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안개 속을 함께 걸어가는 마음으로
[김동환] 안개 속을 함께 걸어가는 마음으로
  • 김동환
  • 승인 2019.08.03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환 목사의 설교 - 고전 8:1~4, 10:1~7

1. 예수님을 그려보세요?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저는 무사히 방학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자유시간을 얻었어요. 먼저는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쓰려하고요!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 동안 학교일 하랴, 저녁에 학원 다니느라 너무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잠시 멈춰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이번 방학기간의 제일 큰 숙제는 저만의 ‘예수님 그려내기’에요. 신앙 묵상에 관한 글을 쓰면서 함께 첨부할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요, 뭔가 일관성 있게 예수님을 상상으로 캐릭터 화하고 싶거든요. 예수님께서 홍대 산책을 하는 모습이라던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라든가 말이에요.

김동환
김동환

여러분에게 숙제를 드렸다고 해봅시다. ‘다음 주에 오실 때 각자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오세요~’라고 말이죠. 이미 숙제를 드린 분이 있는데 해오셨는지 모르겠어요. 자, 여러분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일러스트 학원에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도 물어봐주셨어요. 예수님 하면 떠오르는 것들 말이죠. 다 교회 안 다니는 분들이었는데요, 아마 여러분도 떠오르는 게 비슷할 거예요. 착한 외모, 밝은 미소, 긴 머리, 수염, 잘생긴 백인 아저씨, 흰 두루마기… 르네상스 시절부터 그려졌던 성화의 이미지, 그리고 유럽, 미국 등에서 만들어낸 예수님에 관한 영화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각자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 정답은 아무도 몰라요. 알 수 없어요. 고고학적으로는 2000년 전의 유대인들은 피부가 검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화나 영화로 본 이미지는 진실에 가깝진 않아요.

그림을 그릴 때는 이 부분에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아니라는 건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 무시할 순 없고, 어느 정도 타협하면 좋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거예요. 저는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을 입고 계시는 모습을 그리고 싶거든요. 예수님이 옷가게에 가서 쇼핑을 하면 어떤 옷을 입으실까요? 상상해보는 거죠. 저희 교회 형제님의 권유로 일단 가시면류관을 제1상징성으로 잡기로 했어요. 그리고 손과 발에 못 자국을 그려 넣을 텐데, 그 자국이 작을 테니 눈에 잘 안 띌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봐야겠습니다. 나중에 검사해주세요. 이때 기억해야 할 전제조건은, ‘이 그림은 상상이다!’라는 거예요.

 

2. 바울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을까?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고린도 전서를 한 번 살펴보려 합니다. 함께 읽은 10장 말씀과 8장 말씀은 우상숭배에 관한 이 야게요. 본격적인 우상숭배 이야기에 앞서 10장과 8장 사이에 있는 내용을 잠깐 볼게요. 바울이 자신이 왜 사도의 권리가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에요.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가장 애정 하는 교회였어요. 가장 오랜 시간 목회를 한 곳이고요, 가장 많은 갈등이 있던 교회예요. 사람들이 바울이 정말 교회의 리더로, 사도로 대표성이 있는지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예수님과 같이 동고동락한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을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죠. 물론 지나가면서 봤을 수는 있겠지만, 성경에 그런 내용은 없어서 상상만 해볼 수 있겠습니다.

9장 1절에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이 부분은 아시다시피 바울이 성령 체험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거죠. 성육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니라서 어떤 형태의 만남이었는지는 성경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어요. 다만 우리는 바울이 극적인 회심을 하기에는 충분한, 그만큼의 은혜의 만남이었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조금 위로가 되는 게, 바울 선생님도 일러스트 학원 다니셨어도, 아마 예수님 잘 못 그리셨을 수도 있겠다 싶은 거예요. 빛나는 어떤 형태만 그리지 않으실까요? 모르겠습니다, 얼굴을 직접 보신 건지… 아무튼 고린도 교회 개척교회 성도들은 그런 바울을 의심했어요. 좋은 말 해줄 때는 당연히 그러지 않았겠죠. 하도 잘못을 하니까, 바울이 지적을 하니까 불만들이 쌓여서 의심을 했을 거예요. 사람들이 다 그렇잖아요?

 

3. 자유 안에서 사랑으로

김동환
김동환

이제 본격적으로 8장, 10장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당시 고린도에는 여러 신전이 있었어요. 지난주에 이야기한 유명한 여신의 이름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아폴로디테. 네, 다양한 신들의 신전이 있었는데 시장에 파는 고기들은 그 신전에 제물로 들어갔다가 나온 음식이 많았나 봐요.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고민을 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을 믿기로 했고, 그래서 나는 거룩을 지키고 싶은데 시장의 음식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신전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인데. 저걸 먹으면 우상숭배를 하는 거 아닌가?”

이 고민에 대한 결론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고민이 된다면 시장의 음식에 손을 대지 말자! 는 사람들이 있고요, “우상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거야, 교회에서 배워서 알잖아?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신의 성전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먹자! 마음에 걸려서 주저주저하는 게 웃긴 거야!”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먹는 사람들에게, 와 우상 숭배하는 거야? 신앙을 저버리는 거야? 이렇게 손가락질했을 테고요, 음식을 자유롭게 먹은 사람들은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저렇게 무식하지, 왜 아무것도 아닌 걸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정죄하는 거야?라고 반감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주었나요? 8장 1절에 바울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들어갔었어요.

8: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일단 고린도에 있는 신전에 새겨진 신은 ‘실재’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건 괜찮다고 바울도 인정을 해요. 지식적으로는 맞는 말인 거죠. 그런데 그걸 가지고, 나름의 신앙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스꽝스럽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상숭배는 피하되, 우상숭배가 아닌걸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고 분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름 소중히 생각해주고 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일단 지식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고요, 하지만 그 지식을 또 우상으로 생각하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말이죠. 사람들을 조롱하는 태도로 너 이상한 짓거리하고 있는 거야, 그건 신앙이 아닌데!!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4. 내가 만든 우상들

이건 저에게도 정말 와 닿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신학교에 가기 전에 저만의 자기 확신이 아주 많았던 사람이에요. 이건 우상숭배고, 이건 해선 안되고, 저건 죄고, 이런 생각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임용을 안 보고 신학교를 갔겠죠? 그런데 신학교를 갔다가 공부를 하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우상숭배라고 생각했는데, 죄라고 생각했는데 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들, 심지어 죄라고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저는 일단 세상의 과학자들이 다 죄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 거짓말쟁이들, 신을 없다 말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성경을 거짓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너무 친절한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가 가진 확신들, 제가 했던 정죄들이 건강한 지식에 근거한 게 아니라는 점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분을 만난 거예요. 만약에 그 선생님이 조롱의 태도로 저를 대했다면, 저는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서 선생님을 공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너무 사랑이 많은 태도로, 얌전하게 박살 내주시니까, 저도 그때서야 저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10년의 신앙생활 동안, 내가 무수한 우상들을 만들어 두었구나.’ 물론 안 바뀌는 많은 목사님들도 보았습니다. 신학교수님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안다는 확신이 있어요. 엄마, 아빠한테 들은 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내용들이 있으니까 쉽게 바뀌지 못할 거예요. 아폴로디테 성전에 들어갔다 나온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평생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기를 먹고 있는 무수한 세상 사람들, 교회 친구들을 저주하며 살아요. 우상숭배자들이라고.

 

5. 급진적 파괴자

이건 반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 건 자기가 만든 우상들을 직면한 사람들.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이번엔 굉장히 급진적인 파괴자가 되기도 해요. 그전의 자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는 거예요. 인간으로 보지도 않아요. 종교에 절어있는 사람, 하나님도 설득해낼 수 없는 사람, 자기만의 기만에 빠져서 남을 정죄하는 인간. 이런 눈빛으로 그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저도 사실 처음에 이런 눈빛을 가졌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옛 모습을 보니까 이상하게 경멸하고 싶은 마음이 떠오르더라고요. 심리적인 무언가가 작동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다행히 친절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만나서 아주 전투요원이 되진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장신대 교수님은 곧 모시고 올게요, 외국에 출장 가시느라 연락이 못 드렸었는데 방학 기념으로 연락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나요? (갑자기?)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도 맞고요. 조금 어려우니까 와 닿는 표현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봅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먼저 드린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게 아니고요, ‘누구’를 믿는 거예요. 어떤 사물, 어떤 지식, 어떤 문장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런 교리는 공동체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최소한의 보조장치일 뿐이죠.

우리는 ‘누구’를 믿는 거예요. 예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거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거예요. 성경해석을 다 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세상 일들을 모두 인과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신앙의 틀로 원인과 결과에 맞게 설명해내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걸 믿는 게 아니고요, 다 이해할 수는 없어요, 선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끄시고 계신다는 걸 믿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모두가 존재한다는 걸 믿는 거예요. 신뢰죠.

우상 신전에 들어갔다 나온 고기를 자유롭게 먹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을 숭배하는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도,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도 언젠가는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잘 알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이웃을 실족하게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바울은 우상숭배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실족하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해요.

 

6. 우상의 공장

급진적 파괴자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자기 우상들을 직면케 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에요. 그만 큰 사람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탁월하기 때문이에요. 오늘 읽은 본문, 고린도전서 10장의 앞부분이 이야기해주고 있는 부분이에요. 모세가 노예 공동체, 이집트에서 수백 년간 지내온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출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찾은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주지요? 첫째 되는 계명이 바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명령이죠. 뒤집어 말하면,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게 우상이란 말이기도 해요. 역시나 이스라엘 공동체가 그 모습을 보여주죠. 십계명을 받으러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그 사이를 못 참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로 우상을 만들잖아요? 그래서 또 심판을 받지요.

바울은 구약의 이 가장 원초적인 신앙의 전승, 이스라엘 공동체 신앙의 핵심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요. 왜요? 사람들은 반복해서 우상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됐다, 선 줄로 생각한 사람도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사람은 언제나, 우상을 만들어내려 하니까.

 

7. 루터의 1 계명 해석

자,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의 언어이지요. 왜 죄인인가요? 원죄라고 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원죄라고 하나요? 교리적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려 하는 것. 이때 자기를 사랑하는 건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는 사랑이 아니고요, 이기적인, 탐욕적인 자기애를 말하는 거예요. 교리적 대답을 조금 구약적으로, 혹은 오늘 고린도전서의 바울이 사용했던 언어로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늘 우상을 만든다.”

자,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저도 그렇고요. 동시에, 여러분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천재입니다. 천재라고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 앞에 우상을 만드는 말을 붙이니까 이상하지요? 좀 마음 아프지만,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드리자면, 사람은 우상의 공장이다고 생각해주세요. 그것을 우리는 원죄, 죄인이다는 다른 언어로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신이 아닌 걸 신이라고 말하는 능력.

네? 저는 예수님만을 믿는데요. 불교신자가 아닌데, 왜 우상을 만들어요?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어요. 혹시 작년에 십계명 설교 기억하시는지요? 기억 못 하시겠죠? 1 계명,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계명을 루터가 어떻게 해석했다고 했죠? 하나님보다 우선순위를 두는 것, 더 마음을 쏟는 무언가가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고 이야기했어요. 여러분 초등학생 때 방학이 다가오면 뭘 만드나요? 방학 계획표를 짜잖아요? 물론 짠다고 그대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하는 건 재밌잖아요? 사람이 우상을 만드는 존재라는 걸 인정했다면, 나는 어떤 우상을 만들고 있는지는 나의 시간표를 점검해보시면 되어요. 물론 물리적 시간만이 척도는 아니죠.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 나의 돈, 나의 열정, 나의 헌신. 어떤 것에 몇퍼선트의 에너지를 썼는지를 보고, 나는 이번 일주일 동안 어떤 우상을 창조해냈는지를 점검하셔야 해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안에 처음 신앙생활 시작한 분과, 좀 공부를 하신 분 간에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듯이, 우리도 신앙의 여정에 따라 만들고 있는 우상이 달라질 거예요. 교회는 그것을 피드백하는 공간이죠. 이때 바울이 말한 미덕이 필요한 거예요. 나는 너보다 좀 더 세련됐어, 나는 너처럼 촌스런 우상은 만들지 않아, 이렇게 비교 경쟁하는 게 아니고요, 서로 시험에 들지 않는 선에서 하나님을 일 순위에 두는 삶으로 조금씩 조정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교회인 거예요.

 

8. 1%의 믿음으로.

책을 하나 추천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주중에 심방을 했는데요, 지금 아름다운 북유럽으로 떠나고 계시는 분을 만나고 왔어요. 그 성도님이 읽던 책인데요, 제목은 ‘확신의 죄’입니다. 피터 엔즈라는 유명한 신학자의 책이에요. 피터 엔즈는 신학 공부할 때 추천도서로도 종종 나오는 유명한 분이에요. 제목이 느낌이 오나요? 신학교수로 지내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같은 책이에요. 저는 전자책으로 읽었기에, 빌려드릴 수는 없고요, 사보시길 추천합니다. 가끔 저희 교회에 신학교수님 오시잖아요? 오실 때만다 여러 질문을 여러분이 드리는데, 교수님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실 때가 있지요? 저는 목사들을 가르치는 신학교수님은 잘 모르겠다는데, 어떻게 목사님들은 그렇게 확신에 차서 무언가를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할 건 예수님의 사랑이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생겼어, 예수님은 머리가 길어, 예수님은 이렇게 걸으실 거야, 이렇게 하는 순간 그건 확신이 아니라 우상이 되어버려요. 조금 이해하기 쉽게 숫자로 말씀드릴게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몇 퍼센트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세요? 달리 말하면 신에 대해 몇 퍼센트 알고 계시느냐는 거예요. 1 퍼센트. 우리는 1 퍼센트 알고 있다고 합시다. 1 퍼센트도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사실. 신에 대해 그 정도 알고 있다고 그 누구도 해서는 안될 말이죠. 다만, 1%라고 하면 내가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어떤 수준인지 느낌이 오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럼 저는 몇 퍼센트로 할까요? 저는 1.1퍼센트로 할게요. 편의상 그렇게 한 거예요. 조금 전문적인 공부를 몇 년 더했으니까, 0.1 퍼센트는 귀엽게 봐주세요. 자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외에 다른 것들에 ‘확신’을 가져버린다. 5 퍼센트, 10 퍼센트, 90 퍼센트 100 퍼센트로 무언가를 단언한다. 저는 그러면 그 사람은 우상숭배에 걸려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우상의 공장이라고 하는 건 1 퍼센트 외에, 99 퍼센트 모르는 부분을 자기 지식으로 채워놓으려는 습성이 있다는 거예요.

고대 근동 사람들을 그걸 조각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눈에 보요.이고 만져지는 것으로요. 그래야만 불안이 풀리나 봐요. 그래야만 뭔가 세상을 살 용기가 생기나 봐요. 그런데 그것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당연히 99 퍼센트의 공백이 있는 게 정상이에요. 더 안다고 생각하면 그건 교만이고요. 50 퍼센트 정도는 알아야 구원받는다 그러면 지식을 우상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대 교회의 초기 이단 중의 하나가 영지주의죠. 지식으로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여유를 가지세요. 인간이 신에 대해 아는 것은 1 퍼센트. 하지만 그 1 퍼센트가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유 없는 사랑, 우리는 그것에만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99 퍼센트의 공백을 우리는 여러 우상을 만들어서 집어넣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거예요. 그러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을 테고요. 그 공백을 견뎌내는 훈련이 사실 기도예요. 그래서 침묵기도는 비워내는 기도이고, 본래의 기독교 영성에 맞지요. 기도에 대한 부분은 다음에 나눌게요!

이상한 확신의 목소리들에 속지 맙시다. 1 퍼센트만 알고 있기에 약간은 불안하죠. 그리고 우리의 죄된 습성 때문에 뭔가 보이는 우상을 만드려 할 거예요. 자기도 뭘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땐, 시간표를 떠올리세요. 일주일을 돌아보시고 무엇을 신으로 섬겼는지를 돌아보세요. 마지막으로, 교회에서의 나눔 속에서 서로 피드백해주며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피드백해주는 연습을 해나갑시다. 나보다 저급한 우상 만들었다고 손가락질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아는, 그래도 하나님을 1 퍼센트 안다는 그 신비를 공유한다는 설렘 속에 서로 도와줍시다. 안갯속을 함께 걸어가는 마음으로 또 우리 앞에 놓인 일주일을 만나볼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