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숭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넘어서는 성경읽기
‘문자’를 숭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넘어서는 성경읽기
  • 정한욱
  • 승인 2017.11.01 0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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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성서유니온, 2017년
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성서유니온, 2017년
김근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성서유니온, 2017년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약신학을 전공하고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하지 않으면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진리자체와 혼동해 버리기 쉽고, 그때마다 교회는 세상의 재앙과 화근으로 전락해 왔다고 지적한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는 저자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 말씀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이 덧없는 삶과 세상을 끝까지 긍정하고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저자의 주장을 약간의 내 생각과 섞어 정리해 보기로 한다. 성경읽기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의미를 단정하거나 적용점부터 찾으려고 서두르기 전에 먼저 해당 본문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또한 신구약 본문을 해석하여 우리의 상황에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성경 역사에 대한 공부와 동시에 오늘 우리의 상황에 대한 공부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참된 성경 해석자는 책 한 권의 사람(Homo unius libri, 토마스 아퀴나스는 ”hominem unius libri timeo" "나는 책 한권의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이 아니라, “한 손에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든 사람”(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Take your Bible and take your newspaper, and read both. But interpret newspapers from your Bible”)이다.

이해할 수 없거나 받아들일 수 없거나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에 접했을 때는 무턱대고 문자 그대로순종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신앙체계에 맞는 하나의 정답만을 고집하기 전에, 삶의 복잡성과 성경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본문을 깊이 숙고하여 문자의 뒤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경의 문자를 지나치게 숭배한 나머지 자충적 종이 교황”(칼 바르트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숭배하다시피 하는 근본주의적 행태를 지적하기 위해 쓴 말이다.)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제의법이나 시민법 같은 특정 부분이 아닌 구약 율법 전체가 폐지되었으며, 동시에 그 전체가 성취되었다. 구약과 신약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약시대란 구약이 없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예수 안에서 구약 말씀의 온전한 의미가 드러나며 성취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것은 구약이 증거하는 새로운 날들과 변화된 세상 전체를 현실과 일상으로 만드신 것을 의미한다.

시대와 역사와 문화를 초월해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주장이자 해석의 원리는 사랑의 법이다. 성경의 모든 본문들, 특히 차별이나 폭력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본문들은 이 원리에 근거해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세한 개인윤리에는 극도로 집착하면서도 나와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무감각하여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구하는 삶을 놓쳐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읽기란 근본적으로 공동체적인 과업이며, 참된 성경읽기는 나를 넘어서야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구약과 신약은 죽기 직전이라도 특정한 지식체계를 믿으면 내세가 보장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때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을 경험하게 되며, 나아가 영원토록 그 나라를 누리며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증거한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십자가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굳게 믿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식인 정의와 공의를 따라 이 땅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은 한마디로 근본주의복음주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할 성경의 문자를 숭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분들에게는 이 정도의 온건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도 상당히 진보적이거나 심지어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한국교회의 토양이야말로 성경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습하고, ‘창조과학을 신봉하며, 혐오와 배제를 자행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심지어 신앙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근본주의의 정신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공의대신 개인의 영혼(구원)을 위해기록된 성경만을 믿고, ‘사랑의 법대신 혐오와 배제의 법을 열심히 실천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본회퍼의 말마따나 "사람들의 불행을 먹고 연명하는" 게토(ghetto)화된 늙은이들의 종교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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