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힘(blockage)'에게 탈출하는 용기를 주는 영화
'막힘(blockage)'에게 탈출하는 용기를 주는 영화
  • 이진영
  • 승인 2017.12.19 0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 2018년 1월 개봉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 포스터 ⓒ (주)이수C&E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 포스터 ⓒ (주)이수C&E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수없이 많다. 권선징악, 사랑, 나눔 등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인기 있는 성탄절 스토리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영화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크리스마스 캐럴>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찰스 디킨스의 '산고(産苦)', 소설 속 인물 스크루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판타지적 신선함과 새로운 감상 포인트를 선사한다.

1938년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성공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찰스 디킨스는, 이후로 연달아 세 작품이 혹평과 판매 저조에 시달리게 되어, 경제적 어려움과 집필 난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활을 건 싸움이었다.

6주 만에 원고를 완성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책을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 캐릭터까지는 설정했지만, 도저히 이야기를 진행할 수가 없어 괴로워한다. 이때 스크루지가 작가와 교감하는 캐릭터로 살아나와, 스토리의 첫 단추를 열어준다. 이는 죽은 스크루지 사업 동료 제이콥의 아픈 성찰적 고백에서 시작된다.

제이콥 "내가 만든 족쇄를 찬 거야. 다 내가 만들었어. 한 조각씩 다 만들어 붙였어. 내 자유까지 쇠사슬로 묶어버렸지. 내 자유의지도. 꽁꽁 묶인 거야. 온몸을 감고 있는 사슬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

찰스 디킨스 "(스크루지를 가리키며) 저분이요?"

제이콥 "아니, 자네 말일세. 쇠사슬이 온몸을 조이는군."

하지만 다음 단계로 깨달음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찰스 디킨스 자신도 그 쇠사슬을 끊어내야 하는데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부채 문제로 감옥에 끌려가고,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면서 굶주림과 싸워야 했던 그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일부였다. 이제 스크루지는 자기를 만들어낸 작가 자신의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어두운 과거를 마구 들추어낸다.

"난 굶주림이고. 추위이자 어두움이다. 난 네 생각의 그림자이자 네 가슴의 상처. 네 영혼의 얼룩이다. 그런데 난 절대 너를 떠나지 않아. 사람은 변하지 않아. 너는 여전히 공장 노동자야. 네 아버지처럼 무용지물이라고."

자선 모금 행사라면 빠지지 않는, 의식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포장된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린 시절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만들어낸 인물 스크루지가 가차 없이 들어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 잊고 싶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자기 삶의 가치 근간이 된 가르침을 주지 않았던가. 이제 자기 연민의 고통스러운 쇠사슬을 끊어버려야 한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와 아버지로 인해 겪어야 했던 허기진 유년 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면서, 그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서는, 기념비적인 '크리스마스 철학'을 남길 수 있었다.

평소에 만나기만 하면 냉소적 대화만 일삼던 작가 새커리의 서평이 <크리스마스 캐럴>의 온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는) 영감으로 한 장 한 장 이야기를 만들어갔는데. 글을 보면 가슴이 벅차고 때론 부끄럽기도 하다. 인간의 사랑과 어리석음을 다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생 외면했던 아픈 과거와 화해해가는 작가의 모습을, 판타지적 구성으로 전개하는 이 영화가, 이 시대의 스크루지, 찰스 디킨스뿐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막힘(blockage)'에게 탈출하는 용기를 주기를 소망한다. (영화 속에서 찰스 디킨스가 집필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스크루지는 그에게 '글이 막혔냐(blockage/blocked)'며 비웃음을 던진다)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2017)>에서 야수 및 왕자 역으로 열연한 댄 스티븐스가 고뇌하면서도 즉흥적이고 산만한 찰스 디킨스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및 애니메이션 목소리 출연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근한 크리스토퍼 플러머(<(UP), 2009>의 찰스 먼츠 목소리 역 등)의 뻔뻔한 스크루지로 출연한다. 이 둘의 작가-주인공 케미 연기가 재미에 한몫을 크게 하는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20181월 개봉관에서 관객에게 그 서재의 문을 열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