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웅 목사, "모리아 산(예루살렘)은 바위산, 황량한 벌판, 이름없는 곳”? ...엉뚱한 주장
이지웅 목사, "모리아 산(예루살렘)은 바위산, 황량한 벌판, 이름없는 곳”? ...엉뚱한 주장
  • 김동문
  • 승인 2020.10.10 07: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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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뜻푸른교회 주일 예배(2020.04.05) 영상 갈무리
높은뜻푸른교회 주일 예배(2020.04.05) 영상 갈무리

 

높은뜻 푸른교회 협동목사인 이지웅 목사는, 지난 2020년 4월 5일 1부 예배에서, 누가복음 19장 28절을 본문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30분 분량의 설교의 대부분을 옮겨본다. 이 목사가 설교에서 묘사하고 있는 몇몇 주장에 대해, 거리를 두고 짚어본다. 주로 예루살렘의 지리와 지형에 관한 것이다.

 


1.

13:43 저는, 종려주일이 되면, 예수님께서, 그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시는 장면을 생각하면, 항상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예수님과 무려 약, 약, 대략 2000년 전, 2000년의 시간 간격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 종려주일날, 올라오셨던, 그 예루살렘 언덕길을, 무려 2천 년 전에, 동일한 그 길을, 걸어온, 걸어올라 왔던, 그 한 사람을, 저는 압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곳은, 예루살렘으로 불리지는 않았죠. 그곳은, 이렇게 불렸죠. 모리아 산.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 이예요. 그리고, 예루살렘이 위쪽 부분에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을, 모리아 산, 혹은 모리아 언덕,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올라오셨던 그 예루살렘 언덕길을, 약 2000년 전에, 그 통일한 길을, 올라왔던,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올라왔던 그 길을, 2천 년 뒤에, 예수님이 올라왔어요.

2.

설교자가 예루살렘과 모리아 산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아주 구체적인 장소로 떠올리면서, "예수님께서, 올라오셨던 그 예루살렘 언덕길을, 약 2000년 전에, 그 통일한 길을, 올라왔던,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올라왔던 그 길을, 2천 년 뒤에, 예수님이 올라왔어요."라는 표현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별것 아니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오가시던 길은 위의 지도의 오른쪽 화살표 방향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오간 예루살렘(미리아산)은 남동쪽 화살표 방향이다. 굳이 서울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은 동대문 방향으로, 아브라함은 남대문 방향으로 한양을 오간 것과 비슷한 것이다. 또한 굳이 표현한다면, 예수와 아브라함이 같은 길이 아니라 같은 곳을 올라왔다는 정도일 것이다.

​​

3.

저는 이 두 장면이, 항상 종려주일만 되면은, 그게, 오버랩 되더라고요. 창세기 22장에 언급된,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장면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아마 대부분 다 알 거예요.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이건 알더라고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한번 성경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펴시겠습니까? 창세기 22장,입니다.

높은뜻푸른교회 주일 예배(2020.04.05) 영상 갈무리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제가 읽어 드릴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드리라는 거죠. 하나님도 아세요. 이삭이라는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은 아세요. "너의 아들, 너의 아들, 니가 사랑하는 독자", 다른 아들은 없고, 니가 사랑하는 그 아들, 그러니까 하나님도 아세요.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말씀을 하세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혹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으세요? 신약에게서 이 표현이 나옵니다.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에게 임하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신 거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 그대로를,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거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나한테 바쳐"

​이거 미친 거죠. 어떻게, 사람을 번제로 드립니까? 이게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이랑 맞습니까? 말이 안 돼요 말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이건 너무 폭력적이지요. 여러분 100세 넘은 아들이에요. 금지옥엽으로 키운 아들이에요. 내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어떻게 드립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그 한 발짝 한 발짝 꼭꼭 눌러가며, 그 모리아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에요. 2천 년 뒤에, 여러분,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올라가고 계신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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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이해가 되지 않는, 그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이고, 비 합리적인, 그,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이 살펴볼 순 없지만, 한, 몇 가지만 번 살펴보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하고 반응했는지? 3절, 바로 다음절이에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러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말은, 충분히, 자서,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정한 시간에,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정한 시간에, 목적을 가지고. 혹시 이런 거, 경험하신 적 있으세요? 막 감정이 격해졌을 때, 막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염려나, 막 눈물이 막,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 쏟아져서 막 울고 있었을 때, 아니면 반대로, 너무 기뻐요, 막 흥분되지요. 그런데 한숨 푹 자고 일어나요. 그러면은,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져요. 이게 뭐지, 감정이 어디 갔나? 그런 때가 있어요. 아브라함이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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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 전날, 하나님이 진짜 말씀하셨어요. 그 내용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그건, 기가 막힌 감동인 것이죠. 살아계신 하나님이 직접 현현하셔서, 아브라함, 사람에게 말씀하세요 이건 감동입니다. 감격이에요. 흥분일 수 있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그다음이 중요해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이다음 잘 보세요.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라고 되어있어요. 번재에 쓸 나무를 쪼개가지고"

​여러분 아브라함은, 수십 년 동안, 광야에서 산 사람입니다. 광야 지형, 기가 막히게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브라함이에요. 나무 있지요! 그러나, 어디에도, 번제에 쓸 만큼, 충분한 나무가 있는 곳은, 없습니다. 모리아 산은, 바위산이에요. 나무, 있죠! 수풀! 그거, 금방, 사그라드는, 타버리는, 절대 번제로, 못씁니다. 아브라함 알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어느 .. 순종하는 척, 순종하는 척할 수 있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이쿠 하나님, 아이코 나무가 없네. 아이코, 내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고 나무가 없네. 어이가 없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충분히, 핑계 댈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핑계를 찾은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았어요. 여러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무를 쪼갰다는 것은, 그 전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짠 것이에요. 시뮬레이션을 한 것이에요. "내가 어떻게 할까? 아냐 거의 분명히 나무가 없을 텐데 어떻게 하지? 내가 어디 가서 빌려서 가져갈까? 아니야, 내가 패 가자!" 그 전날 다 생각한 거죠. 충분히 피할 핑계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이 선택한 것은, 핑계가 아닌 것이에요. 말도 안 되는, 그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그,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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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리아 산은 바위산?

 

"모리아 산은, 바위산이에요. ", "모리아 산은, 황량한, 벌판에 있어요. 수풀이 우거진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황량한 벌판, 그러니까 이름 없는 곳 " 이라고 이 목사는 몇 차례 강조한다. 이 주장을 근거로 하여 아브라함이 미리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해가는 장면을 풀이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해가는 이유에 대한 그의 유일한 근거가 모리아 산은 바위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리아 산은 바위산이나 황량한 벌판에 있는 곳이 아니다. 모리아 산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모리아 땅에 있는 어떤 한 산을 뜻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

​위의 위성 지도에서 보듯이 산지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봉우리(산)인 것이다. 모리아 산, 그곳을 황량한 벌판 정도로 단정지을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은 기드론 골짜기에 자리한 기혼샘을 중심으로 기원전 4500년경에 정착문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도 이미 기원전 2,000년 전후하여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고고학 발국결과는, 기원전 17세기에 기혼샘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성벽을 쌓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그리고 모리아 산이, ‘바위산’, ‘황량한 벌판’, ‘이름없는 곳’이라는, 이 목사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주요 지반이 석회암 산지라는 면에서 바위산이었다고 말한 것인가?그런 것같지 않다. 해발 고도가 900미터 안팎이고, 맑고 깨끗한 샘과 기드론골짜가 같은, 시냇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둘러 쌓인 예루살렘은, ‘황량한 벌판’이 아니라, 비옥한, 물이 풍성한 ‘(산)성’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또한 이집트 역사 기록에, 4천년 전후한 시기부터 가나안 도시 국가 목록에 등장하는 것을 본다면, ‘이름없는 곳’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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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만 더, 살펴 보실까요? 5절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해요.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모리야 산에 드디어 도착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말한, 선택한 것은 뭐냐면은, 종 2명을 데리고 갔는데, 종 2명에게는, 모리아 산 밑에 머물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아들 이삭과만 올라갑니다. 생각해보세요. 100세가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그 금지옥엽 키운, 아들을, 밧줄로 묶어, 칼을 들어, 심장에 내려 꽂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만일에 종이라면, 우리가 만일에 그 당시 아브라함의 종이라면, 옆에서 손뼉 치고 있겠습니까? 아니에요, 저는 안 그럴 거예요. "어, 미쳤네, 어, 우리 주인 미쳤네! 나이가 많이 들어서, 뭐 치매인가? 어이쿠 미쳤네. 어휴 저 칼날 어이쿠" 저는 막았을 거예요. "굳이 그러지 마십시오. 이거 정상 아닙니다 미쳤습니다." 저는 100퍼센트 손잡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걸 몰랐겠습니까? 당연히 알죠. 그래서 종을 밑에다 둬요. 그리고, 아들 이삭과만 올라갑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더 많이 살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준비한 좀 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 지웠습니다. 왜냐하면은, 오늘 제가 살펴보려고 한 것은 이게 아니에요. 이다음 말씀이거든요. 아브라함이 종에게 한 말 때문이에요. 보실까요? 5절, 제가 읽어 볼게요.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이다음 말씀입니다."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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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갈 때, 그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갈 때, 무슨 마음으로 올라가는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래요. 목적이 무엇인지,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죽이는 게 아닌 거죠. 번제가 아닌 것이에요. 그, 모리아 산, 그 가파른 모리아 산, 숨이 가쁜, 그 모리아 산언덕을 올라가는 이유는 하나에요. 뭔가요? 예배하기 위한 것이죠. 전, 이 말씀이 좋더라고요. 이해되지 않죠. 그 말씀이 너무 비합리적이죠. 이거는 이거 마땅하지 않은 것이죠. 폭력적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 하나님 말씀 앞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그, 떼어지지 않는 그 발걸음을 꾹꾹 눌러가며, 그 가파른 모리아 산을, 그 언덕을 올라가는 이유는, 하나에요. 하나님을 예배 위해서. 내가 이해되지 않지만, 내가 하나님 예배합니다.

​기억하세요. 아브라함이 올라갔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그, 옮기기 힘든 발걸음을, 꾹꾹, 참아가며, 올라갔던, 그 모리아 언덕을, 약 2천 년 뒤에, 예수님께서, 올라가세요. 예수님이, 그, 예루살렘 언덕, 그 올라가신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건 죽기 위해서. 그런데 여러분 아세요? 하나님이 그 아브라함의, 예배, 그 순종이 좋으셨나 봐요. 왜냐하면, 여러분, 모리야 산은, 황량한, 벌판에 있어요. 수풀이 우거진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황량한 벌판, 그러니까 이름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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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곳을, 하나님이, 정말 기가 막힌 놀라운 장소로 바꾸세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역대하 3 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황량했던, 누구도 알지 못했던, 누구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던, 버려진 땅이었던, 그 모리아 땅을, 그 언덕을, 여러분, 하나님이, 성전 되게 하세요. 그리고 교회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그 바위를, 기준 삼아, 지성소를 만듭니다. 여러분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이는. 지성소가 돼요.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좋으셨나 봐요. 너무 좋으셨나 봐요.

​그 아브라함이 간 길을, 예수님이 올라갔습니다. 죽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 위해,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은 아시죠! 예수님은 아시죠! 2000년 전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에, 하나님이, 미리,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준비하였다는 것을, 아니 하, 예수님은 아시죠! "이삭 안 죽어. 야 야, 이삭 안 죽어! 야야 걱정하지 마! 얼마나 말씀하고 싶으셨겠어요? 예수님은 아시죠! "아이고 이삭 안 죽어" 이삭을 대신해서, 죽을, 수 양을, 여호와 이래 되신,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세요! 예수님은, 또 아세요. 지금 자기를 대신할 양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웬 줄 아세요? 예수님이, 바로 그 양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아시기 때문에 그래요.

높은뜻푸른교회 주일 예배(2020.04.05) 영상 갈무리

예수님, 충분히 피할 수 있었어요. 그까짓 거 뭐, 굳이 하실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 그 자리를 피하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아셨어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어요. 예수님이 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아세요. 그런 수치, 그런 모욕, 그런 조롱, 그런 처참함, 굳이 당하실 필요 없는 것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양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에 그래요. 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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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씨 2022-02-24 23:12:53
생각이 다르시다는 것 깊이 존중합니다. 그리고 존중받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깊이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끼리(예수 안의 형제자매끼리/같은 기독교인) 서로 비판하고 지적하고 그러는 모습 조금 지겨운 것 같아요. 비판적 사고와 회의적 시각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고 또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히 되는 과정의 좋은 도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냥 요즘 이 시대의 언론, 사회, 우리들의 모습, 우리 개인의 모습을 보면, 특히 SNS에 즐비하는 지적질과 판단들… 우리가 신도 아닌데 마치 우리가 판사처럼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틀렸다 옳다, 잘했다 못했다…. 등… 휴… 좀 지겨워요. 그리고 솔직히 신물나도록 싫더라고요. 그만 듣고 싶어요. 우리끼리 화살쏘기.

이게뭔가요 2021-05-12 16:33:36
기가 막힙니다.
아니 누군가의 설교를 비판하고 싶은 것은 알겠는데, 논거가 너무 빈약하고, 흠집 잡고, 설교 복사해 놓은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는 글인가요?
기사의 요지는 "모리아산이 돌산이 아닐 수 있다. 돌산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럼, 반대로 돌산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있나요?
모리아 지역의 한 산인걸 모르고 설교자가 저렇게 표현했겠어요?
모리아 지역 가보시긴 하셨나요??

건설적인 비판을 하고, 행동하는 건 좋은데,
기사 내용이 신천지가 교회 비판하는 거랑 비등비등한 수준인데,
그냥 의혹 제기 증폭 말고 무슨 역할이 있나요??
조회수 올리기 하시나요?
정말 안타깝네요.
무엇을 얻고 싶어서 그러시는지...참... 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