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거든, 받으십시다."
김기석 목사,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거든, 받으십시다."
  • 김동문
  • 승인 2020.09.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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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는, 13일 주일 예배에서 마태복음 3:7-12절을 본문으로, "들 사람의 외침'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 가운데 설교의 시작부터 대부분의 내용을 옮겨본다.


 

참 좋으신, 우리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예배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 지난 한 주간 동안도,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자리에서, 성심껏, 일하신, 여러분의 그 모습을, 주님께서는, 칭찬해 주시리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 거룩한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태어난 자로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마치,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거룩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름내 눅진눅진 해진 옷가지와 이불들을, 바람에 널어 거풍하는 것처럼, 때때로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온통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런 일들을, 거풍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 신선함을 채워야 할 필요가, 느낄 필요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평면 속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삶을 재정비하는, 그 과정 말입니다. 예배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배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영혼의, 환기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희구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삶, 이런 삶은, 오늘 촉진에 묻어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언감, 생심에 지나지 않는지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향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시인의, 그런 고백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맑음의 세계를, 가리켜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양심도, 감성도, 또 신앙적 결의도, 희미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부터 온 존재인지,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지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의, 손아귀에, 붙들릴 수 밖에 없는 게, 가련한, 우리의 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때로,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때때로 아주, 매서운 말과, 만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흐려진 영혼을 타격하는, 말,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정수리를, 내려치는 말, 우리의 양심을, 뒤흔드는 말, 우리가 잊고 있었던, 허위의식의, 낡은 옷들을 벗겨 버리는, 그 말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조금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말들을 멀리할 때, 우리의 영혼의, 전락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을 가리켜서, 어느 목사님은, 한 마디로, 그들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양심을, 습격하는 사람들, 이라고 말입니다, 양심을 습격한다는 말이, 굉장히 거친 말처럼, 들리지만, 그러나, 그 말처럼, 예언자들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예언자들은, 세상에 불의 앞에 적당히, 눈 감고, 살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지, 하는, 슬픈, 자기 위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기 위안을, 가차 없이 짓부수는, 말을, 세상 앞에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그 때문에 예언자들은, 언제나,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인기도 없습니다. 세상과 영합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러한 예언자의, 반열에, 선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열정에 사로잡혀,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뜨거움을 간직하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들 사람 얼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들 사람, 야인,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천지의, 사무치는, 얼의 소리를 들어보고,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들 사람,입니다. 생명을 풍요롭게 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적 속박에서, 풀어 주어, 자유인이 되도록 해야 할, 종교가, 사람들을 속박하고, 종으로 만드는 그 현실에 대해서, 질타했던 것이, 세례자 요한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 시대에 나타나, 동일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한다면, 이 땅의 교회는 그를, 환영했을까요? 어쩌면 그를, 광인으로 취급하지 않았을까요? 교회는, 그를 불경한 사람으로, 혹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불순분자로, 여겨, 내쫓을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오늘의, 슬픈 교회의, 현실입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바로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야말로,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굽은 길을 곧게 하고, 그리고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만들어, 주님 오실 길을 닦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사로잡힌, 그는, 자기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온전히 진리 앞에 자신을 내던졌기에, 그는 자유로 왔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영합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체면이나 형식에, 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들 사람들은, 우리의, 허위의식을, 타격하는 사람들, 우리의 껍질을 벗기는 사람들, 옛사람의 낡은 옷을, 사정없이 잡아 채, 잡아 체 발가벗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중략 ..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그리고 사두개파 사람들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사회적 세계에서 유력자들입니다. 야인에 불과한 세례자 요한에게 그들이 나와 세례를 받는다는 것, 이것은, 스캔달 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요한은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봐라 우리 공동체의 이렇게 근사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입니다. 자기 앞에 나온, 그 유력자들을 향해 요한이 던진 말은. 칼날과 같았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말은 보상하지 않습니다. 날것 그대로입니다. 유력자의 비위나 맞추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은. 그에게 무관심 한, 일입니다. 그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요한의 무엇에 이끌린 것인지, 성경은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종교에 대해서 절망감을 느꼈기에 새로운 갱신 운동인 요한의 운동에 동참하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동기야 어떻든, 그들을 바라보면서, 요한이 던지고 있는 그 말,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한 말입니다. 나름대로 존중받는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들, 언제나, 대접받는 일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얘기할 때, 그것이 주는, 충격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요한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지는 표현입니다. 알량한 자존심, 허위의식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을 겁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앞에 나온, 그 종교인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에게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감'입니다. 이것이, 일차적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회개의 진실함은,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입증되는 것, 이었읍니다. 속옷, 두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또, 세상이 우리에게 위임해 준, 권력을,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이, 회개의, 열매 였읍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그런, 회개를 ,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이 말이 더욱 더, 신랄합니다. 속으로, 주제 넘게,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하는, 헛된 자부심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회개한 삶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확실한 것을 붙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확신을, 근거로 하여, 다른 이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때때로, 종교적인 확신이, 교만으로 바뀌는 일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습니다. 반 사회적인 행태를, 부추기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우리는, 일쑤, 보고, 있습니다. 사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무관한데,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입니까?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바로, 이 전도된 현실을 보는 것이, 우리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가당착에 빠진, 지도자연, 하는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오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기의 신념을, 믿음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과대 평가,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갈수록, 언행에, 신중해야 합니다. 말을 고르고, 또 골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삶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할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지도자들의 미덕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반대하는 데도, 굳이 내 신념이기 때문에, 말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 그는, 지도자로서, 실격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봐야 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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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헛된 미망에 빠진, 이들을 향해 준엄하게, 경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 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말합니다. 예언을 하고, 귀신을 내쫓고, 기적을 행하는 것, 그것이 예수의 제자 된, 표가 아닙니다. 주님은 그런 이들을 가리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운 말씀입니다. 주님의 대해서는 모르는게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정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이들, 오직, 자기 확장을 위해서만, 신앙생활 하는 이들에게 주신, 주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 중략 ..

가을이 깊어가도, 여물지 않는 벼를 바라보는 것은 슬픔입니다. 속이 꽉 들어찬, 낱알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가을에, 그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만이 아니라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차렸습니다. 아니,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믿는다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청파감리교회 주일 예배(2020.09.13) 영상 갈무리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껍질이 벗겨질 때, 우리는 겸허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선물임을 늘 명심하면서,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그런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으니, 희망은, 있습니다. 울면서라도, 오늘도 내일도 생명의 씨, 평화의 씨를, 뿌리며 사십시다. 그리고 슬픔의 땅에서도, 기쁨을 수확하는 사람들이, 되어 보십시다. 주님은 지금, 일꾼을, 부르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는 일꾼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비평가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비평하는 일, 쉽습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 쉽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부름받은 것 아니고, 주님의 일터에서, 일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거든, 받으십시다. 그러나, 주님의 일터를, 떠나지는, 마십시다. 그래서 우리가, 걷운 생애, 아름다운 열매로, 세상을 조금은, 환히 밝힐 꿈을 꾸며, 오늘도 땀 흘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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