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금기에 대한 이해를 풍요롭게 해줄 책
성서의 금기에 대한 이해를 풍요롭게 해줄 책
  • 정한욱
  • 승인 2018.01.1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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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모, 금기의 수수께끼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한길사, 2016년
최창모, 금기의 수수께끼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한길사, 2016년
최창모, 금기의 수수께끼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한길사, 2016년

금기의 수수께끼는 연세대학교와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가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다양한 금기에 대해 현대 인류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자세히 살피고 있는 책이다.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과 메리 더글라스의 순수와 위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 저자는 총론에 해당하는 이 책의 1장에서 금기란 원시적인 공포, 성스러움, 더러움, 위험, 애매모호함, 경계, 욕망 등과 결합해서 발생하며,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성격을 띠고, 개인이나 사회를 통합하거나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2장과 3장에서 인간의 욕망이 넘치는 영역인 음식 및 성과 관계된 금기들을, 4장에서는 의복착용금기나 왼손사용 금지와 같은 몇 가지 개인 금기들을 다루며, 마지막 5장에서는 인류학이 성서연구에 기여한 연구사를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유명한 레위기 11장의 음식금기에서부터 현재 복음주의권의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인 동성애 문제에 이르기까지, 성서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금기에 대해 르네 지라르와 메리 더글라스를 포함한 현대 인류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폭넓게 소개함으로서, ‘경건이나 신학의 눈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성서 이해를 풍요롭게 해줄 이 분야의 독보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

이 리뷰에서는 총론에 해당하는 1장의 내용을 정리한 후 이 책의 각론에서 다루는 몇몇 중요한 금기에 대해서 간단히 요약하기로 한다.

 

금기(터부, taboo)란 무엇인가?주체와 대상의 비분리를 향하고 있는모든 성스러움(거룩)에는 언제나 위험이 수반되며, 이러한 위험에는 반드시 강력한 금기가 따른다. 따라서 성과 속, 신과 인간의 관계를 중재하는 모든 종교에는 강력한 금기의 체계 및 금기의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부정이나 오염을 해소하는 정결법이나 오염 방지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금기는 이렇게 거룩한 대상 뿐 아니라, 원시적 공포와 함께 원시인들이 기피하는 혐오스러운 것들이나, 음식이나 과 같이 욕망이 넘치는 영역, 근친혼의 금지와 같이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성스러움에서는 금기가 발생하지만, 모든 금기가 다 위험하거나 성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금기는 선험적(a priori)이고 그 자체로는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이지 않으며 때때로 불합리해 보이지만, 사회적인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 점차 사회통제 체제로 변화한다.

금기가 발생하는 위험한 곳이란 애매모호한, 즉 어중간한 중간지대(경계)에 속해 동일성이나 체계나 질서를 교란하거나 모순 대립되는 것들을 매개하는 사람/사물/영역이다. 금기는 성과 속, 깨끗함과 더러움, 남자와 여자, 종과 종, 선과 악 사이를 엄격히 구분하며, 이렇게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질서를 교란시키는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금기의 목표다. 많은 문화에서 문턱을 밟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나, 입술과 성기의 접촉을 경계하는 것,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더럽다고 여기는 것은 그 모두가 외부내부를 뒤섞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사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의적이건 생리적이건 모든 종류의 피흘림은 예외 없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며, 피흘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결의식이 뒤따른다.

금기는 종교적 의미에서 위험한 곳 - 성스러움이 깃든 곳 - 뿐 아니라, 세속적 의미의 위험한 곳 - 욕망이 넘치는 곳 - 에서도 발생한다. 음식이나 성과 관련하여 금기가 특히 많이 발생하는 까닭은 이것이 서로 다른 두 영역의 매개물인 동시에 욕망이 넘치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금기는 죄와 징벌의 문제가 관계가 있으며 비종적인 터부는 불운이나 행운과 관계가 있으나 그 둘을 엄밀하게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험이나 금기를 유발하는 부정이나 오염은 한 사회가 가지는 고유한 상징체계의 부산물이며, 윤리적 위생학적 범주가 아닌 특정 사회의 가치체계를 반영하는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범주'. 따라서 상징으로서의 제의가 지닌 의미를 밝힘으로서 그 사회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금기의 사회적 기능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질서)가 소멸되는 곳에서는 무질서한 욕망의 분출로 인해 위험한 폭력이 발생하고 사회가 파괴될 위험이 증가하며, 금기는 이러한 위험 - 체계 외연의 경계를 압박하는 위험, 체계 내부의 경계를 범하는 위험, 경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위험, 내적인 자가당착의 위험 - 과 폭력을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일종의 울타리로 기능하면서 비폭력의 보호지대를 인간 공동체의 중심에 확보해준다. 또한 금기는 개인으로 하여금 책임 있는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시켜주는 강력한 사회적 현실이며, 복종의 매커니즘을 통해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금기를 생산하는 주체는 한 사회의 지배계층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재가와 초자연적인 재가가 통과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금기의 위반은 당사자뿐 아니라 집단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기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도덕보다 훨씬 강력한 초월적 힘을 빌어 형벌이 가해지며, 그 목적은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오염의 원인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금기란 축복이나 저주의 힘을 믿고 그들의 통제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금기가 깨지지 않고 인정되는 사회는 그 사회구조와 연결된 영적 힘을 인정하는 사회, 즉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힘과 권위를 인정하는 사회다.

히브리 성서의 금기 신학 히브리 성서의 금기 신학은 창세기와 레위기에서 근거한다. 창세기에서 금기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말해주고 있다면, 레위기에서는 금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로부터 창조된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과 차이의 체계로 이루어진 질서야말로 히브리 금기 신학의 기초다.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차이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그 경계를 소멸하려고 하는 자들을 혐오스러운 죄인으로 규정했으며, 잠언은 윤리적 규범의 위반과 좋은 행위의 기준을, 신명기는 거룩한 것과의 접촉과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본성을 다룸으로서 개인적인 삶과 종교적인 생활의 규범과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스스로를 거룩한 백성으로 여겨 다른 민족들과 구별했고, 그들로부터의 오염을 막고 공동체의 거룩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독특한 규례와 법도를 만들어갔으며, 그들의 구별체계의 근간은 유일신 신앙이었다.

왜 현대사회에서 금기는 힘을 잃었는가? (1) 고대사회의 금기는 주로 숨겨진 원시적 공포와 성스러움에서 기인하지만, ‘현대의 거만한 합리주의사회는 그런 초월적 세계를 부정하거나 과학의 이름으로 밝혀내려고 시도하며, 이렇게 금기(터부)의 힘을 믿지 않는 사회에서 금기는 힘을 잃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2) 사회가 개방화되고 분화되면서 폐쇄되고 동일한 사회적 집단의 산물인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금기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졌고, 억압과 차이의 위계에 근거해 있던 사회질서가 해방과 평등 위에 세워지게 되면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며 피지배계층에게만 강요되던 금기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3)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면서 모든 개인이 욕구와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하며, 차이와 구별이 소멸된 채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퓨전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차이와 질서에 기반하고 있는 금기는 더 이상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규범이 되지 못한다. (4)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근간이 간접적인 방식의 금기로부터 직접적인 방식의 법으로 이동하면서 금기가 가진 사회적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

 

음식금기들 인간 활동의 대부분은 음식을 얻고 소비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문화로서의 식습관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묶어 상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절제되지 않은 개인의 무한한 식욕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음식에는 권력과 사회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게 되며, 음식 금기는 평민들보다는 막강한 힘을 남용해 탐욕을 채울 위험이 있거나 음식 규정을 지킴으로서 거룩을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왕이나 제사장과 같은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발생한다. 특정한 음식 문화는 그 집단의 성격이나 문화를 반영하며, 한 사회에서 특정한 음식이 선호되거나 금지되는 이유는 생물학적 특성이나 위생적 이유 때문이라기보다 그 사회에서 특정한 음식이 가지는 상징적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레위기의 돼지고기 금기에 대해서는 고대 근동의 환경에서 돼지고기가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라는 위생 이론, 다양한 부족에서 토템으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라는 토템 이론과 같은 여러 설명들이 있어 왔으나, 최근에는 돼지가 성서의 질서와 완전성의 범주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게 여겨졌다는 메리 더글라스의 상징질서 이론, 돼지가 고대 팔레스타인의 환경에서 사육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하게 여겨졌다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 유물론적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독특한 금기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고 비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인도주의적 조치라거나, 마술적인 우상숭배 의식을 배격하기 위한 종교적 원칙이었다는 설명에서부터 가축의 젖을 끓이면 공감마술의 원리에 의해 그 가축에게 해가 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거나, 우유와 송아지의 친밀 관계에 금기를 만듦으로서 경쟁 관계에서 인간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거나, 한 어머니로부터 나온 우유와 송아지는 사실상 친족관계이기에 함께 섞어 요리하는 것은 친족 간의 근친상간과 마찬가지로 위험하기 때문이었다는 등의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피를 먹지 말라는 금기는 생명은 피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는 피가 없으면 죽게 되기 때문에(17;14) 피는 하나님이 인간의 속죄를 위해 (제단 위에) 주신 것으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17:11) 끝없는 복수와 피흘림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속성상 피는 매우 엄격하고 위험하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등등의 여러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월경혈에 대한 두려움과 희생제의 고대 이스라엘에서 생리 중인 여성은 거의 시체와 마찬가지로 불결하고 위험하게 취급되었다. 그 이유는 월경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신비한 생식능력에 대한 두려움과 월경이 출혈을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성적 욕망 사이의 분명한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피흘림에는 살해와 희생이 전제되며 흐르는 피는 폭력을 전염시킨다는 고대인들의 두려움 때문이다. 피흘림이 있는 곳, 즉 부정한 것과의 접촉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결의식이 뒤따르며, 가장 궁극적인 정결의식은 피를 통한 방법, 즉 희생제의다. 모든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르고 이로 인한 폭력은 끊이지 않는 폭력의 연쇄를 유발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문명은 폭력의 방향을 뒤탈 없는 희생물에게로 돌리기 위한 똑같은 방어책인 희생제의라는 이름의 폭력과 피흘림을 행해 왔다. 모방 폭력은 공동체를 분열시키지만, 희생의 폭력/제사는 공동체 전체를 폭력의 악순환으로부터 보호하며, 폭력의 방향을 공동체 전체로부터 돌려서 복수할 능력이 없는(즉 복수당할 위험이 없는) 무력한 희생물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서 공동체를 화해시킨다. 따라서 모든 인류문명은 죄 없는 희생물의 피에 기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근친상간 금지에 대해서는 과거에 주로 도덕적 관점이나 유전적 결함이라는 측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나, 프로이트는 이 금기가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이라는 리비도적 욕망(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으며,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는 이 금기의 이유가 도덕적 비난이나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니라 사회 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교환가치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남녀 간의 성적 차이와 가부장제라는 위계의 질서를 자연스러운 창조의 원리로 이해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간통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이라기보다 여자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남성의 권리를 강제로 침해한 것이었으며, 그 책임에 대한 보상은 여자의 소유주, 즉 남편에게 치러야 했다. 또한 동성 강간이건 여성에 대한 강간이건 모든 강간은 대부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적 행위를 통해 가해자인 남성의 위계와 지위를 과시하고 피해자를 종속시켜 노예나 약자처럼 취급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남성간의 동성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여성처럼 취급/사용한다는 것이며, 이는 남녀 간의 사회적 차이를 부정하고 그 경계를 넘어가는 것일 뿐 아니라, 자녀 생산이 불가능한 - 하나님이 주신 남근/씨를 오용하는 - 성행위이기 때문에 심지어 근친성교보다 더 혐오스럽게 여겨졌고 엄격히 금지되었다. 수간 역시 다른 종과의 교접을 통해 차이와 질서를 소멸시키는 행위이자 생산이 불가능한 의 낭비로 여겨졌기 때문에 심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성을 독립적인 성적 주체로 인정하기 않았기에 여성간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으며 성서 텍스트 역시 이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또한 남녀 의복의 교환착용 금지남자의 물건이 남성성의 상징물로서 그것이 의복이든, 무기이든, 장식품이든, 도구나 그릇이든 간에 여성성의 그것과 섞일 수 없으며, 여성의 몸에 닿은 옷을 남성이 입게 되면 남성성상이 훼손되면서 차이의 소멸을 가져오게 된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히브리 성서에서 성과 관련된 본문들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전제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여성차별을 정당화하고 남성의 지배를 영속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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