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 공동체를 앞세우는 당신들, 정체를 밝히십시오
한동 공동체를 앞세우는 당신들, 정체를 밝히십시오
  • 임성현
  • 승인 2018.01.07 0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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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예수 고추 실종 사건’ 관련 음해 사건의 전말, 그리고 분노
이 글은 지난 해 118-22일 사이에 무대에 올랐던 연극 <예수 고추 실종 사건>가 뒤늦게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 대해 연출을 맡은 임성현 연출의 입장을 담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개요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예수 고추 실종 사건 포스터

작년 이맘때 올렸던 공연으로 거국적인 욕을 먹고 있다. 작년 5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심한 조직적 음해가 벌어지고 있다. 동성애 혐오 세력들이 나의 실명과 얼굴을 적시해 퍼뜨리고, 부모님과 교수님과 친구들을 모독하고 있다. 이번엔 실질적인 피해까지 보고 있다. 내가 이미 졸업한 대학에 항의 전화가 이어지고, 심지어 공연을 후원한 서울문화재단에도 전화를 걸어대고 있다.

1. <예수 고추 실종 사건> 공연에 관하여

이전 글에서 충분히 공연의 의도와 목적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연극은 한 사람의 예술도 아니고, 작가나 연출이 작품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제가 계속 의도를 얘기하는 게 너무 민망하고 하기 싫은 일입니다만, 당신들 덕분에 이렇게 망가진 마당에 하나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공연의 목적은 예수의 성별이나 예수의 정체를 파헤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는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태도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이 공연은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당신들이 내뱉는 발언들이 이미 공연 텍스트에서 대사로 나왔던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신성모독이다”, “그분은 그럴 리가 없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부수어버리겠어등의 말들은 실제로 연극에서 등장인물의 대사였습니다. 이 대사를 뱉은 인물은 연극의 갈등 구조에서 적대자(antagonist)의 위치에 있었으며, 이와 맞서던 극의 주인공(protagonist)은 극 후반부에 이런 내용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힘없는 사람들의 친구였어. 가난한 사람에게 행복을 줬어.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줬고, 아픈 사람을 낫게 했어. 죄 지은 이웃을 예뻐해 주셨고, 나 같은 여자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해줬어. 그래. 너 같은 머저리도 사랑해주셨지. 세상 어떤 왕이 이랬어? 세상 어떤 남자가 여자를 사람답게 대해줬니? 돌로 치고 침 뱉고, 또 멀쩡한 여자를 악녀에 마녀를 만들어 죽이고창녀는 누가 만든 건데? 너희 더러운 고추들이 창녀를 만들었지. 그래놓고 그 추악한 혓바닥으로 돌 던져 죽였잖아? 그분은 창녀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했어. 세상 어떤 남자가 이랬니? 정신 차려 이 놈들아. 지옥 불에 던져질 고추들아! 고추가 그렇게 대단해? 고추가 그 잘난 명예라면 그분에겐 없는 게 당연해. 그까짓 거 없어도 그분에겐 모든 게 있어. 그러니까 그분은 신이야. 알겠어? 나는 그분을 믿어. 너는 뭘 믿니?”

긴 대사를 싫어하는 제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 못한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이는 제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 세계관을 여전히 신성모독의 반기독교 사상에 물든 것으로 보시는지요? 당신은 뭘 믿으시나요?

 

2. 지도 교수, 영향력, 세계관

그래요. 여전히 당신들 마음에 안 들겠지요. 아무리 설명해도 내게 영향력을 끼친, 나를 지도한 한동대 교수를 징계하라고 주장하겠지요? 공연이 올라간 시점에 저는 미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엿하게 독립한 예술인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지도를 받거나 배후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재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동대 재학 시절 저의 활동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게 많습니다. ‘지도 교수의 지도나 훈계를 듣기 싫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생도 엄연한 성인인데 왜 한동대에선 일일이 지도 교수 따위를 요구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가 재학 시절 자율적으로 했던 활동 중엔 지도 교수가 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좋습니다. 십만 번 양보해 당신들 말대로 한동대에서 내게 영향을 끼친 교수를 색출해 징벌해야겠다면 그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지요. 당신들이 저격 대상으로 삼은 이모 교수님의 수업에서 제가 배운 것은 연극의 기본 개념, 연극사 개론, 희곡 읽기와 희곡 쓰기, 연극 제작과 실습에 관련한 것들입니다. 애초에 당신들은 해당 공연의 연극 미학이나 극적 완성도를 문제 삼은 게 아니지 않나요? 오로지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에 적개심을 품고 이 난리를 피우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나와 내 작품의 세계관에 문제를 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한동대에서 내게 신앙 교육, 기독교 세계관 등을 교육한 교수와 해당 부서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제가 이 모 교수님 수업에서 배운 것은 연극과 희곡에 관련한 것이지 여타 세계관이나 신앙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신앙과 세계관 교육이라면 한동대 재학시절 내내 정규적인 교과목을 통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한동대는 그래야만 졸업이 가능한 학교이니까요. 우선 저는 여섯 학기에 걸쳐 채플공동체 리더십 훈련을 충실히 이수했습니다. 한동이 그토록 자랑하는 팀 모임에서 저는 여러 팀 지도 교수를 만나 공동체 교육과 인성 교육을 받았는데, 그 교수님들 명단을 구해서 일일이 징계 요구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신앙 필수 교과목인 ‘Christian Foundation 1, 2’한동 인성 교육등의 인성 필수 교과목에서 A학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 이 교과목들의 지도 교수를 포함한 담당 부처인 교목실의 이단적 신앙 교육을 문제 삼으시겠습니까? 참고로 이런 자랑까지 하기는 싫지만, 여러분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하나님의 대학한동대학교에서 저는 학부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렇다면 교무처의 커리큘럼 실패를 규탄하시겠습니까? 총장의 교육 정책 실패를 꼬집으시렵니까?

당신들이 반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얘기해보지요. 제가 페미니즘을 접한 건 한동대 재학 시절이 맞습니다. 또한, 한동대에서 받은 영향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모 교수님에게 배운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저에게 사상을 주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영향력의 출처를 굳이 따지자면, 한동대학교 본부에 있습니다. 재학 시절, 어떤 계기로 학내 성폭력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대리인으로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총장을 비롯한 한동대 학생처, 교직원이 얼마나 성폭력 문제에 대해 둔감하고 무책임한지를 몸소 깨달았습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윤리적이고 성경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학교의 이미지만을 걱정하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에 분노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고, 수많은 차별과 폭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자신도 남성으로서 수많은 기득권을 누리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한동대에서 영향 받아 현재의 세계관을 갖게 된 배경입니다. 아직도 제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 모두를 징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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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렇게까지 대응하는 이유

너무 피곤하고 귀찮습니다. 이런 기본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에 대응해야 하는 것 자체로 수치심을 느낍니다. 사실 여느 때 같이 무시하면 될 일입니다. 이런 일로 상처도 잘 안 받습니다. 그런데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저와 제 공연만 문제 삼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걸 빌미로 엮어 학부 전공 교수님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아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그 모호한 정체성을 강압적으로 주입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그 와중에 한동 공동체에는 동성애 혐오와 각종 허위 사실로 점철된 루머로 인해 실질적인 고통을 입고 있을 사람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맥락 속에서 조직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음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루머와 음해, 공작이지만 한동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더 무섭습니다. 한동대는 그런 비상식이 너무나도 잘 통하는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압니다.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로 인해 불이익을 얻은 교수, 학생, 구성원들이 쌓이고 쌓여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습니다. 매번 같은 방식과 절차로 음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패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루머가 담긴 카톡 또는 문자 유포 -> 페이스북 및 블로그에 관련 글 작성(GMW 연합이 대표적) -> 관련 글 공유 및 유포 -> 한동대에 항의 전화 및 해당 학생과 교수 징계 요구....반복 또 반복...

<예수 고추 실종 사건> 음해 사건도 이 흐름이었고, 얼마 전 한 목사님을 부당하게 해고한 것도 비슷했습니다. 그 이전 학생 단체의 행사 관련 징계를 요구하고 동성애 반대 이슈 몰이할 때도 유사한 패턴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이 어처구니없는 프로세스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런 비상식이 한동에서 매우 잘 통한다는 걸 익히 알고 악용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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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누가 공동체를 사랑하는가?

내 실명과 사진을 걸고, 사적인 정보까지 언급해가며 내 부모님과 동료들을 모욕한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한동 공동체를 정말 사랑합니까? 6년 동안 그곳에서 공부하고, 노래하고, 기도했던 제가 한동을 무너뜨린다고 확신할 만큼 당신들의 사랑이 대단합니까? 불평불만 많이 했어도 내가 사랑하던 학교입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사랑과 겸손을 배운 공동체입니다. 소박하지만 큰 꿈을 품게 했던 곳입니다. 거기서 품었던 꿈을 나름대로 잘 간직해 이제는 세상에 펼쳐 보고자 이런저런 바위 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고작 공연 제목 여덟 글자만 보고 부들부들 떨면서 한동대에 다시 지진이 나야겠다는 식의 패륜적 댓글로 공동체를 모욕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랑인지요? 사실관계도 제대로 모르면서, 다짜고짜 교수를 징계하라고 떠들어대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한동 공동체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덕분에 한동대학교가 학문의 자유를 잃어가고 사랑과 봉사를 상실하는 중입니다. 한동 공동체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일을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벌이는 당신들, 정체를 밝히십시오.

 

글쓴이 임성현은 연극하는 사람이다. 한동대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무대에 펼치고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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