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의 존재감은 단지 헤세드의 예화인가?
룻의 존재감은 단지 헤세드의 예화인가?
  • 김동문
  • 승인 2018.02.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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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속 성경 본문 다시 읽기
"설교자의 설교 속 성경 본문 다시읽기"는 설교 표절 판단이나 설교의 논지, 전달 방식 등에 대한 비평이 아닙니다. 단지 설교에 등장하는 성경 이야기(내러티브 등) 활용의 적절성을 다시 짚어보는 것입니다. 일종의 성경배경연구를 응용한 성경 다시읽기입니다. 가능한 한 설교자의 설교 언어를 그대로 옮겨본다. (설교문의 단락 나누기는 편집과정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 편집자 주)
오늘날도 손으로 밀을 수확하고 있는 고대 모압 땅(오늘날 요르단 중부 지방)의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부자들은 낫이나 기계를 이용하여 수확한다.
오늘날도 손으로 밀을 수확하고 있는 고대 모압 땅(오늘날 요르단 중부 지방)의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부자들은 낫이나 기계를 이용하여 수확한다.

성경을 읽을 때 독자의 한 사람인 우리들이 가지는 해석의 권한과 책임은 얼마나 될까? 저자의 의도나 성경 본문 속 당사자들이나 관계자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했을 것에 대해 현재의 독자로서 우리는 얼마나의 접근을 하여야할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담고 있는 여백이나 행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여백 읽기는 무척 조심스러운 작업이어야 한다. 추정, 추론, 단정, 규정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여백을 읽는 작업이 성경 본문이 전제하고 있는 그 때 그 자리로 들어가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룻기 하면 거의 십중팔구는 헤세드 라는 개념을 갖고 본문을 풀어간다. 룻이나 나오미의 삶의 자리에 대해서는 공감하기보다 분석하고 해석하고 단정짓곤 한다. 그런데 그 여인들은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았을까? 그들의 육성을 우리가 듣는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줄까?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쳐야 했던 삶에 대해 회한의 감정이 하나도 없었을까? 한 사람, 한 여자로서의 삶의 가치를 포기 당하면서까지 그렇게 지켜야 했던 대를 잇는 작업이 그렇게도 위대한 일이었던 것일까?

 

설교 속으로, 성경을 통해 그 시대 속으로

어느 한 교회의 주일 예배 설교자는 룻기를 이렇게 풀이하며 설교했다. 설교 속 내러티브(룻기) 본문 해석을 그대로 옮겨본다. 그리고 성경의 배경이 된 그 시대, 그 공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설교자의 설교 속 내러티브 본문 해석과 응용을 짚어 본다. 룻기를 설교하는 설교자 치고 히브리어 표현인 '헤세드'를 주제로 다루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데 룻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사시대의 일상이나 그 시대의 지파간의 갈등, 인근 나라들(모압이나 암몬, 에돔, 아모리 등은 저마다 국가 체제를 갖고 있었다) 사이의 정치적 지형 등에 대해서는 깊게 살펴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룻기를 배경으로 하는 설교 내용을 듣다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장을 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는 자유로워진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오미의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은 이미 자유의 몸이 된 것인가? 2) 룻의 고백은 위대한 신앙 고백이다? 3) 유다 베들레헴 사람들(이스라엘)은 이방인을 부정한 자로, 개 취급했는가? 4) 밭에서 이삭 줍는 것은 거지 짓이었나?

모압 땅과 베들레헴 들녁은 지도상으로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모압은 튼튼한 왕정국가였고, 베들레헴은 어떤 구체적인 통치체제도 갖춰져 있는 못한 상황이었다. (ⓒ 구글 지도 갈무리)
모압 땅과 베들레헴 들녁은 지도상으로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모압은 튼튼한 왕정국가였고, 베들레헴은 어떤 구체적인 통치체제도 갖춰져 있는 못한 상황이었다. (ⓒ 구글 지도 갈무리)

이 같은 질문에, 답은 대체적으로 '아니오'이다. 위에서 인용한 설교자가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했다. 조금 더 근거를 갖고 이 주제를 정리해본다.

 

1) ‘남편이 먼저 죽으면 결혼한 아내는 자유’?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설교문 한 편에 다시 주목해 본다.

"룻기서 속으로 들어감으로, 이  '인애'', '헤세드'' 의미를 한 번 다시 더듬어 보기를 원합니다여러분, 이 룻기서에는 '헤세드'라는 단어가 모두 3번 등장하는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1장입니다. 룻기서의 그 시작은 유대 베들레헴 땅에 있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집안, 그 집안 이야기가 되어 지는데, 그곳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좀 더 잘 살려고, 자식들 교육 좀 더 잘 시키기 위해서 어디로 이주해 옵니까? 이방 땅인 모압 땅으로 이주해 옵니다. , 이민을 오게 되어 집니다. 이민...그런데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왔는데 그 남편이 그만 금방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그의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차례로 결혼을 시킵니다. 왜요? 좀 더 잘 살아보려고..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두 아들도 차례대로 그만 죽어버립니다.‘좀 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이민을 왔는데, 저와 여러분처럼 그렇게 이민을 왔는데, 여러분, 이 집안에 졸지에 과부 셋만 남는 가장 비참한 집으로 전락을 하게 되어집니다.

이에 그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남자가, 남편이 먼저 죽게 되어 지면, 결혼한 아내는 이제 자윱니다. 자유. 마음대로 떠나도 됩니다. 이에 이 이방 여인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이제 남겨두고 떠나도 되는데, 떠나지를 않아요그 모습을 보면서, 시어머니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18절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시작...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한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 룻기 18절에 나오는 '선대',이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로 '인애',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란 무엇입니까? '헤세드란?' 한 번 따라서 하지요. '갚을 수 없는 자에게 베푸는 사랑과 호의' 그게 바로 인애, 헤세드라고요. , 이 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섬기지 않아도 되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아요. 또한 이 시어머니 나오미는 나이가 많아서 이 젊은 두 며느리에게 그렇게 선대한다 할지라도 갚아줄 것이 하나도 없어요. 뭘 갚아줄 수 있겠습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며느리가 시어미니에게 이렇게 사랑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오미가 이야기 합니다. ‘헤세드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가하면 이제 룻기서의 헤세드는 2장에 나오게 되어 집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성경 본문 이해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도 신명기 235-6절 이하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신명기 23:5, 6)

이것은 '계대결혼(levirate marriage)', 수혼 제도(嫂婚制度) 또는 '형사취수법(兄死娶嫂法)'이라고 부른다.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인근 중근동 지역에서도 행해지던 관습의 하나였다. 아래 룻기 18-10절에서도 그 같은 관행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룻기 1:8-10)

여기서 언급되는 '어머니의 집', '어머니의 백성'이 가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집'은 본가 또는 친정을 뜻하지만, '어머니의 집'은 다른 의미를 갖곤 한다. 그것은 '결혼'을 뜻한다. '어머니의 백성'은 계대결혼을 할 대상 즉 나오미의 아들 또는 대를 이을 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 느낌은 아래 구절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그것이다.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하매 (룻기 1:11-13)

즉 이것은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다른 집,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하고 룻과 오르바는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다(나오미가 주는 남편될 아들들)고 한다. 당시 중근동에서 시집간 여인은 그 시집의 가족이 되었다. 관습적으로 며느리이며 동시에 딸이었다. 그래서 결혼 이후에는 남편과 그 시집의 가부장에게 속한 존재였다. 남편이 죽었어도 그 시집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것이 계대결혼법의 바탕을 이룬다.

이 계대결혼의 한 방식이 형사취수법(장남이 죽으면 그 동생들이 형수를 통해 장남의 자손을 낳아주는 법)일 뿐 그것이 모두는 아니었다. 야곱과 라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데릴사위제나 민며느리제 같은 제도도 활용되었다. ()이 있는 경우는 그 딸의 남편을 사위이면서 대를 잇는 즉 양자로 입양했다. 아들()이 있는 경우는 며느리를 양녀로도 입양했다엘리멜렉이 죽었다. 그의 대를 이어줄 아들들이 다 죽었다. 그러면 이 집안의 대를 이을 방법은 다 사라졌다. 그런데 딸이 있었다. 며느리였던 룻은 하나 남은 딸이기도 했다. 그 딸을 매개로 나오미는 대를 이을 사위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가 보아스였다.

지형을 살펴보면 모압 땅과 베들레헴 들녁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구글 지도 갈무리)
지형을 살펴보면 모압 땅과 베들레헴 들녁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구글 지도 갈무리)

2) 룻의 위대한 신앙고백? 아닐 수 있다.

이후에, 이제 나오미가 유다 베들레헴 땅에 다시 풍년이 들었다라는 소식을 듣고는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두 며느리에게 이야기 하지요. “너희들도 이제 떠나가라, 돌아가라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자 첫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크게 울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인 이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를 않습니다. 위대한 고백 하나를 남기지요. . “어머니, 저로 하여금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이제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고 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더불어서 끝까지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위대한 신앙 고백으로 생각하는 룻의 고백은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그런 신앙고백 그대로였을까? 유일한 절대자 여호와에 대한 고백을 담은 것이었을까? 아래 본문을 다시 읽어보자.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기 1:16, 17)

룻은 누구였을까?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그 옛날, 12세 전후한 어린 나이에 시집가던 것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룻의 나이가 결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압에서 가나한 지역 출신(베들레헴)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었을까? 아니면 주변 이웃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행동이었을까? 모압인들도 여자의 시집가는 것을 출가외인이라 생각했다. 한국말에 "출가외인이니 죽더라도 시집귀신이 되라"는 식의 생각이 통용되던 그런 문화였다. 모압인들은 다인종, 다른 민족과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다이른바 순혈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다.

모압 땅과 요단강 동편 이스라엘 지역 사이에는 사해라는 장벽도 있었지만, 상습적으로 봄철이면 2-3개월 동안 범람하던 요단강도 존재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가던 시기는 요단강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 구글 지도 갈무리)
모압 땅과 요단강 동편 이스라엘 지역 사이에는 사해라는 장벽도 있었지만, 상습적으로 봄철이면 2-3개월 동안 범람하던 요단강도 존재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가던 시기는 요단강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 구글 지도 갈무리)

룻은 모압의 으뜸신을 믿었던 다신 숭배자 였을 것이다. 신을 믿되, 가족(부족), 지역신, 국가신, 민족신 등 '경계'안에 갇혀 있는 존재로 믿었을 것이다. 다신 숭배자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종교성과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유일신 신앙을 갖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유일한 존재로 믿는 것과 최고의 신, 아니면 여러 신들중의 또 하나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겉보기에 비슷할지 몰라도, 그 본질은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룻의 고백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룻이 고백한 그 중심과 그의 말과 행동을 마주하던 이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Jean-François Millet (French, 1814–1875)
Jean-François Millet (French, 1814–1875), '룻과 보아스(1850–53), 보스톤 예술박물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이 고백은 앞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출가외인으로, 이미 시집에 속한 존재로서의 룻의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친정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룻의 친정집 어머니와 그 가족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룻은 베들레헴 사투리를 얼마나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었을까? 시어머니 나오미와는 어떤 말로 대화했을까? 어느 만큼 공감하는 소통을 경험하고 있었을까? 문득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결혼 이주 여성들의 처지가 연상된다. 아니면 한국보다 경제 문화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시집간 한국인 여성들의 형편도 떠오른다.

 

3) 유다 베들레헴 사람들(이스라엘)은 이방인을 부정한 자로, 개 취급했는가? 아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을 부정한 자로 여겼고,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합니다. 그런데 이 룻은 이방 여인일 뿐만 아니라 과붑니다. 과부. 그러니까, 이 룻을 향한 그 유다 베들레헴 이스라엘 그 사람들이 퍼부었을 저주와 욕설과 모멸은, 감히 우리가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종 혐오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은 아직 부족국가 연맹체 형태의 정치 체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에 비한다면 이미 왕국을 형성하고 인근 지역에 땅과 정치력을 확장하던 모압은 잘 사는 힘 쎈 나라였다. 베들레헴 주민이 모압 땅에 경제 이민을 간 것은 그런 시대적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모입 땅으로 경제 이민을 간 것은, 가난한 나라로 떠밀려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압 여인 룻이 베들레헴 땅에 온 것은 어찌 보면 서울댁이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의 작은 읍내에 시집온 것과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손으로 밀, 보리를 추수하는 장면을 본다. 그런데 3천년 전에 낫을 이용하여 보리를 베는 하인들(소년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보아스의 부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손으로 밀, 보리를 추수하는 장면을 본다. 그런데 3천년 전에 낫을 이용하여 보리를 베는 하인들(소년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보아스의 부를 짐작할 수 있다.

4) 밭에서 이삭 줍는 것은 거지 노릇이었나? 아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합니다. 어떻게 봉양합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까, 남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주으면서.. 뭡니까 이게 거지노릇을 하는 것이지요. 거지노릇을 하면서 룻이 나오미를 그렇게 봉양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룻이 누구 밭에 들어갑니까? 보아스 밭에 들어가는데 성경이 이것을 참 재미있게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노동, 품앗이 같은 것이었다. 밭의 풍경은 이렇다. (이삭을) 베는 자들이 먼저 밭의 이삭을 수확하고 가면, 그 뒤를 따라 이삭을 줍는 이들이 따라간다. 본문에 따르면 이삭을 베는 자들은 남자들이고, 줍는 자들은 여자들이다. 이삭을 줍는 것은 2차 수확 작업에 해당한다.

당시 추수는 일반적으로 2개조로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것이다. 앞서서 밀이나 보리를 베면, 그 뒤를 따라서 보릿단, 밀단을 묶는다. '줍는다'는 단어를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다'는 식으로, 이것을 단순하게 거지 짓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소 오해 섞인 것이다. 룻의 시대보다 3천 년은 더 떨어진 지금도 요르단이나 팔레스타인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는 낫을 사용하지 않은 채 밀이나 보리를 수확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밀이나 보리가 땅이 건조한 지형에서 자라고 익기 때문에 손으로 줄기를 잘라 수확할 수 있다.

룻기 2장은 룻이 한 행동을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는 밀밭에서 이뤄지는 이삭줍기는 하루 품을 파는 자발적 노동이었다. 이삭을 줍는 것을 묘사하는 두 개의 다른 표현을 볼 수 있다. 이삭을 줍는 것과 일하는 것(노동)이 룻기에서 교차적으로 쓰인다. 나오미와 룻의 대화에서도 그 맥락을 엿볼 수 있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하는지라. (룻기 2:19)

고대 이집트의 밀 수확장면 벽화

낫을 이용하여 보리 줄기를 잘라 두면, 그 뒤를 따라서 그 잘라 놓은 보리 줄기를 모아서 단으로 묶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소녀들의 몫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면 단을 모아서 그 밭을 타작마당을 삼아 타작을 하거나 마을이나 들에 마련된 타작마당으로 옮겨서 거기서 타작을 하곤 했다보릿단을 묶으면서 그 주변에 떨어져 있는 부서진 이삭을 챙기는 룻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사실 추수하는 밭에서 이삭줍기에 더 관심을 갖는 품앗이 일꾼은 번거롭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기 2:7)

Jean-François Millet (French, 1814–1875), '이삭줍기(1857), 파리 루브르 박물관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하니라. (룻기 2:15, 16)

이 장면은 한국의 품앗이를 떠올린다. 잔치집이나 일손이 필요한 밭이나 일터에서 품을 팔아주면, 품삯은 아닐지라도 챙겨주던, 챙겨가도록 배려했던 것이 있었다. 잔치집이나 식당의 경우는 음식을 싸주기도 했다. 밭에서는 수확 작물 중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가져가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봉제공장에서도 하자품을 일부 가져가도록 배려하는 공장주도 있었다.

이 장면은 아래의 본문의 의미를 떠 올리게 한다. 추수를 마친 밭에는 곳곳에 부서진 이삭들이 남곤 했다. 그 이삭들까지 다 챙기지 말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도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일컫던 새들을 위해 남겨둔 감이 있었다. 이것은 배려였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3:22)

그런데 룻이 그날 일당(?)으로 챙긴 밀이 한 에바(2:17) 즉 거의 22리터에 이르렀다. 당시의 성인 남자 포도원 품꾼이 받는 일당의 2곱절 반을 받은 것이었다.

(* 아래의 유튜브에 올라있는 동영상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촬영된 것은 아니다. 낫을 이용하여 수확을 하고 베어진 단을 옮기는 장면 등 룻기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짧은 생각

이 설교 속 내러티브는, 설교자가 룻기를 다루면서 그냥 익숙한 개념이나 주장을 갖고 들어와 설교자 자신이 자유롭게 적당하게 다듬은 것처럼 보인다. 성경 본문에 바탕하고 있는 그 시대나 그 땅, 베들레헴과 모압 땅, 두 땅 사이의 전해했을 입체적인 거리감(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지리적, 환경적...)에 대해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모압 들녁은 해발고도가 1100미터를 오르내리는 고원 평야지대이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곳도 700 미터 안팎인 베들레헴 산지에서도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구글 지도 갈무리)
모압 들녁은 해발고도가 1100미터를 오르내리는 고원 평야지대이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곳도 700 미터 안팎인 베들레헴 산지에서도 그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구글 지도 갈무리)

보아스가 죽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것으로 룻기가 묘사하고 있다. 룻이 대를 이을 대상이 룻의 남편이었던 말론의 대를 이을 대상이기 보다. 엘리멜렉이고, 룻은 나오미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엘리멜렉을 대신하는 남자와 나오미를 대신하는 여자를 통해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간다는 이야기가 룻기 저자의 의중에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래의 성경 구절의 맥락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기 4:16, 17)

이런 배경을 통해서 본다면 보아스는 대리부’, 룻은 대리모역할을 하는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룻기는 계대결혼, 형사취수법이 안겨주는 그 시대 여성들의 처절한 삶을 치열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그 시대의 이런 관행을 묵인, 방조, 조장, 직시, 명령하고 계시는 것일까? 룻기를 3번 나오는 헤세드(1:8, 2:20, 3:10)를 중심으로 풀이하는 것이나, 룻의 헌신과 보아스의 환대 등으로() 읽는 것은 아쉬움이 크다.

추수철에 밀, 보리밭에는 이렇게 천막을 쳐놓는다. 일하다가 쉬거나, 주인이 수확 현장을 지켜보던 곳이었다. 또한 타작을 마치지 않은 보릿단을 지키기 위해 밤을 보내던 공간이기도 했다. 보아스가 보리밭에서 밤을 보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추수철에 밀, 보리밭에는 이렇게 천막을 쳐놓는다. 일하다가 쉬거나, 주인이 수확 현장을 지켜보던 곳이었다. 또한 타작을 마치지 않은 보릿단을 지키기 위해 밤을 보내던 공간이기도 했다. 보아스가 보리밭에서 밤을 보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야만 했던 사사시대를 살던 이들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자기 결정권이 없이 살아야만 했던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의 삶은 어떤 형편이었을까?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 갇혀 살아가야만 했던 뭇 백성들의 일상에 자리했을 그 안타까운 마음을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도 룻기를 읽는 독자의 유익이 아닐까?

어떤 점에서 성경 본문은 성경 속 본문 안에 담겨있는 그 시대의 창이다. 그 시대 속으로 성경 독자인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 속에 살던 이들의 그 감정과 그 시대를 직면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런 악습과 그릇된 관행이 지배하던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신 헤세드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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