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혐오가 생산해 낸 괴물
배제와 혐오가 생산해 낸 괴물
  • 최종원
  • 승인 2018.01.15 07: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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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혐오가 생산해 낸 괴물, 레벤스보른의 아이들

1. 사회진화론과 우생학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범위와 잔혹성이 모든 것을 압도해서 역사 속에 덜 기억되는 것뿐이지, 20세기 초, 중반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은 전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 현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진화론은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발전도 선택과 배제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와 만나 생성된 것이 우생학 (eugenics)이다. 영국의 프랜시스 갈튼 (1822-1911)을 통해 제기된 것으로 알려진 우생학은 과학의 힘을 통해 사회에 적자를 확산시키고, 동시에 부적격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미국에서는 이 우생학의 논의에 따라 구체적으로 단종법 (sterilization act)을 시행하였다.

미국 우생학회에서는 1926<우생학 문답집, Eugenics Catechism> (1926)을 통해 이 단종법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단종법]

Q. 단종법을 왜 시행하는가?

A. 비우생적인 경향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종을 제거하기 위하여, 특정한 자선 소요를 줄이기 위하여, 세금을 줄이기 위하여, 불행과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자연적인 조건에서 보다 인도적인 목적을 위하여 수행한다. 단종은 징벌적 행위가 아니라, 보호하는 행위이다.

Q. 누가 단종법의 대상이 되는가?

A. 범죄자, 가난한 사람, 미친 사람, 약한 사람, 간질 환자, 강간범,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유전적 결함을 가진 자 및 유전적 결함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자.

1935년 미국은 유전 질환자, 장애인, 강력범, 알코올 중독자 등을 대상으로 단종법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히틀러의 인종정책 구상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자마자 독일인의 혈통을 지키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안락사를 시행하였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의 전조였다.

어떠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더 우월하다는 신념을 과학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지지해 주는 것을 우리는 인종주의 (racism)라고 표현한다. 우생학은 그러한 인종주의의 극단화된 형태이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단순히 피부색이나 혈연으로 구성되는 혈통적 인종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과 다른 문화나 사상, 가치관, 정신 세계 등을 열등한 것으로 배제하는 문화적 인종주의역시 인종주의의 한 요소이다. 이러한 것이 과학이라는 외피를 입을 때 치명적이 된다.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인종에 따른 배제와 혐오, 말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히틀러의 인종정책은 단순히 그들이 생각하는 열성인자를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열성인자 제거 정책 못지 않게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우성인자 활성화 정책들이 실행되었다.

 

2. 기억되지 않는 피해자들

(1) 결혼 대출 프로그램 (Marriage loan program)   가장 우수한 인종인 아리안 혈통을 강화하고,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세계를 위하는 길이라 여겼던 히틀러는 아리안 출산 장려정책을 폈다. 1933년 정부는 무이자로 1,000 마르크를 결혼할 젊은 부부들에게 대출하였다. 이 대출금을 받기 위해서는 부부가 아리안혈통임을 증명해야 하고, 결혼 후에 아내는 자녀를 낳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자녀 한 명을 낳을 때마다 1/4의 대출금을 탕감해 주어, 4명의 자녀를 낳을 경우 대출금을 완전히 탕감 받게 되었다. 1938년 말에는 백만 건이 넘는 결혼 대출금이 실행되었고, 독일의 베이비붐을 이끌었다.

(2) 우수 혈통 납치하기   유대인 대학살 계획의 총 책임자로 알려진 하인리히 히믈러는 우수한 아리안 인종을 생산해 내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를 위해 독일 나치 친위대 SS 부대원들이 폴란드 등지에서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납치하였다. 히믈러가 내세운 계획에 따르면 인종적으로 가치가 있는 아이들을 독일에 데려다가 독일화하여 독일 정부에 충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매년 6~10세에 달하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교육을 하고, 나머지 가치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었다. 납치된 아이들은 먼저 혈통 검사를 받은 후 선택된 독일인 부부에게 강제 입양되어 길러졌다. 폴란드 당국의 추정에 따르면 1940~1945년 사이 약 200,000명의 폴란드 아이들이 나치에 의해 납치되어 갔다.

(3) 레벤스보른 (Lebensborn, 생명의샘)의 아이들   정상적인 출산 장려정책과 비정상적인 납치와 더불어 1935년에는 이른바 '레벤스보른'이라고 부르는 히틀러를 위한 아리안 자녀생산 프로그램이 실행된다. 주로 독일 점령 노르웨이 여성을 대상으로 실행된 이 정책은 선발된 여성들이 나치 SS 친위대의 장교들과 관계를 맺어 자녀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푸른 눈을 가진 금발의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으로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을 신청한 여성들은 일련의 의학적 검사를 받은 후 SS 그룹의 장교를 파트너로 정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은 화려한 성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다. 임신한 여성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보호를 받는다. 아이를 낳은 후 2주 만에 아이는 충성스런 나치 당원에게 보내지게 된다. 여인들이 다시 자식을 보거나 자식의 친부를 만날 수는 없었다.

Lebensborn
Lebensborn

그리고 여인들은 이와 같이 자녀를 생산하는 일을 반복했다. 10년 정도 지속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과 노르웨이에서 적게는 약 6,000명에서 많게는 20,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자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매장되었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나치의 창녀라고 비난을 받았다. 레벤스보른 아이들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등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들의 자살율은 일반인 보다 20배나 높았다고 알려진다. 유대인과 타인종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혐오는 또 다른 형태의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나치 인종주의가 만들어 낸 배제와 혐오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이 비밀 프로그램의 실체가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기억되지 않는 피해자들이다.

 

3. 배제와 혐오는 극복할 수 없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이 배제와 혐오는 비껴갈 수 없는 사안인가 보다. 아무리 그러려니 해도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주의적인 발언과 행동은 정상적인 사람의 그것으로 보기 어렵다. 두려운 것은 트럼프가 미국의 백인 외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벌이는 이 위험천만한 우생학적 발언들이 이제는 일상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아프리카와 아이티를 향해 거지 소굴에서 이민자를 받을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 더 많은 이민자들을 데려와야 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으로 노르웨이 인들이 겪은 아픔과 수치의 과거를 알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이 역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배제와 혐오가 일상화된 슬픈 현실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자행된 단종법의 망령이 2017년을 살아가는 오늘날 다시 살아났다. 배제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혐오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존재를 나타낼 때의 반응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 센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망나니처럼 배제와 혐오의 칼춤을 추고 있다.

그 결은 다르지만 배제와 혐오라는 이슈는 오늘 한국 교회를 포함한 한국 사회가 부딪치고 있는 큰 이슈이기도 하다. 배제와 혐오는 타자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표현되는 동시에, 내부자 자신들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자아도취를 부추긴다. 이러한 내부의 논리는 타자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시킨다. 타자가 이주노동자이건, 이슬람이건, 성소수자이건, 사회적 약자이건 타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모두 인종주의라는 혐의를 비껴갈 수 없다.

한민족이라는 인종적 순혈주의를 내세우건, 타협하지 않은 신앙의 순수성을 내세우건 모두 우리 곁에 존재하는 타자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버리는 것이 차별이다. 집단의 논리가 손쉽게 차별에 대한 불편함을 없애주기에 다름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간사하게도 오래 외국살이를 하며 타자, 소수자가 되는 현실을 여러 해 겪어보고야 조금은 타자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결국 다름과 공존해 보는 경험과 연습이라는 절대적인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를 조망할 요량은 없으니 한국 교회라는 곳으로 좁혀 보면, 연말연초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결코 타자에 대한 공감력을 키워갈 재간이 없는 집단이 있음이 명확해진다. 그 집단은 외부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시기심에서 흔드는 것으로 규정하고,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내부자들의 마음에 배제와 혐오라는 감정을 부추긴다. 그 집단에 속한 수만의 사람들은 그 같은 종교 이데올로기를 복음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실은 그들은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줄 모르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타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순수를 지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이 아니라 철 지난 우생학의 궤변이다. 그 집단에 대해 약간의 미련이나마 갖고 유보적이던 내게 확신을 준 이는 이정훈이라는 분이다. 그에게 고맙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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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랑 2018-11-05 23:14:15
이 사이트는 한쪽의 견해와 관점에서 기사들을 올리는 것 같군요. 저는 이교수에 대해 어떠한 선입견 없이 5편 정도를 들어보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좀 동의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팩트들만을 놓고 따져볼 때 이교수의 말이 현재 교회에게 꼭 필요한 조언과 조명의 내용들이 많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기사 내용만 보고 이교수의 영상들은 거의 안보거나 제대로 보지 않고 결론을 짓는 그런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유투브에 가면 교회해체 관련한 이교수의 영상들이 여럿 있는데 최소한 그것들이라도 보고 판단해도 늦지않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0633#_enliple

이사랑 2018-11-05 23:12:56
찾다보니 이정훈 교수의 반박/해명글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최소한 이걸 읽어본 후 판단하는 게 정당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정치적 성향과 관점이 다르다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사람에게 이런 글들을 제대로 된 사실확인 없이 올린다는 게 이해가 안갑니다. 드림투게더의 진실성과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에요. 실망스럽습니다. 설마 이 사이트 운영자들의 정치적 성향/관점과 다른 얘기를 한다하여 이글을 삭제하진 않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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