 말이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덮어쓴 듯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처량함그 자체였다? 누워 자는 모습이 흡사 시체같았다.

얘들아, 아빠 좀 봐라!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니? 아빠만 두고 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랬더니 아이들이 또다시 한목소리로,

"그래, 우리 그냥 여기서 살자~~~!!” 하며 마음을 바꾼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슬하 윤하와 놀아주는 듯 보였다. 마트에 가서 평소에 비싸다고 눈치 주던 채소들을 한 아름 사 왔다. 평소 먹던 주스보다 두세 배는 비싼 새로운 주스를 잔뜩 사 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리 그냥 같이 살자~~”

하룻밤을 못 넘기고 사정하는 남편, 평소 남편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적지 않은데, 뭔가 초특급 핵무기가 손에 들어온 이 기분은 뭐지? 흐흐흐

 

글쓴이 엄경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살며 다섯 손가락 꿈나무 5남매를 기독교 독서 중심의 홈 스쿨하는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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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민 2018-05-03 01:39:29
ㅜㅜ 5남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