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라
악의 평범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라
  • 허현
  • 승인 2018.02.02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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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4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75년)는 예루살렘의 전범법정에 선 나찌 장교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62년)을 보면서 유대인학살이라는 악이 자신의 일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 명명했다. 타인에 대한 생각의 무능함이 실천의 무능함으로 이끈다고 하면서 아이히만을 생각 없는 평범한 관료로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정말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명령에 성실히 순종한 평범한 이었을까? 그는 학살 이전에 이미 반유대주의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생각이 없던 자가 아니라 비인간화라는 이데올로기에 점령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미 그의 사고 속에서 비인간화된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후에 평화주의자가 된 한 형제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미군들의 내무반 캐비닛에는 포르노나 여성들의 나체 사진이 많다고 했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고깃 덩어리로 보게 되는 비인간화 작업은 거기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래야 살상이 가능하다고.

어느 날 전투에 나가 자신과 총을 맞겨누고 있는 청소년이 자기가 친하게 지내던 아프간 시골 동네 어린 소녀의 오빠라는 것을 알고,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단다. 결국 자기 동료에 의해 죽은 그 아이의 뒤로 총을 들고 시체를 거두러 나오는 그의 아버지 또한 동료에 의해 사살된다. 자신을 가족 식사에 초대해 음식을 나눈 그 소녀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경험, 아니 그 관계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오늘 이곳 미국 땅에서 70년 전 독일의 나찌와 유사한 현상을 보게된다. 트럼프의 이민자, 무슬림, 동성애자, 여성, 전쟁에 관한 막말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들은 이미 비인간화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자들이다. 이민자나 무슬림, 적대국의 사람들을 비인간화하도록 교육된 생각하는자들이며, 그들 중 다수가 예수를 믿는다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다.

현상 너머에 서서 교회를 비웃고 있는 비인간화와 생명경시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성서에서 우리의 영적전쟁의 대상이라고 지시하는 정사와 권세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따라 생명을 사랑하고 선한 이웃의 길을 가는 순례자들은 예수께서 허무신 인종, 성별, 세대, 계급, 국가의 장벽을 넘어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존중함으로써 악의 평범성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사와 권세에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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