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운동에 마주해서
“Me Too” 운동에 마주해서
  • 이진영
  • 승인 2018.03.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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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목사의 복빛교회 단상
ⓒMBC

지금 한국에선 "Me Too" 운동이 한창입니다. 미국 방송계에서 시작된 운동이 한국 땅에 상륙한 후로 훨씬 더 큰 파급력을 미치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것이 연예계로 번지더니 이제 종교계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불거져 나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행과 추행들의 증언들을 듣자면, 이 악의 문제가 개인의 수준이 아니라 한국사회 뿌리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만해도 성장의 과정을 돌아보면 성에 대한 남성의 폭압적 구조에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구조적 질병으로부터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할 텐데, 이토록 깊고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악의 구조를 과연 한 번에 드러내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운동이 바다를 밑바닥에서부터 휘저어 생태계를 소생시키는 태풍처럼 하나님께서 한국 사회와 교계에 일으키신 특별한 조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운동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한동안 그 진행 과정이 과격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들도 자신을 돌아볼 자리가 작지 않습니다. 그중 한 부분에 관해서 얘기해보지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남성성에 대한 견해를 암암리에 그러나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성적인 분이시라 먼저 남성을 지으셨고 여성은 그저 그를 위한 "도우미로 제공하셨다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을뿐더러 아주 못되기까지 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하나님의 남성성이 나타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남성 중심사회의 "언약적" 언어가 이러한 하나님의 남성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약의 계승자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고, 그런 사회에서 여성이 받아야 할 구조적 불평등을 당연히 여기는 듯한 내용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처럼 경도된 사람의 문화와 언어를 통해 자기를 보여주시며 왜곡된 사람과 그들의 사회를 결국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장기 구출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일을 호떡처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라는 길고 큰 틀 속에서 죽을 운명에 내던져진 사람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다소 남성성이 짙은 언약의 이야기는 따라서 복음을 통해 만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귀결될 때 그 완전함이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CBS 성서학당

얼마 전 숭실대 구미정 교수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들었습니다. 강의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성성에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아기를 품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 남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 어머니의 영성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성은 그 몸 자체에 복음에 입각한 사회 저항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회는 고래로부터 어머니의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마저 남성이기를, 시대가 정의한 정상아이기를, 그들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인종의 피부색을 가졌기를 요구하지만 이러한 도착된 기대를 거슬려 여성은 "모름의 영성"으로써 복음적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는 아기의 성별, 아기의 피부색, 아기의 건강상태 그 어떠한 차별도, 아니 자연스러운 구별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우리를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 "엄마의 배"와 같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냐?'고 물은 니고데모의 어리석은 물음도 그런 점에서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모름의 영성으로써의 저항을 체현해 낸 어머니 몸은 뱃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형을 체득한 아이를 이제 세상으로 내보내는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저항을 시작합니다. "모름의 영성""보냄의 영성"으로 발전해 가는 거지요. 잉태의 기간 "엄마 뱃속"이라는 환경, 즉 차별과 학대와 미움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던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아기의 영혼 깊숙이 끌어안은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겁니다. 이 어머니의 "보냄"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보내심의 절실함을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는 방법으로 바로 이 여인의 몸의 영성을 사용하신 것도 처음부터 창조에 담긴 그분의 뜻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여인을 택하셔서 그를 그리스도의 몸의 "엄마"로 삼으셨고, 바로 그 "엄마의 뱃속"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이 "지어짐"을 경험하셨습니다. 우주를 말씀으로 지으신 분이, 사람을 손수 지으신 분이 그 사람의 몸속에서 자기 몸의 "지어짐"을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 예수께서 말입니다(1:3). 이 삼위일체의 관계 안에 있는 성자와 성부의 관계를 완벽히 표현할 다른 어떤 방법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엄마 뱃속"만큼 그 아름다운 낳음을 닮은 환경 또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불어 깨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래서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며, 적어도 남성이 가지지 못한 "엄마 배"에 있어서는 그만큼 하나님을 훨씬 더 닮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비유를 몸속에 지니고 있는 이 아름다운 이들을 우리가 긴 긴 역사 동안 함부로 대해 왔다는 것처럼 큰 죄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오직 복음만이 이러한 생각을 전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이런 가치로 무장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천입니다. 이 사회 어디쯤에서는 물론 이 “Me Too” 운동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성을 포함하여 여타 차별의 벽을 허물어 버린, 모두를 하나님의 닮은꼴로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글쓴이 이진영 목사는 미국 동부 메릴랜드의 복음의빛교회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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