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
진동,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
  • 권영진
  • 승인 2018.01.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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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er Brueghel the Elder, 바벨탑, 1563
Pieter Brueghel the Elder, 바벨탑, 1563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 가운데 진동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땅이 흔들리거나 몸이 떨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침잠된 악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던 모세도, 이사야도 이를 경험했습니다. 항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 앞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외의 표면적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현현은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분에도 변화와 무너짐을 가져옵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힘으로 단단히 고착화 시키고 체계화 시켜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세계를 그것의 불합리함과 불공평함을 바닥부터 흔들어 놓습니다.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불의를 지적할 때, 예수님과 사도들이 당시의 유대사회와 로마제국의 문제점들을 지적할 때 그 사회는 여지없이 흔들렸고,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언행을 극히 불쾌해 하고 결국은 사회를 흔드는 불순분자들로 몰아서 핍박했습니다.

제가 교회 성도님들께 종종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안정화시키려는 것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가진 자들이며 기득권자들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흔드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지적하는 자들을 매장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때는 결코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들이 던져주는 떡고물들로 연명하는 자들을 이용합니다. '저들 때문에 당신들의 그 떡고물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을 슬쩍 흘리면서 말입니다. 지난 정권들 속에서 숱하게 보아 왔던 일들입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교회가 사회의 불의와 공평치 못함을 지적하고 그 사회를 흔들고 진동시키는 존재인지,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고 그것이 바뀌는 것이 싫은 존재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성령의 충만(성령의 지배를 받는)함은 방언과 예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확인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조금만 불안해지고 기득권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서둘러 그것을 진화하고 화해와 용서부터 말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보며 과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사람들인가, 무엇이 두려운 사람들인가를 질문해 봅니다. 그들이 바라는 평강은 혹시 한쪽의 목소리만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무늬만 조용한] 사회가 아닌지 성경 속의 피끓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재고해 봅니다.

지금은 교회력 가운데 주현절(epiphany)의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세계(cosmos) 속에 가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 보이셨다는(현현)' 의미를 오늘의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우리의 개인적 안위를 돌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진동시켜 무너뜨리시고자 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리는 그런 주님 앞에 순종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주님을 반대하고 거스르고 있는 존재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권영진 목사는 정언향 교회 담임 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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