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합당한 정부를 갖게 된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합당한 정부를 갖게 된다
  • 권영진
  • 승인 2018.02.14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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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재 권벌 선생 이야기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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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집안 조상님 중에 연산군 때부터 명종 때까지 벼슬을 하신 충재(沖齋) 권벌(權橃, 1478~1548)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매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신 분인데 얼마나 꼬장꼬장 하신 분이었는지 직언을 하다가 관직 삭탈과 복직을 밥먹듯이 하신 분입니다. 결국 귀양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쓰신 책 중에 '충재일기'(대한민국의 보물 제261호)라는 책이 있는데 대충 내용을 말씀드리면 자신이 관직에 있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기록한 것인데 이 정확성이 얼마나 높았던지 실록 작성에 참고하는 중요한 사초 중에 하나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 내용들을 보면 놀라운 것이 하나 있는데 본인도 그랬지만 당시 관원들 중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당대의 험난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때는 그야말로 반정과 사화가 끊임없었던 툭하면 역모에 연루되던 때였습니다) 왕에게 직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슬이 퍼렇게 절대 권력을 유지하던 왕들 앞에서도 잘못된 것에 대해 자신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고위 관료들일수록 바른 말을 하고 직언을 하는 것이 관료의 소임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도 원칙에 어긋나면 자신의 관직과 정치적 생명을 걸고 왕에게 직언을 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후임자들도 같은 일을 하니 결국 왕이 두 손을 들고 자신의 잘못을 철회하거나 취소를 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조선시대가 탐관오리들의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를 침공한 일본 사람들이 조작한 역사일 뿐 우리 조상들은 최소한 자리에 연연하여 '윗어른들' 눈치나 보며 해야 할 말도 못하는 비루한 '고위관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걸 수치로 알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상에나 탐관오리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조선시대는 우리가 일본의 사관으로 배운대로 '대부분의 관료가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시대'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과거 전 국민을 슬프게 했던 세월호 사건 이후부터 최근의 제천 참사까지의 일련의 일들과 관련해서 많은 것들이 저를 분노케 하고 실망케 했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무능력한 정부 관료들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현장에서 허둥대는 모습들, 그저 윗선들의 명령만 기다리고 그 분들의 눈밖에 날까봐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윗분들의 옆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들,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아무도 지려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들을 보며 과연 이 나라에 참된 [관료]들이 있는가 하는 자괴감과 실망감이 크게 들었습니다.

고위 관료가 될 수록 더 높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하며 국민들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고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그런 기백 있고 충성된 관료들은 참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으니 조상님들 앞에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나라가 이런 관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되었는지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국 저런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관리들이 정부 안에 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경구를 인용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합당한 정부를 갖게 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공평하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되지 못했기에 수많은 억울하고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기성세대의 원죄입니다.

이는 대통령이 한 명 바뀌었다고 갑자기 개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의 구조 전체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고 오랫동안 왜곡된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썩은 것들을 근본적으로 도려내고 폐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어떤 정치인이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지 뭐'라는 체념보다는 우리 사회가 결코 처음부터 그런 '막장'이 아니었음을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회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의 의식이 변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 교회 담임 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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