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눈으로 아브라함 번제 사건 다시 읽기
이삭의 눈으로 아브라함 번제 사건 다시 읽기
  • 공현희
  • 승인 2017.11.08 0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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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다
Caravaggio( 1571~1610), Sacrifice of Isaac(1603)
Caravaggio( 1571~1610), Sacrifice of Isaac(1603)

저는 이삭 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아브라함인데 100세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제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제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는 자녀가 없어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심으로 제가 태어나게 된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먼 길을 떠날 준비로 바쁩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저를 부르셨습니다. 어제 아버지께서 미리 준비해 둔 번제를 드릴 때 사용 할 나무를 챙겨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면서 아버지는 가끔 저를 바라보시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길을 가면서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서야 말문을 여시고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제게 하셨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 까지는 저의 걸음으로는 3일을 가야 하는 거리라고 하셨습니다.

날씨는 점점 덥고 오랜 시간을 걸어서인지 땀은 저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옵니다. 너무 덥고 지쳐서 빨리 달려가서 쉴 곳을 찾아 쉬었으면 좋겠는데 아버지의 발걸음은 빨라지지 않습니다. 해가 질 때쯤 되어 우리는 머물 곳을 찾아 쉬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일찍 숙소를 찾았다면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살던 동네를 벗어나 처음 멀리 나와서 나는 가는 모든 도시가 궁금합니다. 하지만 3일 길을 가는 동안 나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헤브론을 거쳐 베들레햄으로 해서 모리아산으로 이동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저 멀리 모리아 산이 보입니다. 아버지는 저 앞에 있는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종들은 아무말 없이 말씀에 순종하고 그곳에서 기다립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번제 나무를 지워 주셨고, 아버지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불과 나무는 우리가 가져가는데 번제물을 드릴 어린양은 왜 안가져가는 건지…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고 하시며 제 눈을 바라보셨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버지는 비장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숨막히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지만 아버지의 눈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물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나는 가슴이 콩딱거리는지… 아버지의 눈빛 때문인지…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았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번제물을 없습니다. 순간 아버지가 저의 어깨를 붙잡으시고 저의 눈을 바라보십니다. 아!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그 눈빛의 의미를…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번제물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순간 눈 앞에 캄캄합니다. 다리에서는 힘이 풀려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아버지는 무언가로 결박하고 온 힘을 다해 저를 제단 나무 위로 올려놓습니다. 힘으로라면 얼마든지 아버지에게 저항하고 이 자리에서 달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쉽게 되지 않습니다. 저를 그렇게 어렵게 낳으셨다고 기뻐하시고 예뻐해 주셨는데… 어떻게 나를…. 순간 밀려오는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가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모든 말들이 거짓인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모든 순간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때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그때 나를 향한 아버지의 칼날이 햇빛에 반사되어 낸 얼굴에 쏟아집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내 눈이 부십니다. 아, 이제 끝나는구나….

그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자가 아버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의 음성이 끝나자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시고 숫양이 수풀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와 내 몸을 결박한 것을 풀어 주시고 나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조용히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시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아버지의 고백은 허공에 맴도는 영혼없는 고백이 아니라 낮은 목소리지만 진심으로 감사하는 고백이였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너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아버지가 어떻게 나를 낳게 되셨는지 또 하나님께서 왜 나의 아버지를 기뻐하시는 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아버지처럼 순종해서 제물이 되었는 줄 알지만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를 번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브엘세바까지 아버지와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버지의 믿음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고, 약속을 꼭 지켜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끔찍한 일이였지만 제 평생에 잊지 못할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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