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지지 않는 삶을 가지고 기다리는 부활
즐겨지지 않는 삶을 가지고 기다리는 부활
  • 이진호
  • 승인 2018.03.31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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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평범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싶지만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존재와 의미를 지닌 걸까? 나는 무엇일까? 도대체 삶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이리 괴로운 걸까?

내가 나답지 못해서 자꾸 무엇을 채우길 원한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데, 그 삶을 표현해내기 위한 자격이 요구된다. 살아감에 요구가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모순을 감내하며 산다. 끊임없는 사회의 닦달과 그 무엇이라는 시선 사이에 위치한 나는 라는 것과 소유라는 것의 양가감정을 껴안은 채 산다. 온전히 하나만 살 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을 것을. 나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나도 멋들어지게 살고 싶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먹을 것 먹고, 누릴 것 누리고, 누군가와 웃으며 거리를 걸어가며 삶을 누리고 싶다. 모두 다 생각하는 평범한 삶. 그런데 평범을 위해 끊임없이 나를 소비해야 한다. 나 자체를 살아가고 싶은데 나를 소비해야 한다니.

태생부터 경쟁을 두려워하고, 겁이 많으며, 불안함이 가득한 나는 언제나 실존의 암흑 속에서 떨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너무나도 비루한 현실.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그 무엇. 나는 무엇이 있을까? 그 무엇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데, 나는 그 무엇에 갇혀 살아가는 감옥에 삶을 살아간다.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삶은 희락을 주지 않고, 도망간다. 모자람인지, 아니면 불공평인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언제나 고민하는 자가 실패한 자라는 명패를 뒤집어씌운다. 누군가는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그 안에서 만족함을 영위하라고 말하지만 쉽지 않으니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나로서, 그 무엇이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지만, 그 무엇이 나를 언제나 위압하고, 가둬둔다.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만큼. 더 이상의 공부도, 더 이상의 운동도, 더 이상의 실천도 의미 없다고 생각될 만큼의 부조리와 불합리, 허무가 가득 찬다. 어찌 보면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기에, 존재로의 도피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희망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을 거다. 나는 그만큼 겁쟁이고, 의지도 박약하고, 힘도 없는 미약한 존재. 살아가기 위한 앎이 이제는 힘이 되어 버렸다.

내 태생은 무엇인가 도전하면서 성취하는 성격이 아니다. 경쟁하고, 시험하고, 만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저항적이지만 그만큼 고민과 생각에 밤낮 못 이루는 비루한 존재다. 관계가 다 끊어진 그 상황에서, 정보가 돈이 되는 사회에서, 정보가 힘이 되는 사회에서, 진실한 관계와 삶을 영위하고, 존재가 발화하는 지혜가 한낱 지식의 도매상으로 팔려버리는 이 순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천한 인간이다. 누군가는 열정이 없다. 그 시간에 고민하지 말고 뛰어라. 만나라.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도 잘 안되는 사람이다. 그걸 보고 열정이 없다고 하지 마라. 열정이 없으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나는 죽을 만큼 고민하면서 산다. 그래. 내 자체에 대한 자존감, 믿음이 없으니 도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무엇인가 편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태생이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삶의 영위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게 나니까

불안하다. 죽을 것만 같이 불안하다. 생각을 멈추고 싶은데, 멈춰지지 않는다. 가뜩이나 벌레같다고 느낀 존재의 의미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모든 삶에는 그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 사회에선 그 가치를 획일적인 그 무엇으로, 다양성을 담보한 경쟁과 시험의 문턱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모습 같다. 무엇을 하고 싶어도, 무엇을 배우고 싶어도, 나를 찾아가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삶. 여기에서 삶은 더 이상의 상상력을 주지 않는다.

매번 책으로 도망갔다. 책이 날 조금이라도 살게 했다. 아침과 저녁마다 삶을 성찰하고, 기도하며 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그 모든 과정이 힘들다. 지극히 평범하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쫓아가는 것이 마음의 평온함을 준다면 따라갈 텐데, 나는 그 길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주받은 삶을 살아간다. 사회에서 형성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나의 삶을 부럽다고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비루하다고 느껴진다. 그들은 무엇이 있다. 나는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매번 어둠 깊은 곳으로 갈 때마다 죽음이 떠오른다. 망할 생존본능이 이 죽음을 이겨내기에 여태껏 살아왔다. 살아왔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저주라고 느낀다.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누군가와 경쟁해서 뒤처진 자들을 조롱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살아가고 싶다. 아무런 생각 없이. 누군가와 웃으며 술 한 잔 기울이며, 삶을 즐기고 싶다.

즐겨지지 않는 삶을 가지고 부활을 기다린다. 그 의미가 내면을 가득 채우길 바란다. 내 힘으로는 벽에 부딪히는 의미의 삶이 나를 이끌어가길 원한다. 두려움, 불안, 공포. 아니 도망치려는 아이와 같은 자에게 괜찮다고 안아줄 또 다른 자아, 사랑받은 자아, 신의 음성이 들리길 바란다. 매번 그 음성이 날 조금이라도 살아가게 이끌었지마는 너무 힘들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는 발걸음 속에 많은 자가 바쁘게 움직이더라. 느리게 살고 싶다. 처절하게 고민하고, 웃고, 헤매며 삶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삶이 생존과 결부되어 살아가고 싶다. 경쟁이라는 내재한 것에서 나오거나, 벌레 같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살고 싶다. 치열하지 않아도 인간다움을 느끼는 삶. 그 무엇이 없어도 존재 그 자체에서 인간을 노리는 삶. 인간 그 자체에서 신을 누리는 삶. 아름다운 삶이 종말처럼 나에게 다가왔으면

그래. 언제나 누군가를 탓하는 인간에게 자기를 탓하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갱신이 있었으면. 인간이 구성된 그 모든 이야기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를 나답게 만들어가는 그곳에서 끊임없는 믿음의 저항이 있기를. 그게 나에 대한 승리이기를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다.

그냥 살고 싶어 이 글을 쓴다살고 싶어서 취한다. 살고 싶어서 기도한다. 살고 싶어서 책 읽는다. 오로지 살고 싶어서.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나는 벌써 이 세상에 없을 거다.

 

글쓴이 이진호는, 일상과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일상 가운데 교회가 되고 싶고 교회로 살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살아가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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