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당신이 교회에 오기 전에 해야 할 일
[김동환] 당신이 교회에 오기 전에 해야 할 일
  • 김동환
  • 승인 2019.07.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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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목사의 설교 - 마태복음 5:21~24

1. 직장(삶의 터전)을 옮기는 가장 큰 이유?

여러분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해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매일 그런 생각하며 살고 계신 건 아니겠죠?^^;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참 와 닿았던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정이 행복하고, 여러 조건이 좋아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 일주일 내내 불행하게 일하고, 주말에만 행복을 느낀다면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감이 되긴 하면서도, 대부분의 직장 현실이 좋지가 않다 보니 너무 이상적인이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홀로 공부하는 분이시거나, 프리랜서의 경우엔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요.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직장을 옮기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들어본 케이스는 직장 내 관계 문제였습니다. 노동량이 너무 많거나, 월급을 못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지만요, 빈도수로 따지면 관계 문제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교회를 그만두거나 올 기는 사역자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 같고요. 물론 제가 만나본 경험에 따른 것이기에 정확한 통계는 아니고요, 여러분 주변의 친구들이 직장을 옮기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직장을 옮긴다는 건 우리 인생에 가장 큰 결단을 해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관계 문제로 인해 생활터전을 옮긴다는 건 그만큼 갈등이 주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는 뜻이겠지요. 문득 또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요, 여러분이 겪는 스트레스 지수를 중에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오는 퍼센티지는 몇 퍼센트정도 되는 것 같나요? 사람마다 다 다를 것 같은데,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2. 화를 못 참는 아이

저는 지금은 프리랜서 교사, 프리랜서(?) 목사로 살고 있기 때문에, 회사 내 위계 문제나, 동료와의 갈등 이런 문제로 오는 스트레스는 없어요. 다만 모든 직업군이 그렇지만 프리랜서의 삶이 그렇겠지만 대신 ‘불안의 문제’를 껴안고 살고 있지요. 다만 학교든, 교회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참 많아요. 당연히 많은 관계 문제들을 보게 되고, 또 저도 갈등을 겪기도 하고, 중재도 하고요,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번 주는 수업하면서 또 새로운 걸 알게 됐는데요, 매주 새로운 일을 겪습니다. 수업 중에 한 친구가 자꾸 책상을 발로 차면서 소리를 냈어요, 평소에 약간 산만하긴 했지만 그날 조금 심했던 것 같아요. 저도 수업하다가 보면 주의를 줬지만, 짝꿍이었던 아이가 반장이다 보니,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를 했나 봐요. 그랬더니, 이 아이가 반장이면 다냐고 그 반장 친구를 또 몰아붙이더라고요, 반장 학생은 결국 울고, 저는 중재해주러 갔는데, 보통은 주의를 주고, 나중에 사과하세요~ 하면 네, 하는데 이 친구는 이상하게 씩씩 거리면서 사과 안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약간 감정 컨트를 못하길래 저도 당황했어요. 끝나고 남으라고 했지만 결국 종 치자마자 도망가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저한테 와서 그 친구가 사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성격장애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께 여쭤봤더니 약을 잘 안 먹고 온 날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한번 화를 내면 그냥 책상을 치고 난리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된데요, 사실 정상적인 친구가 이렇게 해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긴 해요. 뒤에 서있게 하는 것도 체벌이 금지돼서 안되더라고요. 아이가 마음먹고 교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사실 어찌할 방도가 없거든요. 그런데 성격장애인 경우는 더 생각할 점이 많죠.

안 그래도 저희 교회에도 직장터에 성격장애가 있는 분 있어서 고생했던 일 있었잖아요?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아마 정확히 성격장애라고 하기보단 그 전 단계의 이름을 붙일 것 같아요. 저도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공부할 때 배웠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ㅠ 그런데 제 기억에도 모든 정신 질환 중에 성격장애가 가장 고치기 힘들다고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나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까 병원에 오지도 않고요, 또 화를 주체를 하지 못하다 보니까 관계 문제를 계속 일으킨다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약물 치료 이야기를 하셨지만, 약물치료를 안 좋게 보는 상담가들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약에 의존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아프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약을 안 먹으면 아이가 감정 컨트롤이 안돼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니, 이게 참 저도 앞으로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게 그 아이와 반 아이들에게 좋을지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3. 옷을 찢는 아이

간단하지가 않죠? 관계의 문제는 어른들에게만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초등학생 아이들 사이에서, 또 아이들과 어른의 관계 사이의 일도 쉽지가 않아요. 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이번엔 1학년 수업이었는데요, 제가 지난주에 한번 화를 크게 낸 적이 있었어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을 하는데, 분위기를 보니까 그대로 두면 왕따 문제가 될까 봐 걱정돼서 어쩔 수 없이 크게 화를 냈어요. 한 여자아이가 우유를 먹는데 남자아이가 가서 우유갑을 쳐서 우유가 여자아이 얼굴에 쏟아진 거예요. 화를 내긴 내야 하는 게 맞았겠죠? 장난친 남자아이가 1학년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좀 영향력이 있어 보여서 일부러 지적을 했어요, 다른 친구 괴롭히면 정말 나쁜 행동이다는 인식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번주 어떻게 하나 보자 하고 1학년 남자아이를 봤는데, 다행히 다른 남자 친구 장난감 뺏아간 일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주엔 지난주에 고생했던 여학생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치마 밑부분에 디자인 때문에 구멍이 나 있는 치마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거기다 손을 놓고 치마를 자꾸 찢으려 하는 거예요. 애들이 구멍이 커진 걸보고 놀리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계속 치마를 찢으려고 해서 또 수업을 멈추고 못하게 했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또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이 여자아이가 또 저를 찾아왔는데, 입술에 피가 나는 거예요. 보니까 자기가 입술을 찢었더라고요, 그러고는 저보고 입술에 피가 난다고 하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아껴주는 느낌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답이 아닐 순 있는데, 아이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어야만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렸을 때 일부러 꾀병 부려서 부모님 관심 얻으려고도 하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지난주에 아이 얼굴에 우유가 쏟아졌을 때, 정상적인 경우라면 울거나, 화를 내거나 해야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하더라고요, 마치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학생에게 어떻게 대해줘야 할까요? 폭력성이 다른 친구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마음이나 자기 몸으로 폭력성이 흐를 수 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정신의학 공부할 때도 배운 게, 자학적 태도가 강해지면 우울증 증세로 발전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컨트롤이 안 되는 바깥으로 정죄 감이 발전되는 게 성격장애라고 하더라고요.

 

4. 산상수훈

어려워요, 사람이 존귀한 존재이지만,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이론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한 인생의 경험으로 다 공식화할 수 없어서 어려운 것 같아요. 나름 전도사, 목사로 다양한 사람 만나봤다고 자신했는데도 몇몇 초등학생 친구들 만나 서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비슷한 삶의 자리, 비슷한 경험, 비슷한 지위에 있어서 저절로 합이 잘 맞는 사람들도 만나겠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갈등이 생겼을 때 많을 거예요. 이제는 관계 문제에서 자유롭겠지! 나 정도면 이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는 일 없을 거야!라고 자신했다가 또 큰 싸움이 났던 일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런 복잡한 우리 심경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24절을 다 함께 다시 읽어볼게요.

21 "옛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아멘.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 대한 해설 중의 하나예요. 산상수훈 중에 이 말씀과 연결되는 건 5장 9절 말씀일 것 같아요.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멋진 말씀이죠? 기독교 신앙에 질문이 많고 고민하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이 말은 예수님에게만 쓰는 말 아닌가? 라고 질문하실 수 도 있겠어요. ‘하나님의 아들’ 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처럼 꼭 ‘하나님과 같은 존재’ 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아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복수 형태로 종종 쓰였는데요,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사람, 왕이나 장로들과 같은 공동체의 리더들에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을 썼답니다. 물론 나중에 교회 공동체는 성자 하나님이란 신적 의미를 담아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을 썼구요. 이 부분은 8월쯤에 복음서를 쭉 다루면서 다시 정리해볼게요!

오늘 말씀은 이 산상수훈의 화평케 하는 자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는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본 뜻을 해설하는 내용이에요!

누구든지 형제나 자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얼간이라고 하면 공의회에 불려가서 심판받을 것이고, 바보라고 하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본래적 의미를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놓고, 또 그 사람을 모독하는 언행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정말 많은 초등학생분들이 안좋은곳을 가게 될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5. 지옥에 관하여

지옥에 관하여서 신약에 몇 군데 구절들이 나오는데요, 12번은 복음서, 한 번은 서신서에 나옵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율법 해석을 이상하게 하는 율법학자들과 대화할 때 지옥이 등장하는데, 오늘처럼 어떤 특정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강한 경고의 말씀을 하실 때 등장하기도 합니다. 다만, 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고 표현한 구절은 없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는 표현은 있지만요. 정말 문자적으로 성경을 적용하시려면 이런 구절을 가지고 적용해야겠죠, 얼간이, 바보라고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보여야 할 존중이 없이 분노를 쏟아놓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실 때 심판과 지옥에 관한 단어를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지옥을 적용해서 말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지옥이란 단어는 한잣말이 성경 원어랑 느낌이 좀 달라요. 지옥은 땅 지, 감옥 옥, 해서 지하 감옥의 느낌이 좀 있죠? 구약에서는 죽으면 다 땅 밑의 어떤 공간으로 간다고 생각했어요. 스올이 그런 공간인데요, 이스라엘 공동체만의 생각은 아니고 고대 근동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라고 이해하시면 안 되고 문화적인, 사회적인 생각이라고 이해하셔야 해요. 하나님께서 나를 스올에서 건져내시리라 는 시편 구절을 읽었다고 해서, ‘아 땅 밑에 스올이라는 어떤 지하 공간이 실제로 있구나!’ 이렇게 해석하시면 안 된다는 거죠.

지옥이란 혼잣말이 원래는 불교용어죠? 극락, 찰나, 지옥 등 전통불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후세계에 대한 불교의 심판의 이야기가 내재된 단어가 지옥이에요.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시면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서 자기가 생전에 지은 죄에 맞게 벌을 받잖아요? 우리가 지옥이란 말을 쓰면 성경의 이미지보다 불교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지옥 했을 때, 어떤 성경 구절에서 사용되었고, 예수님이 언제 이런 단어를 썼는지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이 불교에서 그려졌던 심판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지옥이라고 번역한 성경 원어는 게헨나예요. ‘게 힌놈’이란 히브리어를 음역 한 말인데요, 힌놈의 골짜기란 뜻이에요. 구약시대에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불태워서 제사를 드리던 골짜기입니다. 우상숭배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공간인 거죠. 예수님 시대에는 마을의 쓰레기나, 오물, 죽은 시체를 소각하는 장소였어요. 그러니까 ‘흰 놈의 골짜기’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있었던 거예요. 구약의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더러운 것을 없애는 소각장의 공간인 거죠. 그래서 이런 이런 사람들은 게헨나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는 우리말로 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6. 당신이 예배의 자리에 오기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반대되는 언행들, 그러니까 이웃들에게 욕을 하고, 인간이 들어서는 안될 말들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는 의미로 지옥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일부의 기독교인들은 이걸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혹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신학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해요.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표현을 하는 거거든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믿고요.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시험지에 답안지 쓰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쓴 사람은 살고, 이렇게 안 적은 사람은 죽는 문제가 아니에요. 예수님의 사랑을 붙잡고, 그 사랑에 맞는 삶을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로 심판받는 거예요. 어느 교회 소속이었냐, 말로 날 인정할 수 있겠느냐로 심판하진 않으신다는 거죠. 거꾸로 나는 어느 교회 소속이고, 말로 예수님을 구주로 말할 수 있다 할지라도, 오늘 본문 말씀처럼 형제, 자메에게 분노하고, 인간적으로 해서는 안될 말을 쏟아놓는 다면, 그리고 거기에 함부로 너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지옥 갈 것이다고 인간이 인간에게 선포한다면 과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고는, 아까처럼 성격장애가 있는 친구에게 바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아파서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사람에게, 너는 분노를 함부로 휘둘렀으니, 그리고 친구에게 바보라고 했으니 지옥에 갈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게 예수님이 오늘 말씀에서 진정하고 싶은 말씀이실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화를 한번 내거나, 어떤 말을 한 번 했거나, 그랬을 때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맞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시나요? 제사드리러도 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죄를 고백하러 오기 전에 먼저 가서 화해하고 오라는 거예요.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먼저 사과를 구하고 와야 하는 거죠. 우리로 따지면 예배의 자리로 오기 전에 이 갈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오라는 겁니다. 와, 추상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정말 내 삶의 어긋난 관계들을 정리해야만 예배의 자리에 올 수 있다! 문자적으로 지킨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쉬운 일 아닐 거예요.

대형교회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을 하나님 앞에서 당사자들이 만나 풀려고 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냥 보지 말자, 대형교회는 그런 익명성에 숨기 편해요.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내 옆에 나도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까요. 웅장한 찬양과 멋진 공간이 있으면 왠지 예배를 잘 드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도 있죠.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건, 관계 문제거든요. 그 갈등관계를 먼저 정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공간에 오라는 거예요.

물론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 관계들이 많을 거예요. 이미 오래된 갈등도 많으실 테고요. 시작할 때 제가 이야기했듯이 이미 초등학교 1학년만 돼도 관계 문제가 복잡해요. 어떻게 화해야 할지, 화해를 도와야 할지 바로는 저도 정답을 모르겠는 상황도 있어요. 예배 시작 10분 전에, 앗, 빨리 연락해야겠다, 화해해야지! 이럴 분은 안 계시겠죠?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는 그 사람들끼리의 특수한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찾아야겠습니다. 무턱대고 나 잘못했어! 한다고 화해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렵죠! 하지만, 지옥에 안 가시려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시려면 노력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진짜라고 믿으신다면 불편하더라도 노력하십시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7. 화해의 부담을 껴안고 살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붙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지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이 말씀은 어떤 맥락에서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집마다 가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를 하라고 하는데요, 제자들이 잡혀갈 것을 걱정하시는 거예요. 10장 17절에 보면, 법정에 잡혀가서 매질을 당할 수 도 있다, 가족이 고발을 할 수 도 있다, 이렇게 제자들을 걱정하시는 이야기를 하세요. 하지만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것을 강하게 요구하시는데요, 그러면서 이 34절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분명 당시의 제도권 유대교와 갈등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순간 평화가 아니라 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칼이 폭력적, 물리적 의미의 칼이 아닌 건 아시겠죠? 요한복음 18장 10절에 보면 예수님 잡혀가실 때 베드로가 대사제의 종을 칼로 쳐서 귀를 잘라버리죠. 예수님은 베드로에 칼을 꺼내지 말라고 하세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이 있으심에도 에수님도, 제자들도 물리적 폭력으로 싸우지 말 것을 요구하세요.

그런데 일부 문자 주의적인 사람들은 폭력과 갈등을 조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요한계시록을 이상하게 읽고는 세상이 망해야 하나님이 오는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기독교인이나 목사들을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기도 해요. 어떤 종교이든 물리적 폭력이나, 혐오적 발언들을 하는 세력이 있지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믿으면 사람들은 어떤 악행이든 할 것이다’는 도예프스키의 말을 뒤집어서 말하기도 해요. ‘신이 있다고 믿으면 어떤 악행이든 할 것이다’

너무 슬픈 현실입니다. 세상의 전쟁 중에 종교가 개입된 전쟁에는 대부분 이런 문자 주의적 단체들이 있으니까요. 다른 종교의 문제를 보기 전에, 우선 우리 기독교가 자정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 이 말씀은 그래서 불화를 만들고 갈등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받는 핍박과 갈등을 말하는 건데요, 특히 예수님 시대는 오늘과 같은 자유의 시대가 아니니 박해가 더 심했지요. 자신들이 이상한 언행들을 하면서 받는 지적과 핍박을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는 핍박인 것으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오면서 어떤 화해를 하고 오셨나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호통을 부담으로 껴안으시길 바랍니다. 일주일 안에, 한 달 안에, 몇 달안에 해결이 안 될 문제라도 부담을 껴안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핍박받는 관계에 있어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라요. 과연 그러한 문제인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시고, 스스로 결정해서 움직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먼저 화해자가 되고,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의 화해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움직이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동환 목사는, 길섶교회를 섬기며, 평일에는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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