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 바울 1 - 바울신학과 종교개혁
[곽건용] 바울 1 - 바울신학과 종교개혁
  • 곽건용
  • 승인 2017.10.3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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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그는 누구인가? - 로마서 1:1-6 갈라디아서 1:11-24
사도 바울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사도 바울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오늘부터 다섯 주 동안 사도 바울에 대해 설교하겠습니다. 과거에 바울을 주제로 한 성경공부도 했었고 단편적으로 바울 서신의 여러 구절들을 본문으로 설교한 적도 있었지만 바울신학을 연속설교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종교개혁 5백 주년이 되는 올해가 가기 전에 루터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됐던 사도 바울을 살펴보지 않으면 좀 섭섭할 것 같아서입니다. 물론 기독교와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인 바울에 대해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말입니다. 물론 다섯 번 설교하는 것으로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제대로 살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연속설교는 바울신학 설교 제1부이고 내년 상반기에 제2부를 할 계획입니다. 미리 말씀하는데 이번 연속설교는 역사와 신학 또는 철학사상 강의에 가깝습니다. 실제 생활에 직접 적용할 윤리, 도덕, 또는 신앙적 행동에 대한 얘기라기보다는 매우 이론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 내용도 딱딱하고 별로 쉽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예화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바울신학을 제대로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부터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크린에 자료도 올려가면서 설교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잠시라도 딴 생각하거나 졸면 흐름을 놓칠 가능성이 높으니 정신 바싹 차리시기 바랍니다.

바울신학은 올해 5백 주년이 되는 루터의 종교개혁,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교 개혁의 발판이 된 사상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종교개혁의 표어는 바울의 로마서에서 비롯됐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바울신학에 근거한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바울신학의 중요성은 시간적으로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신학적 기초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원후 4세기의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게 공인받고 더 나아가 국교가 되기 전까지 초대교회에서는 다양한 신학들이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의 것으로 남아 있는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역사자료들을 보면 내용이 상당히 다른 신학들이 공존하며 경쟁하고 있었는데 그 경쟁에서 승리한 신학이 바울신학이었던 겁니다.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것도 바로 이 바울신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스물일곱 권인 신약성서 가운데 바울의 이름이 붙어있는 책이 무려 열세 권이나 됩니다. 이들 중에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은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등 모두 일곱 권이지만 말입니다. 나머지들은 그의 제자나 후대인이 써서 그의 이름을 붙인 책들입니다. 지금은 이런 행위가 속임수로 처벌의 대상이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자 또는 후대인이 스승 또는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바울신학에 대한 논란

2천 년 교회역사에서 바울신학에 대한 논란은 그친 적이 없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사상과 삶과 하신 일을 크게 왜곡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했는데 정작 도래한 것은 교회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울이 예수님의 하느님나라와는 무관하게 교회를 세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이라도 바울신학에 근거한 신앙관, 교회관, 선교관을 버리고 예수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이와는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 동안 바울신학을 잘못 이해해왔다는 겁니다. 바울신학은 예수님의 하느님나라와 대립하기는커녕 서로 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 사람들은 바울신학을 잘못 이해해서 둘을 대립시켰다는 겁니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이 연속설교가 끝난 다음으로 판단을 미루겠습니다.

사실 바울신학과 예수님 가르침의 일치 여부를 가리는 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바울신학 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바울신학 자체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니 말입니다. 그를 위대한 사상가요 기독교신학의 기초를 닦은 출중한 신학자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를 지독한 남성우월주의자요 동성애혐오주의자(호모포비아)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기독교를 망쳤다는 겁니다. 완전히 상반된 평가인 겁니다. 그런데 바울을 폄하할만한 여지가 없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로마서 1:26-27)

불의한 사람들은 하느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느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6:9-10)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고린도전서 14:34-35)

물론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텍스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차차 살펴볼 예정입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누가 됐든, 바울이 됐든 예수가 됐든 한 사람의 사상과 삶은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몇몇 구절들을 끌어와서 이것을 봐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구에 대해서도 공정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약학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배운 적 없고 오로지 책을 통래서 아는 정도이지만 이 분은 구약학 분야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 분이 어떤 강연에서 자기는 서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는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역사상 막대한 영향을 미친 구약학자나 유명한 서구의 사상가 이름이 나올 것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바울은 의외였습니다. 하기는 바울이 서구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또 그의 사상은 기독교와 교회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신학자 아닌 진보적인 철학자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도 바울에 대해 중요한 저서들을 썼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학자이니 그녀가 쓴 바울 다시 읽기는 놀랄 일이 아니라고 쳐도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도바울이나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이나 야콥 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신학같은 책들은 교회와 기독교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저서들입니다. 이들 저서들은 서구사상에 끼친 바울의 지대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신약성서와 현대의 다양한 철학사상들과의 대화를 도모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피터 제닝스의 데리다를 읽는다 바울을 생각한다까지 보태면 독서목록이 상당히 다양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신약학자들의 저서들 외에 이 책들이 제가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고하는 책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지례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머리 아프게 공부할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고 저입니다. 여러분도 이들 책을 읽으면 더 좋겠지만 그런 부담은 안 가져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정신 바싹 차리고 제 얘기를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바울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 전에 오늘은 그 예비 작업으로 그 동안 바울신학에 대한 사람들의 중대한 오해 몇 가지를 바로잡겠습니다. 바울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오해들을 거둬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중요한 점에서 그의 신학을 심각하게 오해하게 되니 말입니다.

첫째로 신약성서의 책들이 기록된 연대에 관련된 오해입니다. 진정한 바울서신들인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등 일곱 권은 기원후 50년대 초중반으로부터 70년경까지 쓰인 텍스트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한지 약 20여년이 지난 후부터 쓰이기 시작해서 40년 정도가 지난 후에 완료됐습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책은 마가복음서로서 기원후 70년경에 쓰였습니다. 그 다음이 마태, 누가, 요한의 순서인데 모두 90년에서 100년경 사이에 쓰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들 복음서보다도 늦게, 기원후 2세기 초중반에 쓰였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서신은 가앚 일찍 쓰인 마가복음서보다 더 일찍 쓰였던 겁니다. 스물일곱 권의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바울의 서신들인 겁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신약성서의 기록 순서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아는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이 사실을 망각합니다. 신약성서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순으로 편집되어 있고 그 다음에 사도행전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야 로마서 등 바울서신들이 나오니까 그 순서대로 기록됐다고 오해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배경은 복음서가 예수님 당시이므로 바울서신보다 앞서지만 텍스트가 기록됐을 때 반영된 상황은 그 반대로 바울 서신이 복음서에 앞선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바울서신은 바울이 직접 쓴 텍스트들이지만 복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 마태니 마가니 누가니 요한이니 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으니까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그 책들은 썼다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복음서들은 그들에 의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직접 제자들은 갈릴리 촌락 출신으로서 그리스어를 말할 줄도 모르로 쓸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후대의 사람이 그들에게 구술(口述)을 받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지 들어서 기록한 책이 복음서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복음서들이 바울서신에 비해서 역사적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반영되어 있는 시대가 복음서보다 바울서신이 앞선 시대이고 바울서신이 직접 바울이 쓴 서신인데 반해서 복음서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둘째로 사도행전은 최소한 바울에 관한 얘기에 있어서는 바울이 직접 쓴 서신들보다 역사적으로 덜 정확하다고 봐야 합니다. 곧 역사를 따질 때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는 사도행전의 서술보다는 바울서신의 서신에 우선권을 줘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중반부 이후로는 바울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보도합니다. 9장에서 바울의 회신을 보도하고 15장에서 예루살렘 회의에 대해 보도한 다음으로는 거의 전적으로 바울의 활동에 대한 얘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사도행전이 아니라 바울행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일차적 과제는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가급적이면 일어났던 그대로 후대에 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도행전은 첫 교회의 선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제국으로 퍼져나갔다는 역사관의 틀에 맞춰서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한 책입니다. 저는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역사책은 특정한 사관(史觀)에서 따라 기술됩니다. 사도행전도 예외가 아니란 얘기입니다. 다만 진정한 바울에 대해서 알기 원한다면 사도행전의 서술보다는 바울의 직접 서신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셋째로, 바울서신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수신자들, 그러니까 로마와 데살로니가, 고린도, 갈라디아, 빌립보 교회가 처해있던 각 교회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곧 그들 교회가 각각 갖고 있던 독특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서신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신학사상이나 보편적인 신앙의 원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쓴 논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바울서신들에 근거해서 이른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독교사상이나 신학을 정립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모두가 특정한 상황에서 벌어진 특정한 사건에 대한 텍스트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바울서신들은 대개는 매우 논쟁적입니다. 만일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면 얼굴 붉히고 고함을 쳤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정이 그렇지 않아서 이 정도였던 겁니다. 또한 이들 서신들에 대한 답신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들 서신들에 대해서 수신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을 일방적입니다. 답신이 한두 개라도 남아있다면 서신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을 텐데 이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넷째는 바울이라는 사도는 예수님의 직제자들이었던 여타 사도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점입니다.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리더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이들이 첫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이들이 그런 위치와 권위를 갖게 된 것은 뭣보다 그들이 예수님의 직접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와 만나기는커녕 이른바 회심하기 전에는 예수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밝힙니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 신앙에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갈라디아 1:13-14)

이러던 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서 자기가 사도라고 주장하지 않나, 자기들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이방인 선교를 주장하니 열두 사도를 포함해서 예루살렘 교인들이 그를 경계하고 심지어 내치려 했던 것도 이해할만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바울과 다른 사도들과 갈등도 컸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느님이 자기를 부르셨다는 사실과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갈라디아 1:15-16)

열두 사도들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됐고 그로 인해서 사도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기는 그런 경험은 없지만 하느님이 모태로부터 자기를 부르셔서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전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이 점은 큰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바울과 열두 사도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갈등의 원인이 뭐고 그게 어떻게 해소됐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얘기를 마감하고 여운을 남긴 채 다음주일에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울신학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일곱 서신들을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다 정독할 여유가 없으면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만이라도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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