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뒤바뀐 교회
앞뒤가 뒤바뀐 교회
  • 권영진
  • 승인 2017.11.09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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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의 정언향 칼럼
Sandro Botticelli(1445–1510)가 1481-82년에 그린 고라, 다단, 아비람의 징계 이야기. 로마 바티칸 시스틴 성당 벽화.
Sandro Botticelli(1445–1510)가 1481-82년에 그린 고라, 다단, 아비람의 징계 이야기. 로마 바티칸 시스틴 성당 벽화.

2000년대를 지나면서 교계에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바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입니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데 요즘 부동산 매물관련 내용을 보면 소형교회들의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인수할 곳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반면에 대형 교회들은 예전보다 더 크고 거대한 건물을 짓고 있지요. 이런 일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이를 단순히 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능력이 없고 대형교회가 훌륭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라고 하면 더더욱 안 됩니다. 이는 사실 교회가 얼마나 경제적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사업지향적 존재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회를 처음 개척하는 목회자들은 성도 수 확보에 사활을 겁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솔직한 이유로는 사람이 모이고 헌금이 나와야 교회가 [운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 물론 교회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저런 필요한 비용이 들기 마련이고 여기에 대한 합당한 재정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보통 교회를 개척할 때는 목회자가 자신의 개인 자산을 털어 교회 예배당을 준비합니다. 이 때 규모는 개인의 재산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상가의 지하 단칸방을 얻는 경우도 있고 제법 번듯한 단독건물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객확보를 위한 투자의 개념을 띤다는 것입니다. 성도 한 명 없으면서 교회 예배당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적게는 수 천 만원 많게는 수 억 원 이상을 들이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보통 이게 다 빚입니다.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도들이 오지를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문제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이렇게 빚으로 시작한 교회는 결국 이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재정이 필요합니다. 초기 비용이야 목사의 개인 재정으로 어떻게 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재정확보가 필요한데 이는 결국 성도들의 헌금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결국 목회자는 한 명이라도 성도를 빠른 시간 안에 늘려야 하고 또한 그렇게 모은 성도들에게는 직, 간접적으로 헌금에 대한 강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안 그러면 교회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문을 닫는 교회들은 대출이자와 교회 고정 지출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문을 닫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과도한 헌금 요구를 견디지 못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나면 결국 교회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교회가 문을 닫는 이유가 결국은 돈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목회자들은 성도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온갖 이벤트를 기획합니다. 매우 고전적인 방법(헌금을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협박)부터 세속적 마케팅과 경영 기법을 도입한 방법까지 그 범위는 다양합니다. 교회의 헌금봉투만 해도 수 십 종이 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헌금봉투들이 정말 그에 합당한 성경적 정당성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적 있으십니까?

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까? 그리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는 성도라면 당연히 "No!"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왜 성경의 교회와 현실의 교회의 괴리는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요? 저는 오늘날 교회들이 본질과 비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매달려 있는데 막상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충대충 넘어가거나 아예 생각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저희 교회도 요즘 한창 가을 심방 중인데 보통 제가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교회들의 심방 패턴을 보면 목사님과 부교역자, 그리고 수행원(?)들로 구성된 심방단이 시간별로 준비된 계획표대로 가정들을 찾아가서 짧고 간단하게 예배드리고 다과를 나눈 후 준비된 식당으로 가서 밥 먹고 심방헌금 받아서 갑니다. 이게 정말 일반적인 패턴이죠.

그런데 원래 심방이란 목회자가 교회에서 들을 수 없고 알 수 없던 성도들의 각 형편과 어려움들을 돌아보고 그 문제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방이란 수행원 없이 목회자 부부만 가정에 찾아가서 다른 계획과 일정 없이 그 가정에 필요한 만큼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충분히 가정의 문제를 듣고 기도제목을 확인하고 그 가정에 필요한 성경의 말씀들을 나누고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주시는 위로로 힘을 얻게끔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한 가정을 심방하는데 최소한 몇 시간 이상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가 성도들을 그 정도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방은 그저 성도들 [관리] 차원에서 돌아보는 행정적 일정일 뿐이지 정말 각 가정들과 성도 한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면 그렇게 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만나서 별 이야기도 없이 밥 먹고 선물 사주고 다음에 만날 시간을 통보하고 가버리는 애인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성도들을 그렇게 대합니다. 하다못해 카드회사들이 VIP회원 관리하는 것만도 못합니다. 아니, 헌금 많이 하는 성도들은 그렇게 관리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교회가 빚내서 건물 올리고 인테리어 공사하고 외형을 키워서 [운영]에 신경을 쏟고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성도들을 독려하는 동안 막상 성도들은 힘에 겹게 따라가다가 결국 상처 입고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교회는 또 다른 성도들을 그 자리에 메꿔 넣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개개인, 그리고 가정의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교회 운영에 들어가는 재정조달과 행정업무를 하는 데에도 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과 조직이 먼저고 성도가 나중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성도가 중요한 곳입니다. 성경이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이 [교회 조직] 자체를 교회의 본질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성경왜곡이자 온갖 부패와 변질의 온상이 됩니다.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을 갖고 바른 믿음을 갖게 되면 그 가정이 변화되고 가정들이 회복될 때 그 가정들이 소속된 지역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이 순서를 바꾸게 되면 교회는 그때부터 온갖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교회 건물이 없고 재정이 없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있는지만 저희 교회만 해도 그런 것 하나 없어도 때를 따라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감당하며 잘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지 장소가 부족하거나 시설이 부족해서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적어도 제게는 금시초문입니다.

교회들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교회]라고 생각했던 선입견들을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조직화될수록 교회의 생명력은 사라져갑니다. 교회라는 존재 자체가 성경에서는 유기체이며 상호간의 깊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돈과 조직이 지배하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운운하는 것은 진흙탕에서 뒹굴면서 옷이 더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입니다.

교회의 지향점이 크고 거대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환경에서는 결코 건강하고 성경적인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대형교회를 지탄하지만 사실은 성도들 스스로가 그런 교회를 찾아가고 본인도 그런 교회를 선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 교회들은 결코 목회자 한명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역교회를 세우는 것은 결국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건물이 꼭 있어야 하고 좋은 시설이 꼭 있어야 하고 운영재정이 꼭 있어야지만 교회가 존립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공동체는 결국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세상과 구별시킨 사람들의 모임](에클레시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 성령께서 모이게 하신 성도들이 있어 그 성도들이 서로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그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이는 매우 훌륭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3:7-13)의 빌라델비아 교회가 바로 그 모델입니다.

건강한 교회, 올바른 교회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아는 것은 그대로 실천하기 위함이고 말씀대로 할 때 그야말로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 삶 속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더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비 본질을 버리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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