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되기와 엄마되기, 둘 다 지향하고 살아내야 할 내 현장
나 되기와 엄마되기, 둘 다 지향하고 살아내야 할 내 현장
  • 최소연
  • 승인 2017.12.10 2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소영,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여성의 모성 경험과 재구성, 대한기독교서회, 2013년
​​​​​​​백소영,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여성의 모성 경험과 재구성, 대한기독교서회, 2013년
백소영,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여성의 모성 경험과 재구성, 대한기독교서회, 2013년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신교, 중산층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 결과를 정리/분석, 모성 경험의 큰 틀을 만드는데 기여해온 사회적 배경에 대한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도에 대한 대안과 공동체적 상상력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다.

연구 결과를 통해 저자는 모성경험의 유형을 여섯 종류로 정리한다. 모성결여형, 자격미달형, 자유부인형, 무한책임형, 천상소명형, 지상명령형. 각 유형별로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특정 그룹의 모성 경험에는 기독교적/유교적으로 요구되는 가치, 현대 사회가 점점 몰아가는 엄마의 역할, 등이 뒤엉켜 있다. 그로 인해 개인은 '엄마되기''나 되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분열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엉킨 지점을 풀어보기 위해 저자는 사회적, 유교적, 기독교적 흐름이 어떻게 모성경험에 대한 기대치를 형성해 왔는지를 짚어본다. '전업주부'라는 위치가 인간 사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전후 유럽에서 '중산층' 계급의 등장과 함께, 가정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개신교적인 새로운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가정에서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고 신앙교육을 함으로서 능력 있는 국가 구성원이자 신실한 신앙인으로 키워내는 그런 엄마 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기독교는 분명 그 당시 억압된 여성을 어느 정도 해방하고 사회적으로도 근대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으나, 서구사회에서 형성된 근대적 여성상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이게도, 한국 고대의 전통문화에서는 결혼한 여성을 훨씬 배려했다는 정황이 많이 있으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강하게 교조화된 유교 문화는 현모양처, 정절, 유교적 가부장 질서라는 바탕은 서구 근대 기독교 여성상과 훌륭하게 조합되어 강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후기 근대에는 사적인 공간와 공적인 공간의 철저한 분리됨으로서, 직장을 갖는 엄마들의 경험은 그 둘 사이를 어떻게든 종횡해보려는 몸부림이 시작되었고, 한국 경쟁사회에서는 전문 전업맘(아이가 경쟁력 있는 스펙을 갖게 하기 위해 코치 역할을 하는 엄마)이라는 기대치까지 형성해 왔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요약하자면 두 가지다. 왜 남성에 비해 여성은 나 되기엄마되기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해야 하는가. 그 둘을 조화하는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 번째 질문은 위와 같이 사회적 맥락을 짚으며 풀어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제도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답하고 있다. 공동체의 공공성을 개발하고 제도화 시키는 예로서, 단지별 공공육아 시설 (노인정과 같은), 사회봉사 의무기간 제정 (군대 대신, 혹은 여성들에게), 근무시간 유연화(혹은 칼퇴근), 등 매우 구체적인 사례들 혹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그리고 마무리하면서, 모성이 꼭 여성 전유의 경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기보다 여린 생명을 돌보고 살려내는 포괄적인 의미임을, 그런 면에서 결혼과 육아라는 전통적인 시스템은 공동체의 실험이자 생명을 돌보는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그 밖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이러한 경험은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의 첫 장을 읽으며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부분은, 한국에서 여성, 엄마, 직장맘으로 사는 구체적인 일상이 묘사되는 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미국에 살고 있는 공무원으로, 양날의 검일 수 있는 양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집안일을 반 이상 맡아 하는 남편을 둔 내 상황은 뭐라 불평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부대꼈던 부분은 주로 내 윗세대로부터 받은 문화적인 기대치, 전업맘들과의 오해,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구조적인 인프라에 있다.

모성경험은 다양해졌으나, 그 근간을 이루는 우리 관점이 아직 고정적임을 알고 나니, 이제 모성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판단과 비교가 오가더라도 덜 휩쓸리고 덜 속상할 수 있을것 같다. 모성경험의 공통분모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자 애써 볼 수 있을 것 같다. 직장맘은 자기성취를 이루니 무조건 좋겠다거나, 일을 해도 남편과 가정을 돌보는 일이 최우선이라거나, 혹은 전업맘에게 무조건 일을 하라고 충고하는 다른 직장맘과이거나, 모두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대한 압박 혹은 무력감 혹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공통점, 그리고 그 공통점을 만들어낸 복잡하게 엉킨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구조적 인프라의 경우, 미국도 한국처럼 대부분 개인의 역량과 자원에만 의지해야 하는 구조이다. 나의 경우 아이들이 두세 살 까지는 최대한 애착형성을 하기에 편안한 베이비시터 분을, 유치원은 아이들이 열시간 정도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안전하고 편안할 만한 곳을 출퇴근 동선 내에서 찾아야 했다. 단지 안에 의지되었던 이웃분이 이사간 후로는 급할때 부탁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고, 우리 부부의 통근거리는 한시간을 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버틸수 있는 이유는 칼퇴근이 가능하고 베네핏이 좋다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좀더 지속가능하고 안정되고 시간적으로도 유연한 돌봄 시스템 같은 것을 상상해본다. 혹은 품앗이같은 그러나 조금 더 조직화된 그룹이어도 좋겠다.

책에 소개된 구조적 대안의 제안들은 정말 신선했다. 미국 상황에서 이런 대안에 상응할만한 정책안을 내가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의 제안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많았는다. 그런데, 내가 아는 미국의 사회정책들은 대부분 개인에 대한, 혹은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면, 데이케어 비용 가운데 일정액은 세금을 면해준다는 식이다. 그래서 혹시 다른 성격의 정책들, 공공/공동을 주제로 하는 정책들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게, 풀뿌리처럼 지역사회에서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수고와 시간을 나누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는데, 하루 생활권 거리 내에서 필요가 비슷하고 필요의 정도도 비슷하게 절박한 경우를 아직은 못 만났다. 이사온 이 곳에는 엄마가 전업맘이거나 친척들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많다. 그때 그때 도움주는 이웃들이 나타날 것에 의존해야 하는, 아니면 우리 휴가를 알차게 나누어 써야 하는 나의 현실이 감사만 해야하는 상황이기에는, 아무리 모성에서 비롯된 죄책감을 내려놓는다 해도, 뭔가 불공평하지 않은가.

공부나 배움이 내 실존적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그런게 공부라는 것을 일찍 알았다면 다른 공부를 했을 것 같다. 약간의 이론적, 학문적 접근이 내면적 갈등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심리적인 압박을 이 정도나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멀게만 느껴지는 학자들의 수고- 깊이 연구하고 넓게 나누는-가 진심 고마웠다.

비록 미국은 아빠들의 육아참여는 한국보다 훨씬 쉬운 환경이지만, 결혼연령은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지는 추세인 듯 하다. 또 생명을 돌보는 일에 대해 미국의 현실이 갖는 특수한 이슈들도 있다. 나 되기와 엄마되기 둘 다 지향하고 살아내야 할 내 현장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함께 고민하고 싶은 장을 찾아보고 싶다. 나 되기와 엄마되기를 통합해 나가려는 노력이 나의 삶뿐 아니라 내가 돌보는 생명 모두를 풍성하게 해주기를, 그리고 나를 비롯한 여성뿐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연약한 생명을 돌보는 일에 몸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최소연은, 카운티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1.5세 직장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