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대리운전기사 그러나 본업은 목사!
밤에는 대리운전기사 그러나 본업은 목사!
  • 황명열
  • 승인 2020.11.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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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일상의 조화, 이웃을 위한 복음 사역 위한 8년차 개척교회 목사의 처절한 실패담
박종배, 에젤, 2020

 

<,고객님! 대리운전 목사입니다>라는 책이 발간됐다. 강원도 강릉의 하늘뜻푸른교회를 섬기고 있는 박종배 목사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대리운전과 택배일로 생계를 꾸려가며 목회를 병행하는 일목’(일하는 목사)의 처절하리만치 생생한 삶의 밑바닥 이야기이다. 이웃을 섬기며 일상과 함께 가는, 이 시대 맞춤형 목회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박 목사가 섬기는 하늘뜻푸른교회의 푸릇푸릇한 행보도 담겨 있다. 뜨거운 애정을 품고 한국교회의 정화와 회복을 바라는 그의 따끔한 일침은, 아프지만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쓴 소리를 마주할 수 있다.

박종배 목사는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단연 열정과 실적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잘나가는 부목사로 오랫동안 사역을 했었다. 그 교회가 강릉에 새로운 교회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담임목사와 함께 발령을 받고 내려갔다. 서광이 비치기만 했던 박 목사에게 먹구름이 몰려왔다. 함께 내려간 담임목사로부터 질시와 괘씸죄에 걸려 더 이상 그 교회에 있을 수 없었고, 결국은 담임목사의 방해로 교단에서 지원하는 개척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

앞길이 꽉 막힌 상황이지만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곳,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강릉에 부푼 꿈을 안고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거대교회에서 사역했던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고, 은근히 그런 교회를 이루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런 생각과 시선으로 몇 안 되는 교인들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은근히 교인수와 헌금액도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 가운데 몇 안 되는 교회 창립 멤버들 마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부흥은 커녕 교회는 점점 쪼그라들었고,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던 중 목회멘토링사역원에서 진행하는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에 참석한 게 새로운 전환이 되었다. 교회와 목회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버리는 새로운 형태의 목회를 하는 이들을 만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저게 목회 맞나라며 혼란스러웠지만 현장을 방문해서 그들의 삶과 사역을 직접 목격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그러면서 일상이 빠진 영성이웃 없는 복음에 회의가 들었고, ‘일상이 조화되고 이웃이 존재하는 복음의 프레임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박 목사는 이 때를 비둘기같이 고요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날이라고 고백한다.

워크숍을 다녀온 다음날 박 목사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찾았다. 그게 대리운전 기사 일이었다. 바로 지원서를 내고, 시급 5천 원으로 대리 첫 콜을 탔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게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동안 대리운전을 하면서 온갖 진상 고객들로부터 행패와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 했던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주변에서 대리운전 기사와 손님의 사망사고를 전해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가슴이 철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박 목사는 대리운전만으로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어려워서 택배일도 했다. 사례비 한 푼 없는 개척교회 목사가 대학생 자녀 둘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낮엔 택배로,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커녕,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배고픔과 목마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때로는 이러려고 개척을 했나싶은 원망도 없지 않았다.

박 목사가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도행전 18절에 나오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 때문이다. 지금 여기가 땅 끝이고, 여기서 만나는 택배 고객, 대리 고객들이 땅 끝에서 만나는 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뒤로부터 일을 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만나는 누구든 돈벌이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영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상 손님조차도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끔씩 대리 고객으로 교회에서 상처받고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는 소위 가나안 성도'들도 만난다. 그들에게 그 교회와 목사를 대신해서 사과하며 그들을 진정으로 대할 때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도 종종 있었다.

땅 끝을 알고부터 교회 바깥에서 뿐만 아니라 교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예배 시간에 졸고 있는 교인을 봐도, 비록 적은 액수의 헌금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였다. 일주일 내내 피곤하게 일하면서도 쉬는 날 예배당에 나와 있는 존재 자체가 고마웠고, 피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드리는 헌금이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박 목사는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거친 광야를 걷는 중이다. 그러나 거친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세밀히 만나주시고, 영혼과 육신의 만나를 때를 따라 공급하셨음을 증언한다. 무엇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목회 방식에 대한 과오와 허점을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

박 목사의 목회방향이 교세확장과 교회부흥에서 지역과 사람을 섬기는 쪽으로 서서히 바뀌어갔다. ‘내 교회, 내 교인만잘되는 게 전부라는 생각이 박살나버렸다. 노동의 경험을 통해 낮은 곳으로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도록 하나님은 박 목사의 목회 프레임을 새로이 짜가고 계셨다.”

 

CBS '새롭게 하소서' 유튜브 영상 갈무리
CBS '새롭게 하소서' 영상 갈무리

박 목사가 소위 잘 나가는목사로 아직까지 있었다면 그는 좀 더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은총은 어쩌면 그에게 먼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목사로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가난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변화를 이뤘기에 지하 예배당이지만 어떤 대형교회가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고 있다책에서 박 목사는 이렇게 경고한다. "나처럼 하면 교회 문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박 목사는 지금도 우리는 하늘뜻푸른교회의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인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도행전의 건강한 공동체를 서로 함께 이루어가는성도가 될 것을 선언하고, 그루터기에 새순이 파릇파릇 자라길 기대하며 오늘도 대리운전 목사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영혼을 섬기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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