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욱] 우표로 살펴본 20세기 반미의 세계사
[정한욱] 우표로 살펴본 20세기 반미의 세계사
  • 정한욱
  • 승인 2019.07.2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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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토 요스케, 우표 역사를 부치다, 정은문고, 2012년
나이토 요스케, 우표 역사를 부치다, 정은문고, 2012년
나이토 요스케, 우표 역사를 부치다, 정은문고, 2012년

일본의 우편학자인 나이토 요스케가 쓴 『우표 역사를 부치다』는 20세기에 접어들어 미국과 적대적이고 격렬한 관계를 맺어온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다룬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과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우편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살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우편학’을 편지나 엽서에 붙은 우표와 찍힌 소인 등을 포함한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미디어로서의 우편, 즉 우편 미디어”를 분석해 그 우표가 만들어지고 통용된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하려는 학문적 시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한 국가의 정치적 견해나 정책, 이데올로기 등을 담고 있는 ‘국가 미디어’인 우편물을 연구하는 ‘우편학’의 눈을 통해, 20세기 동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맞섰던 나라들의 격렬했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나간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우표(또는 우편 미디어)로 살펴본 20세기 반미의 세계사”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여덟 나라들 - 북한, 베트남, 이란, 쿠바, 소련, 필리핀, 일본, 이라크 - 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전쟁이나 혁명의 혼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다양한 형태의 충돌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저자는 그들 중 소련이나 북한, 베트남을 포함해 어떤 나라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처음부터 반미노선을 택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정권의 성격이나 민주주의의 정도, 부패 여부 등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득에 부합하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치는 냉혹한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어떤 국가든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거스르는 순간 테러나 쿠데타, 전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정권의 제거를 꾀함으로서 스스로 반미를 조장해 왔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과 혁명의 세기였던 20세기에 ‘반미’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자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정치노선이었으며, ‘국가 미디어’인 반미국가의 우표는 그 역사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대변해왔다.

‘반미의 세계사’라는 책의 특성상 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많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보이거나 진부한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대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라는 입장에 서서 시종 냉철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간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고 아무래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그 대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가 반미 국가의 ‘우편 미디어’를 통해 펼쳐 보이는 역사의 진실은 때로 꽤 충격적이다. 이렇게 우표와 우편물이라는 친근한 시각적 자료를 통해 ‘반미의 시각에서 본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라는 낮선 영역에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내용과 다채로운 사진자료, 그리고 아름답고 꼼꼼한 만듦새가 읽는 내내 오감과 지성을 즐겁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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