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웅의책과일상] 현장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
[김영웅의책과일상] 현장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
  • 김영웅
  • 승인 2019.07.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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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문,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 신약편, 선율, 2019년
김동문,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 신약편, 선율, 2019년

구약편에 이어 6개월 만에, 기다리던 신약편을 만났다. 이번엔 가능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자칫하다간 금새 또 빨려들어가 한 시간 이내에 다 읽어버릴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 시간 정도에 걸쳐 다 읽어버리고, 지금은 이렇게 여전히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림과 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비록 단편적이지만 성경시대를 독자의 눈 앞에 펼쳐주는 이 책은, 구약편에서도 그랬듯, 참 아쉽기만 하다. 만화 형식이 가미되어서인지, 그림이 주는 시각적 효과 때문인지, 몇 문장 안 되는 글들이 심금을 울려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구약편에 이어 신약편에서도 마찬가지로, 읽고나서 똑같은 갈증을 느낀다. 더 읽고 싶어하는 나의 바람이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어쩔줄 몰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왜 이렇게 짧은 것일까!

신약편도 구약편에서 보여주었던 형식이 그대로 유지된다. 짧지만 의미심장한 글은 김동문 중동 선교사가 맡았고, 재치가 넘치면서도 미처 글이 담아내지 못하는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는 그림은 신현욱 목사가 맡았다. 둘의 시너지는 이 책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또 맛보고 싶을 것이다.

살면서 우린 너무 익숙해져서 본질을 놓쳐버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겪을까.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보는 시도는 이러한 우리의 쳇바퀴 같은 삶에 하나의 해독제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교회 짭밥이 많은 기독교인일수록 성경을 마치 잘 안다고 여기는 고질적인 습성이 있기 마련인데, 이는 늘 새로운 하나님 말씀의 신비를 일상에서 더 이상 체험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우리 시대의 문화와 관습에 맞춰서 성경을 이해해왔고 또 그것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시대의 시간과 공간을 묵과한 채 훌쩍 뛰어넘어 우리 시대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성경의 원청중이나 원독자에게 들려지거나 읽혀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을까.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직접 예수의 말씀을 듣거나 바울의 가르침을 들을 수만 있다면, 과연 우리가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는 성경해석이 올바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알다시피 우린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린 아직도 남아있는 성경시대의 흔적들을 좇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이 책이 시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흐름의 하나이다.

김동문 선교사는 성경의 무대가 된 중동 지역에 장기간 직접 살기도 했으며, 자주 방문하여 관광객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중동 서민들과 함께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숱하게 경험했다. 그들과 함께 맛보고 냄새 맡고, 그들과 함께 보고 들었다. 그래서 중동과 거의 상관이 없는 한국이나 미국에 거주하는 우리들의 시선보다는 훨씬 더 성경의 원청중과 원독자의 시선에 가까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의 각 페이지에 한 두 문장으로 함축된 글은 깊이가 다르다. 현장 체험을 가진 자의 친절한 묵상에 나는 일개 독자로서 감사하며 혜택을 누릴 따름이다. 덕분에 이번에도 신약성경 해석에 있어서 몇 가지 부분에서 더욱 풍성한 해석과 묵상을 할 수 있었다.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은 하나의 묵상이다. 기존의 성경 해석을 뒤집거나 새로운 성경 해석을 시도하기 위한 목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저자가 독자들에게 원했던 것은 그때 그 시절의 일상에 깃든 예수의 삶과 이스라엘의 삶을 가능한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일목요연하게 성경에서 교훈을 추출하여 정리해주는 방식이 아닌, 또한 조직적으로 말씀과 교리를 풀어주는 방식이 아닌, 성경에 등장하는 내러티브의 액면 그대로를 독자들로 하여금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함께 상상하고 묵상하면서 복음의 풍성함을 나누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영성 훈련이나 기타 여러 신앙서적, 혹은 난해하기만 한 신학서적들도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자칫 진공 상태의 관념으로 머물 수도 있는 ‘영적인 것들’을 넘어 신약시대의 현장감을 느껴보며 다시 신약 성경을 읽어보는 경험, 맛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난 이 책을 주저없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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