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안내자로 매력적인 책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안내자로 매력적인 책
  • 정한욱
  • 승인 2019.10.0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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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 일본적 마음, 책읽는 고양이
김응교, 일본적 마음, 책읽는 고양이

『일본적 마음』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가 유학생과 객원교수로 일본에 살았던 1996년부터 2009년까지 13년 동안 썼던 글 중 ‘일본적 마음’을 담은 것들만 모아 펴낸 ‘인문여행 에세이’다. 저자는 ‘예술’, ‘독서’, ‘사무라이’, ‘야스쿠니’의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와비사비, 하이쿠, 우키요에, 무라카미 하루키, 사쿠라, 사무라이, 야스쿠니 신사 등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적 키워드와 그 안에 담긴 일본인들의 집단 심성을 함축적이고 생생한 필치로 잘 그려냈다.

이 책의 1부인 ‘예술’은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서도 맑고 가라앉은 정조를 즐기면서 자족과 풍성함을 누리는 일본의 독특한 미학적 정서인 ‘와비사비’와, 이 정서를 따라 5.7.5 조의 짧은 시구에 한적함과 가벼운 일상, 그리고 심오한 깊이를 담아내는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 미술을 유럽에 널리 알리며 자포니즘(Japonism)의 열풍을 일으켰던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와, 드뷔시의 ‘바다’에 모티프를 제공한 유명한 그림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에 대한 소개가 뒤를 잇는다. 그밖에 매년 5월 일본인들을 집단주의의 광기로 몰아가는 축제인 ‘산쟈 마쓰리’와, 까마귀를 통해 재해의 비극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심성을 분석한 흥미로운 글을 만나볼 수 있다.

2부인 ‘독서’에는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역량을 맛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암시의 힘’을 그 특징으로 가지는 ‘하이쿠’의 특징이 '새로운 창작자'인 독자의 상상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재일 소설가 양석일 선생을 인용하며 군대위안부 사건이야말로 천황폐하를 위해 남성의 육체 또는 여성의 성기를 훼손해야 했던 ‘아시아적 신체’의 대표적 사건이며, 이는 독점자본의 증식을 위해 서민의 육체를 훼손시킨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의 ‘용산적 신체’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잘 짜여진 ‘하루키 시뮬라크르’인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제는 ‘치유를 통해 단독자가 되는 것’이며, 그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는 주인공들이 겪는 좌절이 민주화 운동에 실패한 8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좌절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부인 ‘사쿠라’에서 저자는 수많은 자연 재해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사쿠라를 보면서 느끼는 정서는 ‘죽음’이며, 사쿠라의 피고 짐에서는 진퇴가 분명하고 묵숨을 던질 때는 ‘아싸리’ 던지는 사무라이 문화의 기질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의 인사말인 ‘사요나라(그렇다면)’와 죽음을 표현하는 ‘나쿠나루모노(失亡)’라는 말에는 ‘체념의 철학’이 담겨 있으며, ‘아름다운 죽음’을 찬미하는 특유의 정서가 죽음으로 더 큰 거짓말을 보존해온 일본의 문화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일본인들의 사람을 받아온 고전인 ‘츄신구라(忠臣藏)’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수치와 함께 명예를 중시하는 ‘수치의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무사도’ 였으며, 사무라이 문화로 인해 발생한 ‘의리와 긴장의 사회’가 충(忠)을 중시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심성을 만들어왔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4부인 ‘야스쿠니’에서는 먼저 야스쿠니 신사에 기념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정로환’을 통해 상술과 함께 발전해온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묵상한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이들을 신으로 모신 ‘국가주의 신전’인 야스쿠니 신사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성전으로 미화시키는 ‘군사적 종교시설’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전몰자 ‘추도’나 전쟁 ‘반성’이 아닌 전사자를 ‘찬양’하고 ‘전승’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군국주의적 행위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일제의 침략전쟁 기념관인 유슈칸(遊就館)의 입구에 서 있는 사카모토 료마의 초상화가 “일본만이 아시아를 위해 존재한다는 선민의식”과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을 잘 보여주는 ‘유슈칸 이야기’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는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연대하여 일본의 정치세력을 바꾸어갈 때에라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오지 부족의 인류학 보고서를 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그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무지가 심각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리고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양국간의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양국의 양심적 시민간의 적극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견해에 깊이 공감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이해하고 ‘일본적 마음’의 심층적 정서와 문화적 바탕을 탐사하는 안내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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