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
[장일]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
  • 장일
  • 승인 2019.08.18 2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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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14 - 야고보서 4:11-17

서 론 

야고보서 강해 열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달 한 유명 앵커의 스캔들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SBS 앵커 출신인 김성준 전 논설위원입니다. 누군지 아시나요? 김 전 앵커는 1991년에 입사해 기자를 거쳐 앵커가 됐습니다. 특히 2011년부터 2017년 5월까지 SBS 간판 뉴스인 8시 뉴스를 진행하면서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이때 ‘클로징멘트’라고 하죠? 뉴스 말미에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도 이 클로징멘트가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는 라디오로 옮겨 ‘김성준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며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랬던 그가 갑자기 무슨 스캔들에 휩싸인 것일까요? 다름 아닌 몰래카메라 혐의입니다. 김 전 앵커는 지난달 3일 영등포구청역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입건되었습니다. 그는 범행 사실을 부인했으나 그의 휴대전화에서 몰래 찍은 여성의 사진이 발견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후 핸드폰 복원과정을 통해 추가로 몰카 사진이 드러났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결국 김 전 앵커는 이 사실이 보도된 직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대중들이 크게 실망했던 부분이 뭘까요? 그가 뉴스를 통해 보여준 소신 있는 발언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번 스캔들로 그동안 어렵게 쌓은 명성을 한꺼번에 잃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우리 신앙의 장애물’입니다. 앞서 말한 '스캔들(scandle)'은 ‘무엇에 걸려 넘어지다’란 뜻의 헬라어 ‘스캔달리조(skandalizo)'에서 나왔습니다. 등산 할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경험 있으시죠? 바로 그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큰 바위 때문에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무엇 때문이죠?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돌부리가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는 우리 신앙에도 피할 수 없는 스캔들 곧 장애물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장애물의 정체를 아는 게 중요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영적 장애물을 분명히 직시하기를 권면합니다. 또한 샛길이 아닌 은혜의 대로로 나아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비방과 판단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 첫 번째는 ‘비방과 판단’입니다. 

11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12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지난 본문에서 야고보는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십니다. 이제 오늘 본문인 4:11-5:6절까지는 우리 신앙의 장애물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 첫 번째가 ‘비방과 판단’입니다. 11절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자매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율법을 심판하면, 그대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기억나시나요? 앞서 2장에서 야고보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살인, 간음과 동등한 죄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방은 어떨까요? 남을 헐뜯고 판단하는 모습은 차별의 죄보다 더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형제를 헐뜯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헐뜯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형제에 대한 비방은 율법을 세우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매우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12절입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결국 형제에 대한 비방과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매우 중대한 죄인 것입니다.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보셨나요? 호두까기 인형을 변형한 신조어입니다. 모두까기 인형이란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비판적인 태도로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놀라운 것은 어느 자리에 가든 이런 사람이 꼭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떨까요? 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름하여 ‘나최고’. 나권사님은 올해로 20년이 넘게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충성이 무색할 만큼 입만 열면 크고 작은 분란을 만들어냅니다. 한마디로 ‘트러블메이커’로 통합니다. 오늘도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이날은 국이 조금 싱거웠습니다. 역시나 나권사님의 입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아이고 김집사야 뭔 국이 이리 싱겁다냐. 밥을 좀 먹게 준비해야지. 저번에도 그러더만 또 그러네 쯧쯧”

이번에는 식사를 마치고 소그룹 모임 시간입니다. 옆에 있는 이권사님의 아들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나권사님의 입이 또 열립니다. “아니 이권사님 아들이 아직 신앙생활도 안하는데 출세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러다 영영 하나님께 못 돌아올 수도 있어. 권사님 지금 기뻐할 게 아니라 통곡하며 기도해야 돼” 어떻습니까? 왜 트러블메이커인지 아시겠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걸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자신이 늘 남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오늘 야고보는 돌직구를 던집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형제를 판단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비방과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형제를 비방하고 이웃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 비방과 판단의 장애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형제와 이웃은 사랑의 대상이지 비방의 대상이 아닙니다. 남을 깎아내릴 때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출 때 주님께서 높이는 것입니다. 비방과 판단이 아닌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우리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허탄한 자랑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 두 번째는 ‘허탄한 자랑’입니다. 

13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14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야고보는 누군가를 꾸짖으며 또 다른 권면을 시작합니다. 문맥을 잘 살펴보면 누구를 향한 권면임을 알 수 있습니까? 13절에 ‘장사하는 사람 곧 크리스천 사업가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야고보의 꾸짖음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그들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한번 보십시오.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뭐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계획입니다. 그러나 지금 야고보가 문제 삼는 것은 ‘계획 자체가 아닌 자기중심적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확신에 찬 나머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무시하는 행태입니다.

그들이 망각한 게 뭡니까? 왜 그들이 어리석습니까? 14절에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안개와 같은 존재’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고백해야 할 내용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쭐대며 허탄한 자랑에 빠져있습니다. 여기서 허탄한 자랑이 뭘까요? 바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생명, 미래에 대한 계획을 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자랑이 다 악한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MBC 뉴스(2019.08.16 ) 화면 갈무리

한 기업인이 있습니다. 그는 화장품 회사의 회장이며 서울에 있는 한 대형교회의 장로입니다. 한때는 화장품 업계 3위에 들 정도로 매우 탄탄한 회사였습니다. 그의 성공스토리와 신앙간증을 담은 책은 여전히 기독교서점 메인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주 언론을 통해 이 회장님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다름 아닌 회삿돈을 배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되었는데 그 금액만 400억 원대에 이릅니다. 그 외에 여러 의혹들이 있지만 참 믿기 힘든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 회장님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지난 19년간 총 37억 원을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37억이 본인의 재산이 아닌 회삿돈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횡령한 불법자금을 교회에 헌금한 것입니다.

조사가 더 진행되면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겠지만, 현재 받고 있는 의혹만으로도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신실한 크리스천 기업인으로 알려졌기에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허탄한 자랑이 없을까요?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나는 큰 기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고작 작은 사업장을 운영하는 신세이니 별 문제 없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허탄한 자랑은 그 사이즈와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큰 기업을 운영하든, 몇 평 안 되는 가게를 운영하든 하나님이 아닌 내 능력을 의지하는 태도는 모두 허탄한 자랑입니다. 모두 악한 것입니다.

저도 이 허탄한 자랑 때문에 사업에 어려움을 겪은 분들은 한두 사람 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우리가 신뢰할 것은 내가 세운 계획이나 내가 가진 자원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의 계획과 섭리에요. 진정 아멘이십니까? 아침 안개와 같은 우리의 한계를 절감하며, 나의 능력이 아닌 하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선을 행하라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 마지막은 ‘선을 행하라’입니다.

17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끝으로 야고보는 한 가지 죄를 더 지적합니다. 그게 뭡니까?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 뭘까요? 문맥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업을 하고 돈을 버는 일도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뜻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저희 공동체 안에 사업장에 어려움이 생긴 성도님이 계십니다. 도무지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영업 경기가 좋지 않으니 뭐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저도 마음이 애타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먼저는 원망입니다. “하나님 제가 빚을 떠안으면서까지 시작한 가게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안도와주십니까?” “그때 정집사님이 도움을 좀 줬더라면 일이 이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텐데”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뼈아픈 사실이 뭔지 아세요? 이렇게 원망이 가득한 사람치고 애초에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구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인정입니다. “하나님 제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이렇네요. 혹시 제가 하나님의 뜻보다 제 욕심을 더 추구했다면 그 모습들을 깨닫게 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세요. 솔직히 남아있는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이전보다 더 묵묵히 따르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두 가지 반응 중에 어떤 모습이 선을 행하는 모습입니까? 어떤 모습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까? 나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온몸으로 고백하는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탤런트 차인표씨 아시죠? 그가 멘토로 여기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경기도 성남에서 샬롬교회를 목회하시는 김정하 목사님입니다. 이 분은 일명 구두닦이 목사로 불립니다. 2007년부터 구두를 닦아 번 돈으로 케냐, 페루, 에콰도르 등 제 3세계 빈곤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한 일을 행하는 목사님에게 2010년 너무도 큰 고난이 찾아옵니다. 다름 아닌 루게릭병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참고로 루게릭병은 근육이 위축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3년에서 5년 만에 죽는 병이기에 오히려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시한부 인생인데 저는 조금 짧을 뿐입니다. 저는 1분을 살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죽는 것이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얼마만큼 인정하고 있습니까? 말은 참 쉽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살아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나의 계획과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우선적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다가올 심판의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시간, 물질, 지나온 모든 삶을 정산해야 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연약해보이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우리의 발 딛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결 론

영화 천로역정(2019)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열네 번째 시간으로 ‘무엇이 넘어지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비방과 판단, 허탄한 자랑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그 정체를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삶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신앙서적입니다. 주인공인 크리스챤 역시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무수한 장애물을 만납니다. 무엇이 장애물에 빠지게 할까요? 인간의 욕심과 교만입니다. 그럼에도 크리스챤은 순례의 길을 완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도 동일합니다. 꽃길이 아닙니다. 무수한 장애물이 있으며 그 장애물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 능력으로 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개와 같은 인생에 소망을 두지 말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시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자에게 그 선하신 인도하심이 함께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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