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림>, 책을 열고 끝까지 쉼 없이 한 번에 읽었다. 곱씹음이나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에만 1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책 에는 174개의 짧은 꼭지글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여운이 짧지 않았다. 때때로 뭇사람의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아재개그’스러운 저자의 해학 코드도 편했다.
나는 지식과 정보만을 전해주는 책은 그 책의 두께에 상관없이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것도 이것저것 짜깁기한 책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필요할 경우 단순하게 그 책에 담긴 아주 일부의 내용을 참고할 뿐, 그 책을 사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간단히 메모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찔림>은 10분 만에 후다닥 보고 끝낼 책이 아니다. 때때로 다시 펴들고 다시 되새김질 하고픈 책이다. 짧으나 긴 저자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하는 책이다. 또한 책 밖, 책에 담긴 한국 교회와 교회 안팎의 그리스도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도전하는 책이다. 이 책 안에 교회가 있고, 교회생활이 있고, 기독교인의 삶의 자리, 그리고 일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개혁하여야할 교회를 향한,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비판이 다가온다. 그 소리에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배어있고, 어떤 경우는 그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교회 개혁의 예언자인양 가시돋힌 ‘말’을 내뱉는 그런 책과는 너무 다른 책이다. 유체이탈 화법이 아닌 저자의 고백과 아픔, 기쁨과 꿈으로 범벅이 된, 내뱉음과 푸념, 상념, 돌아봄과 곱씹음이 있다.
그렇지만 몇 몇 표현들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나의 한계도 느꼈다. 저자가 독자인 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 꼭지였다.
#ootd : ‘오늘은 뭐 입나’ 고민되나요 우리는 매일 ‘새사람’ 입어요 - 찔림, 169쪽
책에 담긴 몇 몇 꼭지는 아무래도 세대별 감성 코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 내용 중 어떤 부분에 대해 크고 작은 낯설음을 느낄지 모르는 독자를 위한 아주 조금의 도움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물론 독자들은 다 아는 표현일 것만 같다. 버킷리스트(42쪽), SNS(56쪽), CSI(61쪽), 유체이탈(69쪽), 요지경(78쪽), 프리젠테이션, 피티(82쪽), 멀티 플레이어(85쪽), 트랜스포머(113쪽), 휘슬(116쪽), 리 바이블(137쪽), 아수라(139쪽), 솔트 앤 더 시티(149쪽), 올인(170쪽), 미션, 미션 임파서블, 낫싱 임파서블(173쪽), 비포 & 애프터(180쪽)
한 번 읽을 때 금방 눈치 채지 못하고,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하면서 찾아낸 저자의 표현도 좋았다.
저울질 “ 이랬다 저랬다 추해요 - 찔림, 84쪽
항상 도하라 : 이래서 기쁘고 저래서 기쁜가요 이래도 기쁘고 저래도 기뻐야죠 - 찔림, 177쪽
꼭지 제목과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내가 생각한 경우도 한 번 있었다.
통독 :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果 - 찔림, 101쪽
저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다시금 편안하게 다가온다.
“둘째 아들이자, 당신의 형제입니다. 우쭐대며 써 왔던 세상 이력, 백지 위 한 줄 낙서만도 못합니다.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렇기에 모든 걸 가진 참 복된 사람입니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의 모든 지체들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 오늘도 또 펜을 잡습니다.”
다시 책을 펼쳐본다. 찔림이 기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이 찔림은 가시돋힌 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는채 가학적으로 찔러대는 것으로 인해 느끼는 그런 아픔이 아니다. 그 안에 길게 울리는 울림을 듣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람차게 맞이했다고 오해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절제된 감정과 외침을 들려주고 싶다. '당신을 위로하지 않은 책'이라 선언한 이 책을 통해 위로를 얻을 이들이 가득하기를 기대한다.
<찔림>에서 마주한 몇 몇 소리를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