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들의 친구가 기록한 일지
외계인들의 친구가 기록한 일지
  • Huuka Kim
  • 승인 2017.12.13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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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한,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 우리교육, 2017년
권일한,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 2017년
권일한,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 우리교육, 2017년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거'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겨우내 잠자던 꽃망울에서 꽃이 피어나듯. 번데기를 벗어 던지고 나오는 나비처럼 생명들은 제 몸보다 작은 껍질을 찢고 폭죽처럼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폭죽처럼 펑펑첫 울음으로 우리들에게 지상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환희(歡喜)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작은 물 한 방울에서 이런 완전체의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 우리들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일까요? 그 아름다움이, 그 환희가, 우리 아이. 바로 당신의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요? 이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고, 우리들의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발칙함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어느 날 갑자기 열 달 품에 품었다 나온 내 안의 자식이건만 전혀 다른 종족(種族)인 외계인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느낌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내 아이라고 믿고 계신 그 아이는 사실 잠시 잠깐 우리 손에 맡겨진 외계손님 일뿐입니다. 가장 여린 모습으로 당신의 손에서 정체(正體)를 감추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 소중한 책 한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폭죽을 울리며 지구별에 도착한 이 외계인들이 정직하고 바른 지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외계인들의 친구가 기록한 일지(日誌)형식의 정착기(定着記)입니다. 이 일지 안에는 외계인들의 눈에 비친 지구인들의 생활과 삶을 노래한 시()도 있고, 이들과 생활하며 좌충우돌 경험한 나날들의 일기도 있습니다. 이 일지는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감사하며,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낯설게 느낀 외계인들의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가게 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쓴 제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외계인들을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외계인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적고 있는 저 역시 지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보다 먼저 이 지구별에 도착한 외계인중 한 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구인들의 언어에 익숙한 저이지만 여러분들에게는 낯선 표현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까닭입니다. 그럼 먼저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외계인들의 눈에 비친 지구인들의 모습을 시로 표현한 것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김민호 뒤통수 ..........윤희상 (북삼초 2)

공부할 때마다
김민호의 뒤통수를 쳐다본다
선생님이 안 보실 때마다 본다

민호 뒤통수를 볼 때마다 재미있다.
그리고 웃기도 한다
왜 웃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선생님이 못 보는 사이에
민호의 뒤통수를 보면서 웃고 있다.

외계인들은 지구별에 도착할 때, 보내지는 곳의 특색을 따라 변장을 합니다. 하지만 외계인들끼리는 자신들의 본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변장한 모습이 웃깁니다. 뒤통수만 보아도 그 허술한 변장에 얼마나 우스운지 참을 수 없습니다. 어디 뒤통수만 우스운 것일까요? 아닙니다. 서로를 바라보면 자기들은 그 변장이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 알기 때문에,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웃는 모습은 지구인들의 눈에는 산만하거나, “어리숙해보이기 때문에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단지 우스울 뿐입니다.

붕어빵 ....... 김형규 (삼척남초 6)

할아버지가 일을 하신다.

장에 나갔다.
붕어빵을 한 봉지 샀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붕어빵
버스 기다리다 붕어빵이 식는다.

가슴에 꼭 안고 버스를 탔다.

외계인들은 간혹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몇 억만년 먼 행성에서부터 날아와 지구별에 도착한 것이기에 보여지는 나이보다 속 나이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속이 깊습니다. 혼자 일하시는 할아버지가 안쓰럽고 걱정됩니다. 외계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랑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랑을 받으면 그것이 사랑인줄 알고 힘껏 그 사랑을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자신들을 향한 환대(歡待)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이지요. 지구인들은 마음 속 원망과 비교를 통해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만 외계인들은 주어진 환경속에서 힘껏 사랑하는 법을 아는 생명체입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퍽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이 종족들이 그렇게 위험하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을 겁니다. 이제 이 일지를 기록한 지구인의 눈에 비친 그 외계인들의 특징과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보도록 할까요? 이 일지를 기록한 지구인은 이 외계인들의 특징을 10가지로 기록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은 3-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이 외계인들이 순간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구인은 이렇게 표현해 두었습니다.

외계인은 자주 잊는다.
솔깃한 일이 생기면 자기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완전히 잊는다.
순간을 살기 때문이다.
외계인에겐 현재 이 순간만 있다.

화를 내는 모습이 무서워서 일단 미안한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내일 우유 먹을 때 또 똑같이 행동한다. “p205

당신은 끊임없이 무한재생하며 외계인들에게 말을 해도 항상 새롭게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 이 외계인들을 보면 내 말을 무시한다.” “머리가 나쁘다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외계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영원처럼 생각하며 충실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지구인들이 잊어버린 삶의 모습중 하나가 아닐까요?

외계인들의 두 번째 특징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아니 자기가 한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기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 이유를 일지를 적은 지구인은 지금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의 거짓말은 성인지구인들이 하는 교묘한 거짓말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 어린 외계인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순진한 거짓말이 어느새 교묘하고 지능적인 거짓말로 발전해갑니다. 그래서 일지를 적은 지구인은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그래도 소리 지르며 협박하지 않으련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거짓임을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친절하게 수십 번 말하기 정말 힘들지만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지구인으로 기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p214”

외계인들의 거짓말 앞에 협박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협박은 거짓말 레벨을 업그레이드 시킬 지도 모릅니다. 친절하십시오. 끝까지 친절하십시오. 수십 번 말하기 힘들지라도 친절하게 말해주면 외계인들은 그 가르침에 부응할 것입니다.

외계인들은 수건돌리기 놀이중 ⓒ권일한
외계인들은 수건돌리기 놀이중 ⓒ권일한

이들의 세 번째 특징은 외계인은 외계인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세계는 성적이나 숫자로 구분되어지거나 묶어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싸우고 오면 학교에 전화를 걸어 짝궁 바꿔주세요.” “그 친구랑 분리해주세요.”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아시나요? 날마다 싸우는 두 아이가 계속 붙어 다닌다는 것을.. “그렇게 붙어 다닐 거면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해주고 싶죠. 싸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자기들의 우정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네 번째 특징은 외계인들은 수렵 채집생활을 즐긴다는 겁니다. 지구별에 도착한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외계인일수록 지구별의 환경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습니다. 20, 30, 40, 한 시간, 지구별에 익숙해질수록 그들의 집중도는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집중하기까지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계. 즉 자신들이 떠나온 행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머지시간은 멍 때림으로 일관합니다. 간혹 지구별에 머문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고 멍 때림현상이 지속되는 외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트레이닝을 못 받은 까닭입니다. 그 트레이닝은 바로 외계인들의 수렵 채집생활에 익숙한 종족임을 알고 산과 들에서 충분히 훈련받도록 하는 것이지요,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주는 방법(p220)입니다. 이 방법을 잘 활용하면 닥쳐올 7년의 저주(북한도 무서워 떠는 중2)를 끊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트레이닝에 있어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이 외계인들은 많은 호기심들로 인해 위험한 행동도 과감히 감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영역 구분을 확실히 해라고 합니다. 이것은 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특징과 맞물리는 것인데 그들은 채집과 수렵활동을 나가면 영원히 계속. 그 순간을 이어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활동에 피가 뜨거워지면 그들은 잊고 있었던 지구정복의 욕구가 치밀어 오릅니다. 지구인들은 이 순간을 잘 넘겨야 합니다. 이때도 화를 내게 되면 외계인들은 반발심으로 자기들의 행성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끝까지 힘들더라도 친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어린 외계인일지라도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1년이라도 먼저 이 지구별에 왔다면 나중에 온 외계인들의 상관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늦게 온 외계인들 앞에서는 절대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의연한 모습만 보이고 대단한 지구인인체 합니다. 이들은 정말 자존심이 강합니다. 이 외에도 무한 반복재생기능을 가졌으며, 대단한 복제기술도 있고, 약육강식의 세계의 모습도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특징을 가진 외계인들과 우리는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채집과 수렵활동을 좋아하는 그들을 위해 산책을 권합니다. 너무 갑갑한 건물 안에 그들을 가둬두지 마십시오. 학교. . 학원, 그들은 초록의 나무와 하늘의 푸름과 흙빛 땅이 그들의 기운(氣運)을 원활하게 해 줍니다. '하지마라'는 그들이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이렇게 궁금한데, 이렇게 하고 싶은데. 하지마라니.....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비난은 다람쥐를 쳇바퀴에 올려놓고 뛰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p271”

길을 열어주세요. 하나의 문을 닫으면 그 외계인이 걸어갈 수 있는 다른 한 쪽의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허용의 범위를 넘어 설 때에는 부드럽게, 단호하게 은근슬쩍... 거절 등급에 따라 거절”(p275) 해야 합니다. 성인 지구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외계인이 더 이상 지구인이 되기 위해 배울 것들이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지구인이 되어 가면서 지구에서 살기 쉬운 여러 방법들을 익히게 되지만 외계인의 장점도 많이 상실합니다. 하지만 지구인들의 사랑과 이해와 관심을 먹고 자란 외계인들은 틀림없이 변합니다. 그들이 외계인으로 지내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도록 성인지구인들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 일지를 적은 권일한 지구인 같이 말입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 집에 표류중인 5명의 외계인을 떠올렸습니다. 이중 한 명은 이미 완벽한 지구인으로 적응해 독립생활을 하고 있고. 또 한 명의 외계인은 내년이면 자기 지구별 다른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이 제 곁에 머문 시간은 기껏 19. 계산할 줄 모르는 이 외계인들은 정말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주고 지구인으로 변해갔습니다. 사실 외계인들은 그렇게 계산할 줄 모르고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렸고, 행복했고 울었습니다. 저는 때로는 불안으로, 때로는 욕심으로, 그들의 지구적응기를 계산하고 있을 때, 그들은 후회 없이 순간을 최고로 여기는 그들의 특징을 살려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환희,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고, 맛 볼 수 없는 외계인으로 머무르는 그 때가 바로 품 안의 자식일 때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그 짧은 외계인으로서의 삶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남은 세 명의 외계인들은 먼 시선. 긴 호흡으로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글쓴이 Huuka kim, 일상을 노래하는 믿음의 순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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