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다 성경』의 '삭개오와 뽕나무' 해석, 유감
『열린다 성경』의 '삭개오와 뽕나무' 해석, 유감
  • 김동문
  • 승인 2020.05.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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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다시 읽기

때때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중요한 매개로 식물이 등장할 때가 있다. 식물이 단지 식물로서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언어의 매개가 될 때도 적지 않다. 성경을 읽는 한국인들에게 무궁화나 진달래 같은 식물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일본인에게 벚꽃은 어떤 존재일까? 이런 비슷한 질문을 성경을 읽으면서도 던지게 된다.

류모세 목사는 그의 책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에서 이른바 삭개오의 뽕나무, 뽕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관계가 잘못되었거나 왜곡된 내용도 보인다. 오늘 이야기에서 종려나무와 뽕나무(돌무화과나무)에 대한 이해가 동원될 것이다. 류 목사의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 성경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이 글에서 Sycamore Tree 즉 돌무화과나무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뽕나무로 적었다. 그것은 열린다 성경의 저자가 자신의 책에서 그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한 것을 따랐다.)

 

삭개오는 왜 뽕나무에 올라갔을까?

종려나무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는 어렵다. ⓒ김동문

종려나무에 올라가지 않고 굳이 뽕나무에 올라간 것일까? 단순히 예수님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그랬다면 그다지 높이 자라지 않는 뽕나무보다는 30m 가까이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종려나무에 올라가야 훨씬 잘 보이지 않았을까? -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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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 ⓒ김동문

이 질문은 얼핏 읽으면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생각은 현실과는 거리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뽕나무와 종려나무의 특성과 예수 시대의 나무의 존재감을 고려하면 던지지 않아도 될 질문이다. 먼저 종려나무의 특성을 알면 이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종려나무는 기어 올라가기도, 높은 줄기 위에 매달려 있기도 쉽지 않다. 종려나무 잎사귀는 단단하고 날카롭고, 줄기 표면은 거칠다.

종려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려면... ⓒwikiHow 

나무를 잘 타는 사람도 종려나무에 올라가려면 기술도 힘도 있어야 한다. 종려나무에 오르려면 맨손과 맨발로는 쉽지 않다. 끈이나 밧줄이나 몸을 지탱해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혹시 더 궁금하면 How to Climb a Palm Tree 사이트의 글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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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지역의 종려나무 ⓒ김동문

또한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경우라면, 아마도 가까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삭개오가 보기를 원했던 것이 멀리 있는 예수나 그 행렬이었을까? 그럴 것이라면 굳이 나무에 올라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리고 평지 보다 조금 높은 언덕과 산, 집의 지붕도 있었을 것이다. 로마식 빌라를 갖추고 살았을 삭개오의 집에서도 그같은 조망은 가능했을 것이다.

종려나무는 중간에 가지가 없다. 가치치기를 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런 나무를 오르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힘들다. 나무를 잘 타는 사람에게도 버거운 활동이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삭개오는 종려나무에 올라가본 적이 있었을까? 평소에 나무에 오르는 것을 거의 하지 않았을 삭개오가 종려나무에 오르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삭개오가 종려나무에 올라가지 않은 이유를 따질 이유가 없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기보다 여리고에 머물고 있는 유대 지방의 세리장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으로서 여리고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유력 인사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여러 명의 회계사를 거느린 회계 법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최고 VIP였다. 당시 여리고는 헤롯 왕의 겨울 궁전이 있는 대도시였다. 그 대도시의 VIP가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상당히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78, 79쪽

 

또한 삭개오의 존재감은 단시 여리고에서나 알려진 유력인사도 아니었다. 예수 시대에 세리장의 존재는 도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제사장의 추천을 받아 로마 황실이 임명하는 막강한 권력과 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자리였다. 적지 않은 자료에 따르면, 세리장은 로마의 행정 구역별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유대 지방의 세리장으로서, 유대 지방과 베레아 지방의 경계에 있으며, 교통의 요지인 여리고에 그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1세기 로마 지배하의 유대지방 ⓒWikipedia CC BY 3.0

"그 대도시의 VIP가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상당히 체면을 구기는 일"? 뽕나무(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고 보는 근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저자는 이어지는 그의 글에서 나름의 설명을 하고 있다. 아래 이어지는 그의 관련 글에서 더 다룰 것이다.

 

목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취급받고자 뽕나무에 올라갔다?

James Tissot, ‘Zacchaeus in the Sycamore Awaiting the Passage of Jesus’ (Brooklyn Museum)

당시 여리고에서는 목자들이 뽕나무에 올라가서 뽕나무를 배양하고 있었기 때문에 삭개오는 종려나무 대신에 뽕나무에 올라갔을 것이다. 종려나무에 올라가면 눈에 확 띄지만 뽕나무에 올라가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자신을 목자들 중의 한 명으로 봐 주기를 바라면서 뽕나무에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대로 체면을 지키면서 그토록 사모하던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셈이다. -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79쪽

 

유대 광야의 유목민(1905년경). 예수 시대 여리고 백성의 삶의 형편이 이들보다 나았을 것 같지 않다.
유대 광야의 유목민(1905년경). 예수 시대 여리고 백성의 삶의 형편이 이들보다 나았을 것 같지 않다.

"당시 여리고에서는 목자들이 뽕나무에 올라가서 뽕나무를 배양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조금 더 살펴보고 싶다. 뽕나무(돌무화과나무)는 흔한 나무가 아니었다. 아무데서나 볼 수 있거나 쉽게 재배되지 않는 나무였다. 마치 백향목을 아무 데서나 가꿀 수 없는 것처럼, 뽕나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천한) 목자들이 뽕나무에 올라가서 뽕나무를 배양하고 있었다는 추론은 자연스럽지 않다. 품삯을 받는 목자나 자영 목자가 뽕나무를 배양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것은 겸업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자기 양떼를 치는 목자나 품삯을 받는 목자는, 온종일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삶을 살아간다.

 

김동문
ⓒ김동문

"종려나무에 올라가면 눈에 확" 띄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뽕나무에 올라가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은 동의할 수 없다.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목자의 목자됨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앞서도 말했듯이 뽕나무 배양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목자의 일도 능력도 여건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목자들 중의 한 명으로 봐 주기를 바라면서 뽕나무에 올라갔을 것"이라는 글쓴이의 주장은 낯설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올라가는 것이 쉽지도, 매달려 있는 것이 편하지도 않다. 체면을 구기는 상황이 걱정스럽다면, 뽕나무가 아닌 종려나무에 올라갔을 경우일 듯 싶다. 또한 그렇게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면 예수 일행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시야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쓴이는 서로 다른 주장을 겹쳐서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대도시의 VIP가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상당히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 "종려나무에 올라가면 눈에 확 띄지만 뽕나무에 올라가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뽕나무는 빈익빈의 상징이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의 이야기는 뽕나무를 배양했던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와 연결해서 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부익부를 상징하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천한 목자들이 오르내리던 빈익빈의 상징 뽕나무에 올라간 이야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86쪽

 

유대광야의 유목민(1890년대로 추정).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목자의 삶은 고되다.
유대광야의 유목민(1890년대로 추정). 낮과 밤이 따로 없는 목자의 삶은 고되다.

뽕나무 배양을 천한 목자들이 하였다는 추론의 근거가 빈약하다. 뽕나무를 배양하던 농부는 나름 수확작물 재배를 하는 셈이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전업 목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뽕나무를 천한 목자의 어떤 일이나 빈익빈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뽕나무를 배양하는 것은 열매에 구멍뚫고 기름바르기

뽕나무를 배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뽕나무를 배양하였다는 아모스 본문의 해석을 두고 많은 의견이 있다. 그런데 돌무화과에 구멍을 뚫었다는 해석은 자연스럽지 않다. 돌무화과나무에 칼집을 내서 수액을 뽑아내고 그것을 통해 돌무화과의 발육을 촉진했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목자들이 양 떼들을 데리고 요단 평야로 내려오는 시점은 이제 막 밀 추수가 끝나고 밀 밑동이 남아 있는 때다. 이런 상황에서 밀밭 주인과 목자들의 협상이 진행된다. 목자는 자신의 양 떼들이 밀 추수가 끝난 밀밭에서 밀 밑동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대가로 밀밭 사이에 난 뽕나무에 올라가서 뽕나무 배양을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칠칠절이 지난 요단 평야의 밀밭에서 목자와 밀밭 주인 사이에 주고받는 계약 조건이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이익을 본 것인가? -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83-84쪽

 

돌무화과가 주렁주렁 메달려있다. ⓒ김동문

밀밭 주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차피 버리는 밀 밑동을 주고 선심을 쓰는 것이다. 양 떼들은 밀 밑동과 아울러 밀밭의 잡초들을 깨끗이 먹어 치운다. 양 떼들의 분변은 최고의 퇴비가 될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밀밭 주인은 한 푼의 인건비도 지불하지 않고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뽕나무 배양을 끝낼 수 있다. 칠칠절 이후에 열매를 맺는 뽕나무(돌무화과나무)는 수없이 많은 열매들에 일일이 구멍을 뚫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줘야 한다. -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84쪽

 

무화과를 닮은 돌무화과나무의 돌무화과 ⓒ김동문

수없이 많은 열매들에 일일이 구멍을 뚫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줘야 한다? 정말 뽕나무에는 수없이 많은 열매가 맺힌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렇게 풍성하게 맺히는 돌무화과의 어느 단계에 구멍을 뚫고 올리브 기름을 발라준다고 상상하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 시대, 올리브 기름도 귀한 것이었다. 그 귀한 기름을 뽕나무 열매(돌무화과) 작은 열매마다 발라주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올리브 기름이 돌무화과나무 열매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뽕나무는 밀밭 사이에서 흔히 자란다?

글쓴이는 위와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그 당시 목자들이 노동력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뽕나무를 빈익빈의 상징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대단한 상상력이다. 이같은 생각은 뽕나무가 밀밭에 자란다는 억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뽕나무로 오역된 이스라엘의 돌무화과나무는 성서 시대에 여리고를 중심으로 한 요단 평야의 밀밭 사이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였다. 이 나무가 돌무화과나무로 불리는 이유는, 비록 무화과와 계통은 다르지만, 무화과와 비슷한 야생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 당시에 목자는 농경지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로 밀려났기 때문에 광야에서 양들을 쳐야 했다. 뽕나무 배양은 요단 평야의 밀밭 사이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 일을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가능해진다. 여름에는 A를 하고 겨울에는 B를 하면 되는 것이다.-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82-83쪽

뽕나무의 특징은, 산지와 평지의 구분 없이 어디서나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와 달리, 산지에서는 자라지 못하고 평지에서만 자란다는 것이다.-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 92쪽

 

뽕나무 김동문
여름철이면 무화과처럼 열매가 익어간다 ⓒ김동문

그러나 뽕나무는 밀밭에서 자라지 않는다. 또한 산지에서도 자라고 평지에서도 자란다. 문제는 외형적으로 산지냐 평지냐의 문제가 아니다. 산지에도 평지는 존재하고, 평지에도 산지는 섞여 있다. 지형은 위치가 아니라 환경일 뿐이다. 햇볕이 잘들고, 매우 비옥하고 촉촉한 땅, 물이 잘 빠지는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도 귀한 나무였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의 여신이었던 하토르 여신의 임재와 은총이 머무는 나무였다. 무화과 열매에는 못미치지만 맛과 향, 영양이 가득한 열매를 소비했다. 나무로는 관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

뽕나무는 우리나라의 마을 입구나 중앙에 있었던 정자나무를 떠올린다. 그만큼 듬직한 나무로 자랐다. 이 나무는 성 안에 있지 않았다. 케네스 베일리는 그의 책에서 미쉬나를 인용하며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미쉬나가 뽕나무를 언급한 본문이다. "쥐엄나무나 뽕나무는 50 규빗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기르지 못한다" ... 1규빗이 약 45.7센티미터이므로, 뽕나무는 어느 마을에서나 적어도 227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했으며, 당연히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 케네스 E. 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279-280쪽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절 여리고 주민들은 성안에, 궁궐에 거주하지 않았다. 여리고에는 성도 있었고, 별궁도 있었다. 분봉왕 헤롯의 겨울궁도 유브라데 하수 하류 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은 여리고와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가장 빠른 길 근처에 자리했다.

 

고대 이집트의 신령한 나무 뽕나무

여리고는 종려나무의 성읍으로 불렸지만, 동시에 '뽕나무 들보의 도시'로도 불렸다. 고대 자료에 따르면 여리고 지역이 뽕나무와 쥐엄나무 등이 많았다고 한다. 이 두 종류의 나무는 모두 좋은 목재와 열매를 제공한다. 고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서식한 뽕나무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집트에서 뽕나무는 신성한 나무의 하나였다. 하토르 여신을 비롯한 여신의 임재가 가득한 나무였다. 하토르 여신의 여러 별칭 가운데 하나가, '뽕나무의 귀부인'이었다. 뽕나무 자체가 하토르 여신의 임재를 뜻하는 그림언어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뽕나무는 하토르 여신 또는 이집트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 여신 하토르가 뽕나무 사이에서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를 메디나 무덤 벽화, 룩소, 19왕조)
이집트 여신 하토르가 뽕나무 사이에서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를메디나 무덤 벽화, 룩소, 19왕조)

또한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뽕나무는 생명의 나무였고, 지혜의 나무였다. 이집트는 '뽕나무가 꽃피는 땅'으로 불렸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뽕나무의 아들'(son of the Sycamore)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뽕나무 열매(돌무화과)는 '파라오의 무화과'로 불렀다.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이 뽕나무는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경제적인 의미에서도 아주 귀하고 고급진 나무로 대우를 받았다. 뽕나무는 그 나무 자체와 뿌리, 열매 할 것 없이 버릴 것이 없는, 아주 귀한 나무였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이 뽕나무를 보면서 이집트와 닿아있는 어떤 말과 행동,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마치 '연꽃'을 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기독교인들처럼, 그들도 어떤 종교적 반응을 하였을 개연성은 없을까?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한다면, 다윗 시절에 올리브 나무와 뽕나무 관리 책임자를 왕실이 임명하던 상황("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역대상 27:28)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뽕나무가 있어서 올라갔다?

삭개오가 종려나무에 올라가지 않은 이유, 체면 때문이 아니다. 그 나무에 올라갈 수도 올라갈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빈자 목자 체험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뽕나무에 올라가면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을 목자들 중의 한 명으로 봐 주기를 바라면서 뽕나무에 올라갔을 것"도 아니다. 뽕나무와 목자의 삶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뽕나무 재배가 절대빈곤의 가난한 목자들의 몫이 아니었다. 뽕나무는 밀밭 사이에서 흔히 자라던 나무가 아니었다. 글쓴이는 종려나무도 뽕나무도 적잖이 오해했다. 그리고 예수 시대의 뽕나무와 종려나무의 존재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같다.

Google Earth 갈무리
왼쪽 동그라미는 신약시대 해롯궁 지역 그 뒤로 이어지는 길이 옛도로이다. ⓒGoogle Earth 갈무리
Google Earth 갈무리
왼쪽 동그라미는 신약시대 해롯궁 지역 오른쪽 동그라미는 구약시대 여리고성터 ⓒGoogle Earth 갈무리

 

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 그(삭개오)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누가복음 19:1, 3-4)

김동문
뽕나무 ⓒ김동문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두란노)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두란노, 2008)

삭개오는 여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올라가려는 예수를 보기 위해 움직였다.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던 도로는 오늘날 와디 켈트(Wadi Qelt 또는 Ein Prat)로 부르는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비탈길이다. 삭개오는 예수보다 먼저 앞서서 그 진행 방향으로 달려가서, 그곳에 있던 정자나무 같았던 든든한 나무 뽕나무가 있었기에 올라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이유는 단순하게 볼 수 있다. 복잡하게 다른 의도나 의미를 부여하여 본문을 읽으려는 것은 과잉 의미 부여일 수 밖에 없다. 

『열린다 성경』 저자의 글을 통해 얻는 유익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가 쓴 글 가운데, "삭개오는 왜 뽕나무에 올라갔을까?" 글을 읽으면서, 위에서 다룬 것과 같은 많은 궁금함이 이어졌다. 어떤 이야기나 사물을 마주할 때, 해석하기에 급하거나 빠른 버릇이 성경 독자에게 적지 않다. 해석 이전에 넉넉한 관찰, 과도한 해석과 거리두기, 낯설게 읽기 등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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