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사람들
사마리아 사람들
  • 이익상
  • 승인 2018.04.06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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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상 목사의 이스라엘 따라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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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722 BCE, 왕하 17:24-41)과 함께 북 왕국에 살던 사람 모두가 국외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텅 빈 사마리아 지역은 이방인들로 채워졌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사마리아 지역에는 여전히 북 왕국의 사람들(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그리심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고 살고 있었습니다.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9.290). 그러다가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던 시대에 이르러 세겜을 중심으로 옛적부터 있었던 토착 종교의 관습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서로 섞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유다의 사람들과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이지요.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대하기 시작했거든요. 적어도 이것이 요세푸스가 사마리아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의 갈등은 하나님이 주신 땅 넘어,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였던 프톨레미 1세가 팔레스타인 땅을 정복하면서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이집트로 포로 삼아 끌고 갔습니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 기록된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이집트 땅 안에 사마리아라고 이름 지어진 마을이 있었다고 하니, 이집트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향력도 대단한 듯합니다. 그런데, 이 둘의 종교적인 갈등은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미 2세의 시대에 온 세계의 사상을 하나로 모아보리라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그리스어로 온 땅의 철학과 사상을 번역하는 일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계획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의 신앙의 기준인 구약의 두루마리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토라라고 불리는 율법이 조금씩 다른 두 가지 판본이 있는 겁니다. 유다 사람들이 읽는 토라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읽는 토라가 아주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조금씩 있는 전통의 차이를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프톨레미 2세는 유다의 지도자들과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을 놓고 이 문제에 관해 토론을 붙였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앞에서 누구의 기록이 더 참된지를 놓고, 그리고 예루살렘이 여호와 하나님 종교의 중심지인가, 아니면 그리심산이 그러한가를 놓고 신학적인 언쟁을 벌인 것이지요.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3.3.4).

4. Now it came to pass that the Alexandrian Jews, and those Samaritans who paid their worship to the temple that was built in the days of Alexander at mount Gerizzim, did now make a sedition one against another, and disputed about their temples before Ptolemy himself. The Jews saying, that, according to the laws of Moses, the temple was to be built at Jerusalem: and the Samaritans saying, that it was to be built at Gerizzim. They desired therefore the King to sit with his friends, and hear the debates about these matters; and punish those with death who were baffled. Now Sabbeus and Theodosius managed the argument for the Samaritans: and Andronicus, the son of Messalamus, for the people of Jerusalem. And they took an oath by God and the King to make their demonstrations according to the law. And they desired of Ptolemy, that whomsoever he should find that transgressed what they had sworn to, he would put him to death. Accordingly the King took several of his friends into the council, and sat down, in order to hear what the pleaders said. Now the Jews that were at Alexandria were in great concern for those men, whose lot it was to contend for the temple at Jerusalem. For they took it very ill that any should pretend to take away the reputation of that temple; which was so ancient, and so celebrated all over the habitable earth. Now when Sabbeus and Theodosius had given leave to Andronicus to speak first, he began to demonstrate out of the law, and out of the successions of the High Priests, how they every one in succession from his father had received that dignity, and ruled over the temple; and how all the Kings of Asia had honoured that temple with their donations, and with the most splendid gifts dedicated thereto. But as for that at Gerizzm, he7 made no account of it, nor regarded it as if it had never had a being. By this speech, and other arguments, Andronicus persuaded the King to determine, that the temple at Jerusalem was built according to the laws of Moses: and to put Sabbeus and Theodosius to death. And these were the events that befel the Jews at Alexandria, in the days of Ptolemy Philometor.

유다 사람들의 토라,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모세 오경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유다 사람들) 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권위가 있다.”는 선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의 토라는 참되지 않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의 학자들을 살해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땅 바깥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는 곧 팔레스타인 땅으로 전해졌고, 단지 종교적인 입장의 차이를 넘어서, 그 둘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리고 만 것이지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앙금이 결국 헤롯 대왕이 죽은 뒤, 12년째 되던 해 극단적인 행동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 참조). 사마리아 사람들은 네 개의 믿음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한 분 하나님이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서 오로지 단 한 명의 예언자만을 보내주셨는데, 그가 모세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모세 이외에는 수많은 예언자가 있지요). 세 번째는 거룩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오로지 모세 오경이고 그 모세오경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오경이라 불립니다. 이들은 흔히들 말하는 예언서, 역사서, 성문서, 지혜문학 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배의 성소는 그리심산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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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52가정(대략 800)의 사마리아인들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습니다. 기원후 4-5세기까지만 해도 그 수가 대략 150만명이었지만, 많은 수가 이슬람과 기독교로 개종을 했거든요. 그러나 끝까지 사마리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지킨 이들의 대부분은 그리심산과 홀론(Holon)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홀론에 사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도 자기 집을 두어서 스스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매년 유월절이 되면, 이 모든 가정이 한 곳. 그들이 말하는 오직 유일한 예배 장소인 그리심산에 모여서 유월절 양을 잡으며 제사를 드리며, 한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한 민족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글쓴이 이익상 목사는 성서학 연구소 Biblia (비블리아http://biblia.co.il)대표이다. 성서학연구소 BIBLIA는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성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돕는 비영리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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