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이거 명백한 가해다
가스라이팅, 이거 명백한 가해다
  • 서은호
  • 승인 2018.04.05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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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최근에 종종 듣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 표현의 유래는 1938,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편의 연극에, 남편이 온갖 거짓말과 상황 조작으로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내용을 담은 한 편의 연극이 있었습니다, 그 연극 제목은 가스등’(Gaslight)이었습니다. 1944년 영화로 제작되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Dr. Robin Stern)박사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한 것 같고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어 그 사람의 말을 믿게 되는 병리적 심리 상태가스등 이펙트‘(The Gaslight Effect)로 규정했습니다. 일상에서는 학대수법정도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 편집자 주

여자 선배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본 적이 있다. 그는 교묘하게 나를 깎아내리고 비방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게 할 만한 말과 행동을 반복했다. 악의가 있다는 걸 바로 인지하고 방어해야 했는데. 아니겠지 내가 오해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사실 나는 인지했지만 내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선해(善解)를 했다. 내가 생각한 그게 아닐 거라고 다만 되뇌었다. 내가 기독교 색채가 짙어서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식의 교육을 받았기에. 상대방의 비정상적 행동에도 처음에는 내 탓이려니 한 것이었다.

이런 패턴이 자꾸 반복되자, 나는 고민 끝에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내가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그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네가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다며 나를 미친년으로 만들었다. 똑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고 착한 척을 했다. 내가 해명을 요구하면 그 상황을 부인하면서 거짓말을 했다. 그는 내가 나의 장점으로 여겨지고 내가 칭찬받는 모든 요소를 다 부정하고 비방하면서 깎아내렸다. 주변 사람의 실명을 다 거론하며 '모두가 널 싫어한다'고도 했다.

이 상황을 가스라이팅이라고 인식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처음엔 나도 정말 내가 문제인가 생각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잠깐은 내가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부정적인 얘기를 세뇌하듯이 지속해서 말했다. ‘내가 다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내가 바닥이고 싫으면 상대를 말지. 자꾸 내게 말을 붙이고 불러내고 나와 관련되려고 했고, 남들 앞에선 친한 척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이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헛소리는 안 믿었다. 내가 날 의심하지 않았다는 거다. 왜 그럴 수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학교 건강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 전문의가 오는데, 상담 받으러 가볼까도 고민했었다. 내가 날 불신해서 현실감각이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미 중심을 잡았지만,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잘못되길 바랄 순 없으니 잘 돼서 내 시야에서 사라지길 빌었다. 착한 사람들이 왜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덜 착했던 게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비결이었던 것 같다. 악의는 악의다. 빨리 눈치채고 벗어나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믿고 착하기만 하면 곤란하다. 내가 자꾸 나를 의심하고 상대방 거짓말을 믿고 그러다 현실감각이 무뎌졌으면 어땠을까? 다행히 나는 심하게 시달린 정도로 끝났지만. 이거 명백한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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