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 "누군가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일은, 그 명분이 어떠하든지 악에 속한다"
김기석 목사, "누군가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일은, 그 명분이 어떠하든지 악에 속한다"
  • 김동문
  • 승인 2020.09.15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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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06) 영상 갈무리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는, 6일 주일 예배에서 히브리서 12장 4절부터 13절을 본문으로, "유익이 되는 징계"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그 가운데 도입 부분과 마무리 부분을 옮긴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06) 영상 갈무리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그리고 새로운 태풍인 하이선이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하이선은 우리 한반도를 바로 상륙하고 하지 않고 동해안 쪽을 스쳐 지나간다고 하니 불행 중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첩첩산중이라고 하는 말이, 점점 실감이 나는, 나날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닥쳐오고 있는 재난 앞에서 우리는 비틀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런대로 지낼만하지만, 사실 땅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힘겨운 그런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수확철을 앞두고 있는데, 벼들이 논배미에 다 바람에 스러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하겠습니까? 수확기를 앞두고 과일들이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과수 농가의 시름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이것은 비단 농민들만이 아니라, 가두리 양식을 하는 어민들도 마차가지, 일 겁니다. 이뿐만 아니라 바람 때문에 멀리 조업을 나가지 못하는 어부들, 기타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06) 영상 갈무리

거리,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폐업한 이들도 있고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이 점점 피폐해져 가고, 희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우리 가운데,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이 사회적인 위기는, 언제나 취약 계층을 먼저 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은, 바로 취약해진 사람들, 불안정 속에 노출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집행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작은 교회들 또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하여 여 근근이 버텨오고 있지만, 그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들의 따뜻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루살렘의 기근이 닥쳐 외서 예루살렘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초대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교회들이 의연금을 모금함으로 예루살렘에 보내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런 의연금이 맺어준 인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몸이라는 공교회성이 회복되었던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런 공교회성이 회복되어야 하는 그런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꼭 붙들고 이 시련의 시간이 넘어가기를 우리는 기다려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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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06) 영상 갈무리

오늘 사도는 본문 말씀에서 고난의 현실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교인들을 격려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엄살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헌신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욕망과의 싸움인 동시에, 우리를 길들이려고 하는 세상에, 맞서는 삶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당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바른 신학 이론을 가르치는 일보다, 자기의 상처 받은 몸을 내어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더 강렬한 그 표현이 어디에 잇겠습니까? 증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 바로 그것이 바울 사도입니다.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몸이 그가 진실된 그리스도의 종임을 입증한다는 말입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06) 영상 갈무리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아닌 잘못된 지도자들을 따라가다 상처 입는 일이 많은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들은 박해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함으로, 자기들의 반사회적인 행태를, 종교적으로, 치장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전도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백히 얘기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일은, 그 명분이 어떠하든지 악에 속한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분별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차 하는 순간에, 죄에, 인력에, 이끌리기도 하는 게, 우리네, 존재입니다.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살기도 한단 말입니다. 나그네 된 백성으로 살기보다는, 정착민으로 살기를 우리는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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