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자신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 김재수
  • 승인 2018.11.11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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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교수의 새해 결심의 경제학
김재수, 99%를 위한 경제학, 생각의힘, 2016년
김재수, 99%를 위한 경제학, 생각의힘, 2016년

새해를 맞으면 나이 한 살을 얻습니다. 과거의 길이가 길어지고 미래의 길이는 짧아집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새해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축복은 다름 아닌 미래에 대한 인식입니다. 새해를 맞을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람에게는 새해 결심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은 결심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지, 왜 새해에 해야 하겠습니까. 현재의 나에게만 매몰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새해를 맞으며 미래의 나를 떠올립니다.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이 있습니다. 새해 결심을 하는 이들이 모두 결심한대로 실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가 긴급하게 해결하고 싶은 거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지도 모릅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새해 결심의 50% 이상은 자기개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인간관계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내용이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새해 결심의 대부분은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고 타인을 위해 공공재를 제공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생산성 향상과 시장실패의 개선은 실상 대다수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져옵니다. 우리 모두의 새해 결심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토록 고대하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꽤나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따르면, 새해 결심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갈등 상황입니다. 결심의 실현이 가져오는 혜택은 미래의 내가 독점합니다. 반면 비용은 오롯이 현재의 나에 의해 지불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결심은 실현되지 못합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겠다, 운동을 하겠다, 담배를 끊겠다, 봉사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합니다. 현재의 나는 이러한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문제는 결심을 어길 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결심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만 포기하는 일은 너무 쉽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새해 결심의 실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결심을 어길 경우 큰 비용을 지불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맡겨 둡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돈을 가지라고 합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후원금으로 내도록 계획하면 심리적으로 느끼는 비용의 크기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세상에 조금도 필요 없을 것만 같던 정치인도 이렇게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궁극적으로 현재의 내가 누리는 자유의지를 빼앗아,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도 찾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후 대책을 위해 저축을 늘리려 한다면, 늙어버린 자신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신용카드와 지갑에 붙여 두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미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0년 후의 나로 생각하기 보다, 202833일의 나로 생각하면, 미래의 내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와 닿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서 자유 의지를 빼앗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것입니까.

* 이 글은 매일경제에 김재수 교수가 기고한 글이다.

 

글쓴이 김재수 교수는, '99%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로, 미국 중부 인디애나-퍼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밥벌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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