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두 가지 지혜
[장일] 두 가지 지혜
  • 장일
  • 승인 2019.07.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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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 목사의 설교 - 야고보서 3:13~18
JTBC (2019.07.19)

서 론

야고보서 강해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지난 한주도 이 문제로 인한 뉴스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이번 수출규제 곧 경제도발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과거사문제에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죠?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것과 박근혜정부에서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것입니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 문제 삼아 경제도발을 감행했습니다. 특별히 우리 경제에 가장 타격을 줄 수 있는 반도체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이어서 반도체 뿐 아니라 화이트 리스트 곧 수출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식들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일본의 아베 정권보다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의 안이하고 감정적인 대응이 화를 자초했다” 주로 보수언론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유 없이 트집을 잡아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누구를 책망해야 합니까? 가해자를 책망해야 되겠죠. 그런데 피해자에게 “네가 힘이 없는 게 잘못이야”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죠? 이는 마치 매 맞는 아내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 거지!” 이렇게 꾸짖는 행패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명칭부터 달리해야 합니다. 경제보복이 아닌 경제침략입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어떠한 빌미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한일관계가 건설적이며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사문제를 매듭지어야 합니다. 당장에 경제적인 피해가 따른다고 해서 과거사문제를 다 덮어야할까요? 100년 전에도 경제를 위해 곧 조국근대화를 위해 일제의 식민지배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신문인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러한 위기들을 단합된 힘으로 극복한 전례들이 있습니다. 현재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만큼 많은 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아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지혜를 소개합니다. 땅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입니다. 지혜는 단순한 원리가 아닙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 백성의 표지입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에도 수많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지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누가 지혜자인가?

두 가지 지혜 첫 번째는, ‘누가 지혜자인가?’입니다.

13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본문에서 야고보는 혀의 중요성과 영향력에 대해 교훈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에 담긴 지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늘 본문에서 지혜의 문제를 다룹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 곧 유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가 지혜 있고 유식한 사람일까요? 먼저 교회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3:1절에서도 야고보는 말에 대한 경고를 ‘선생 된 우리’ 곧 지도자들에게 먼저 적용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에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자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죠? 첫째는 ‘선행이 있는 행함’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혜 있고 유식한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를 떠올립니까? 교수나 변호사 대체로 이런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화려한 언변이 아닌 지혜자의 선행을 강조합니다. 상반절에 나오죠.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지혜자의 특징 두 번째는 ‘온유함을 갖춘 지혜’입니다. 하반절을 보세요.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 문장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참된 지혜는 항상 온유함을 동반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지혜자라고 말하지만 온유함이 아닌 시기와 경쟁심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참된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안수현, 그 청년 바보 의사, 아름다운사람들, 2009년
안수현, 그 청년 바보 의사, 아름다운사람들, 2009년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10년 전에 출간된 책인데 말씀을 준비하며 생각이 났습니다. 제목처럼 한 청년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의 이름은 안수현, 고려대 의학과에서 수학하고 고려대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거쳤습니다. 이후 군의관으로 복주하던 중 유행성 출혈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가 서른셋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예수의 흔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분명 다른 의사들과는 달랐습니다. 환자들에게 늘 따뜻했고, 동료들에게는 친절했으며, 자신에게는 의사로서 엄격했다고 합니다.

그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사였고, 그들의 병든 몸 뿐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까지 치유하는 의사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면 직접 장례식에 찾아가 유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또한 퇴원한 어린이의 생일에는 선물을 들고 찾아가 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편견 없이 대했습니다. 병원 매점 옆에서 구두를 닦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의사는 그 청년이 처음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장례식장에는 영정사진이 걸리기 전부터 밀려오는 조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 누가 진정 지혜자입니까? 지금도 현란한 말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안에도 말로만 지혜를 자랑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말 뒤에 예수를 닮은 선행과 온유함은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행함으로 지혜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지혜가 달콤한 말이나 처세술이 아닌 행함과 온유함으로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2. 땅의 지혜

두 가지 지혜 두 번째는, ‘땅의 지혜’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15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이제 야고보는 지혜를 두 가지로 대조시킵니다. 첫 번째가 땅의 지혜입니다.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면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과 경쟁심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상태로 온갖 자랑과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이 가득한 곳에는 무엇만 남게 될까요? 혼란 즉 무질서와 악한 행위만이 남습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지혜가 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임을 밝힙니다. 또한 육신에 속한 것이며 마귀에게 속해있습니다. 여러분 마귀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거짓과 분열입니다. 시기과 경쟁심은 반드시 거짓된 방법을 낳게 됩니다. 우리 정치권을 한번 보십시오. 자신의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가짜뉴스 등 온갖 거짓된 방법을 동원합니다. 또한 마귀는 공동체 안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여전히 교회 안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일합니다. 시기과 경쟁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분쟁이 있는 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담임목사와 당회 간에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JTBC(2019.07.
JTBC(2019.07.17)

서울에 있는 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매우 유명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현재 부자세습과 비자금문제 등으로 계속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교회 안에서는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매우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원로목사가 교회를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성도들은 마귀의 세력으로 정죄당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쫓겨납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답은 시기와 경쟁심에 있습니다. 이미 거대한 대형교회가 되었지만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이 용광로처럼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회는 당회원 곧 장로님들이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당회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당회는 교회 전반에 관한 사역이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입니다. 쉽게 말해 교회가 잘 운영되도록 돕는 역할이죠.

그런데 장로님들이 사사건건 목사님의 발목을 잡습니다. 교회를 잘못되게 운영한 게 아닙니다. 어떤 비성경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시기과 경쟁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회의 역할을 착각한 것이죠. 목사님과의 관계를 협력이 아닌 경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목사님을 견제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깁니다. “장로의 역할은 마치 야당의 역할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장로님도 있을 정도니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처럼 땅의 지혜가 여전히 득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땅의 지혜가 가져오는 결과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한 경쟁시대입니다. 남을 밟아야 내가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때 시기와 경쟁심 그리고 교묘한 거짓말은 죄가 아닌 오히려 성공의 촉진제가 되어줍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한 대기업은 임원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실력이 아닌 로비와 청탁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의 지혜는 성도가 추구해야 할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기와 경쟁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 아버지를 닮은 섬김과 사랑의 나라입니다. 나의 가정, 일터, 교회가 마귀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로 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깊숙이 박힌 땅의 지혜를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참된 지혜가 필요하며 오직 그 지혜만을 추구해야합니다.

 

3. 하늘의 지혜

두 가지 지혜 마지막은, ‘하늘의 지혜’입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지혜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하늘의 지혜가 땅의 지혜와 대조되는 이유는 바로 위에서 오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또한 하늘의 지혜는 매우 다채로운 특징을 보여줍니다. 어떻습니까? 17절에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지독한 시기과 경쟁심, 진리를 거스리는 거짓말, 혼란과 악한 행위, 땅과 육신 그리고 마귀에게 속한 지혜. 어떻게 차이가 좀 보이시나요? 하늘의 지혜는 땅의 지혜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지혜는 하늘 아버지를 닮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의 표지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 그가 맺게 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18절에 ‘정의의 열매 곧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란 행함으로 의롭게 된 믿음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여러분 평화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한반도 비핵화, 한일관계의 회복 대체로 이러한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물론 틀린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하는 평화는 관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맺는 관계입니다. 그 안에서 맺는 바른 관계가 평화의 본질입니다. 친절하고 온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아내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지 벌써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의 경험이 없기에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아내를 통해 듣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뭘까요? 잦은 야근이나 좀처럼 오르지 않는 월급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제가 보니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부서의 분위기를 화목하게 잘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다음은 늘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분위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끝으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며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공감하시나요? 여러분은 세 부류 중에서 어디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까?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다음 보기 중에 누가 직장 안에서 바른 믿음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1번 차 안에 성경책과 십자가 장식이 있는 사람.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2번 30분 일찍 출근하여 기도와 묵상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 많지는 않지만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3번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 안타깝지만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는 자리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일주일에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과 일터에서 보냅니다. 이처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자리가 우리의 진짜 믿음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의 가정, 직장, 사업장에서 의의 열매가 자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평화가 드러나는 관계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혹시 시기와 경쟁심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하늘의 지혜는 반드시 의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말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추수의 날은 머지않아 다가올 것입니다. 그 날에 가득 찬 의의 열매를 수확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 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열한 번째 시간으로 ‘두 가지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땅의 지혜는 시기와 경쟁심, 거짓과 위선의 열매를 맺습니다. 반면에 하늘의 지혜는 친절하고 온순하며 자비와 선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지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결코 현란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이 아닌 행함으로 지혜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세상에는 시기와 경쟁으로 인한 무질서가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평화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늘의 지혜를 따르는 우리 공동체 위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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