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운동, 지지하기에 의문도 제기해야
#MeToo 운동, 지지하기에 의문도 제기해야
  • 곽건용
  • 승인 2018.03.13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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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곡해와 무고를 걸러내는 책임감도 가져야

서구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유대교와 유대인들에게 유독 약하다는 얘기는 오랫동안 해온 얘기다. 서구 기독교는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유대인을 대량학살을 자행할 때 거기 저항하기는커녕 방관하거나 묵시적, 명시적으로 거들었다는, 일종의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별 일이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내게는 이런 경험이 있다. 여기 미국에서 공부할 때 총원이 한 열 명 정도 되는 과목을 들었다. 스바냐 세미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과목에는 나이가 제법 있는 유대인 여성 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는데 학위를 받고 상위 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영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 문제가 없는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여기서 공부한 지 두 학기째인가, 그랬기에 아직 영어도 안 되고 학교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안 됐을 때였다. 한 마디로 어리버리했을 때다.

영어가 형편없이 안 됐지만 수업 시간에 암말 안하고 있으면 바보 취급 당할까봐 뭐라고 한 마디 하며 토론에 참여했는데 그 유대인 여학생이 중간 휴식 시간에 내게 오더니 내가 '구약성서'(Old Testament)라는 말을 썼다면서 자기네의 소중한 성서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는 게 아닌가. 그녀는 '모욕'(!)이란 말까지 썼다. 자기내 성서를 그렇게 부르는 건 모욕이란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쎈 말에 기가 눌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얼떨결에 미안하다고,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학생이고 교수고(교수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학생은 그녀가 유일했다) 하나 같이 '구약'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대신 대체로 '히브리 성서'(Hebrew Bible)이라는 말을 쓰더군. 지금은 이 용어가 대세가 됐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책을 자기들이 '성경'이라고 부르든 '거룩한 책'이라고 부르든 'Good Book 굿북'이라고 부르든 그건 자기들 사정이고 우린 우리대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자기들 유일한 경전(신약이 없다는 의미에서)을 내가 'Old'라는 말이 들어가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해서 그걸 모욕이라고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2차 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일에 기독교가 침묵 내지는 동조했다는, 일종의 '원죄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구약성서를 부르는 이름까지 그들에게 맞춰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내가 #MeToo 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미국 와서 30년 가까지 살고 있는 한국남자로서 어려서부터 몸에 익은 행동과 언어에 가부장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페미니스트이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그런 내가 보기에 먼 과거든 가까운 과거든, 아니면 현재든 성범죄의 피해자가 오랫동안 그걸 드러내지 못하고 숨죽이고 고통당하며 살아오다가 이제라도 사실을 드러내놓고 얘기함으로써 고통을 어느 정도라도 치유 받고, 가해자들도 응분의 처벌을 받는 길을 열어놓은 게 미투 운동이다. 내가 이런 운동을 지지하지 않으면 뭘 지지하겠는가.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는 요즘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 기사를 보면서 '이건 좀 아닌 거 아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이 성범죄에도 경중이 존재하고 오해와 곡해와 무고 등등도 존재할 게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그런 의심이 가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기 힘든 걸로 보인다. 거기 의문을 제기하면 미투 운동 전체를 반대하고 공격한다는 비판/비난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건강한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내가 얘기한 교실에서의 헤프닝은 그야말로 작은 헤프닝일 뿐이지만 현재 서구세계의 이스라엘과 유대인 정책에도 그런 원죄 의식이 전혀 작용하지 않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미국의 경우는 그보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이유가 훨씬 더 크지만 말이다.

2차 대전 때 나치를 돕거나 방관한 기독교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관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성범죄의 피해자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또 잘못 의문을 제기했을 때 피해자가 당할 이중삼중의 상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MeToo 운동이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하나마나한 결론이겠지만 매의 눈으로 잘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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