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다?
  • 김동문
  • 승인 2019.06.12 07:0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 목사의 설교 전문 - '지적질인가 거룩한 분노인가’
분당A교회 B목사의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우리교회에서 정진영 목사의 수요 예배 설교 동영상을 다시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두었기에, 여기에 올려둡니다. 2019.06.13 00:50 수정)

최근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한 설교자의 설교에 얽힌 반응을 뒤늦게 접했다. 설교자는 해당 교회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리고, 담임목사는 이와 관련 죄송하다고 밝혔다. 해당 설교는 교회 홈페이지에서 내려졌다. 한쪽에서는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해당교회 게시판에는 B목사의 설교와 관련한 게시물과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분당우리교회의 부목사인 정진영 목사가 설교 중 "동성애 대세는 이미 넘어갔다. 반대하는 게 꼰대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일고 있다. 정 목사는 지난 2019년 6월 5일 수요예배에서 "예민한 이야기를 언급해보고 싶다"면서 최근 열린 서울퀴어축제를 언급하며 이 같이 설교했다." - 기독일보(2019.06.07)

설교를 통해 교회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는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교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에게 초대교회 교인들같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정 받는 삶을 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지혜 없음으로 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2가지 표현, “대세는 이미 넘어갔습니다” 라는 말과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것은 소위 '꼰대'들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드린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제 부족함의 결과입니다. - 정진영 목사, "두 번째 사과 말씀을 올려드립니다", 분당우리교회 우리게시판(2019.06.08)

평소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압도하고 치유하기 위해 우리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하고 그러려면 말씀을 알아야한다고, 우리에게 거룩한 삶이 있어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분당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촉구하신 명설교였습니다. 그런데 몇마디 단어를 엉뚱하게 적용하여 비판하며 목사님의 뜨거운 호소를 왜곡하고 심지어 사과까지 하시게 하니 우리나라 기독교의 민낯을 보는것 같아 참담한 심정입니다. - 올리브나무, 분당우리교회 우리게시판(2019.06.09)

도대체 누가 어떤 설교를 한 것이고, 이렇게 논쟁이 된 것은 어떤 과정에서 빚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논쟁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아직 정 아무개 목사의 설교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식의 표현이다. 설교가 논쟁이다, 문제라면서 직접 설교를 들어보지는 못했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런 대목이다. B 목사는 어떤 설교한 것일까?

논쟁꺼리가 된 B 목사의 설교는 29분 조금 넘는 분량이었다. 나는 설교자 B 목사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그런데 설교자의 입장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그가 설교에서 언급한 내용도 지극히 원론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29분 분량의 설교 녹취이기에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이 설교에 대한 찬성이든 반대이든, 설교자가 말한 것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면 좋겠다. 건강한 논쟁과 대화를 위해, 그 논쟁의 바탕이 되고 있는 설교 전문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번거롭지만, 설교 전부를 녹취하여 옮긴다.

 

분당우리교회 B 목사의 설교 전문
'지적질인가 거룩한 분노인가’(2019.06.05:수)

2-3일전 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그 신문을 통해서, 유명한 소설이죠. 칼의 노래 같은 그 소설을 썼던 우리 김훈 소설가가 한 강연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 시대를 바라보면서 남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 요즘 우리나라가 이렇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매일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로 난리치고 하는 사회가 되었다.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나 연민, 남의 고통을 동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상실했다 사람들이 혀를 너무 빨리 놀린다. 그 혀가 생각을 경유해서 놀리는 게 아니다. 나한테 침 뱉으면 너한테 가래침 뱉는 격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 동의가 됐습니다. 아니라고 하기가 참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사회가 참 이렇게 힘들고 좀 악이 있고 비판이 있고 비난이 있는 시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 솔직히 교회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는 시대가 되어져버렸다 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지적과 비난이 서로를 향해서 넘쳐나고, SNS에서만 봐도 아름다운 목회현장, 낮은 마음으로 서로를 돕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이런 이야기는 솔직히 찾아보기 참 어렵습니다. 지적이죠. 누구 목사가 잘못을 했다. 어떤 교회는 무슨 잘못을 했다, 어떤 설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얘기했는데 이건 틀렸다, 이런 이야기만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좀 이렇게 이런 시대를 바라보면서 좀 목사로서 궁금하고 고민이 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많다는 거야 너무 잘 알겠습니다. 근데 이렇게 지적과 비난만이 넘쳐나는 이 시대, 이런 험한 분위기로 이 서로를 정죄하는 분위기로만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믿는 우리들도 교회를 다니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도 여기에 동조해서 솔직히 내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행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우리는 괜찮은 것일까? 각자가, ‘니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올라오는 거룩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내가 너에게 한마디 해야 되겠다뭐 이런 자세로서 서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자면, 글쎄요, 이런 말을 우리가 서로에게 지적을 안 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라고 하는 고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 그런 마음을 요즘에 좀 가지고 있던 자세로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의 현장이 바로 그런 지적과 분노가 가득한 현장이었다 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많은 본문들 중에 한 본문을 가지고 성도님들과, 이 묵상으로 뭐 이 시대 전반에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말도 안 됩니다만, 그 다양한 우리의 현실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뽑아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마음입니다함께 읽으셨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비난을 받으시고 공격받으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 이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에 북부 지역인 갈릴리입니다. 보통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요즘에 정치인들과 같은 사람들이어서, 남부지역에 있는 수도 예루살렘에 대부분 거하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갈릴리 까지 올라와서, 예수님을 찾아서 공격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떤 거냐하면, 비유를 하자면, 서울 여의도에 모여 있어야할 국회의원들이 굳이 부산까지 찾아가서, 유력인사를 찾아와서 공격하고비난성명을 내는 그런 식의 이야기가 오늘 이야기입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52절을 보시면,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니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여기서 나타난 이 장로란오늘날 우리가 뵙는 장로님들 하고는 다른 존재들입니다 당시 일반적인 말로 불렸던 랍비, 그리고 이 성경에 나타나는 선생님 역할을 했던 서기관들을 부르는 다른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기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은 이 랍비들에게 상당한 많은 부분을 의지했었습니다. 그리고 랍비들은 포로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의 여러 가지 규칙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거룩하고 좋은 선한 의도가 아마 있었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그런 규칙을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이 규칙에 여전히 열심히 지키면 왜냐하면 이전에도 그랬으니까 오늘도 그렇게 해야 돼 이것이 반복되어지면서 이 규칙에 대한 열심히 지나쳐서 성경보다 우선하기 시작했다라는 것입니다. 이 손 씻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구별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서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규칙이 랍비들이 만든 규칙이 있었는데, 손을 씻을 때 손을 어떤 식으로 모으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 옆에서 돕고 그 손에다가 어떤 종류의 물을 어느 정도의 양으로 어떻게 따라 주고, 그것을 어떻게 비비고 이런 구체적인 규칙이 다 있었다라고 합니다.

근데 중요한 건 성경이 이런 규칙이 율법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이것은 랍비들이 만들었던 서기관들이 당시 상황에서 만들었던 규칙들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공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대하시는 이 태도에 몇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에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러 오셨는데, 그런 예수에게 왕이 되어주십시오 라는 정치적 요구를 하는 경우에 예수님은 많은 경우에 대응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 논쟁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된 의도로 왜곡해서 가르칠 때, 오늘 본문이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이 참지 않으시고 그들과 변론하시고 설명하시고 때론 꾸짖기도 하십니다. 세 번째는 어떤 반응이 있냐하면, 관용하시고, 그냥 품어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죄인들을 만나실 때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아오면, 때로는 율법이 맞아죽을 만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라고 돌려보내시고, 용서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어떤 경우가 있냐하면, 격분하시면서 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떨 때냐 하면, 성전이 더럽혀졌을 때 기도하는 장소가 탐욕의 장소가 되었을 때 뭐 이건 요즘으로 치면 이런 경우일 겁니다. 종교지도자들의 타락 그리고 성전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을 때, 이럴 때는 예수님께서 참지 않으시고 격분하시고 뒤집어엎으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이렇게 예수님이 사람들을 대하실 때 경우에 따라서, 내용에 따라서 다른 식으로 사람들을 대하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는 논쟁을 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오해가 있었으니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역공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역공을 하실 때, 이제 똑같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자들에게 이 외식하는 자들 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을 쉬운 성경 같은 다른 번역을 보면, ‘이 위선자들아라는 표현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공격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역공격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153절을 보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의 앞뒤가 다르다 너희들이 말하는 앞뒤가 다르다 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한 사례를 드십니다. ‘고르반이라고 하는 풍습인데요. 이게 하나님께 바쳐졌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재산 자기의 재산 앞에서 이것을 지칭하면서 고르반이라고 하면, ‘이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라고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건 하나님께 바쳐졌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다라고 하는 선포가 바로 이 고르반이었습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10계명 중에서 5계명 중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냐, 그런데 니들이 하는 짓을 봐라 니들은 부모를 공경해야하는데, 그 공경하기 위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 앞에서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고르반,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하면, 이건 하나님께 바쳐진 거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다른 부모에게서라도 쓸 수가 없는 재산이 되어져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명분을 만들어서 부모님에게 이 재산을 쓰지 않아버리는 모습들이 있었던 겁니다. 바로 그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르반을 또 안 지켜요.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다 써요. 말씀을 자기마음대로 해석해서 유용한 대로 갖다 붙이고 사용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거룩함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금 나보고 손 씻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너희의 그 지적질하는 너희의 그 삶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다. 라고 하시면서, 너희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이사야에 이렇게 쓰여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게 마태복음 1589절 말씀인데요. 자막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백성이, 시작.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이어서 이렇게 보여주십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오늘의 포인트 같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511절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입으로, 시작.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입으로 들어가는 것, 곧 뭐 부정한 것을 먹지 말고 정해진 거룩한 음식만을 먹고 이런 것으로 대표되어지는 율법을 행한다는 것 어떤 규칙을 지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니가 거룩하냐 부정하냐를 판별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 , 니 입에서 무슨 말을 하면서 사느냐 너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어떤 행동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 사람의 일상이 어떤 가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냐, 부정하다고 하실 것이냐? 라고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만 잘하고 규칙 들먹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교회 밖에서의 자신의 삶은 하나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가 정한 규칙 우리는 늘 이렇게 해왔는데 너는 왜 우리를 따라 오지 않느냐 분노하는 그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이자 훈계입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좀 한 3주정도 제가 묵상을 쭉 했던 것 같아요. 하면서, 성도님들 앞에서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오랫동안 하다가 이 제안 하나를 성도님들께 오늘 드려보고 싶습니다. 걱정을 좀 많이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면, 또 그런 소리냐?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분명 있으실 것 같아서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하는 설교 들어야 되는 말씀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실제로 우리가 가장 연연하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한번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눠보고 싶습니다. 비난이 횡횡하고 지적질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제안입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제안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지적과 비난을 좀 줄이고 내가 먼저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봅시다 라고 하는 제안입니다. 뻔한 이야기 같죠? 뭐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보시면서 마음이 순간 되게 불편하신 분이 분명히 있으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분명 있으실 겁니다. “아니 그럼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불의에 대해서 지적하지 말고, 너나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아라 그런 이야기를 또 하자는 겁니까? 교회가 이런 시대에 불의를 바라보면서 침묵하는 것이 옳습니까?”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지금 있으실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 타락과 지도자들의 타락을 바라보면서, 그 타락한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입니까?” 라고 답답해하시는 분이 분명 있으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질문을 이야기하신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아니요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 되겠고 어떤 의미에서는, 네 그게 우선 우리가 먼저 할 일은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이, 오늘 저의 마음입니다.

(
14:11)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고르반을 언급하시면서, 비난한 자들에게 역질문으로서 생각을 하게 하신 것처럼, 이 얘기를 하는 게 제가 이제 뜨거운 불속으로 기름을 끼얹고 스스로 뛰어가는 기분인데, 한번 예민한 이야기를 한번,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퀴어축제, 동성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성애 자체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여러분들과 한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전제로 하나 하고 갈 것은, 이 동성애 관련된 문제는, 절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창조질서에 따라서,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기준에 대한 이야기임을 전제로, 제가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몇 년 동안의 퀴어 축제에 그 사람들에 대한 반응 기독교계에 대한 반응 그 기독교계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의 나이 드신 분들의 반응을 참 많이 찾아봤습니다. 제가 찾은 결론은, “대세는 이미 넘어 갔다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언론과 또 이것을 이용하는 많은 또 정치인들과 또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들로 인해서, 이제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죄송합니다. 소위, 소위, 막말로 꼰대들의 이야기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제 퀴어 축제 앞에서, 그 앞에 드러누워서 기도하고, 막 악을 쓰면서 기도하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혐오의 대상으로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게 바로,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이미지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오늘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자기들 밖에 모르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들 밖에 모르면서 악쓰는 그런 이미지로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의가 되지 않으신다면, 주일에 저를 찾아주셔서, 저와 함께 주차복을 입으시고, 이 이매동을 한 바퀴만 도시면, 그 이야기를 바로 실감하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제가 매주 겪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가,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왜 꼰대소리를 듣는다고 저는 생각하냐 하면, 우리 크리스찬들이, 이런 동성애와 같은, 낯선 충격같이 보이는 문제에는 난리들을 치고 있으면서, 성경이, 사실은 동성애보다 훨씬 더 많이 하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별로 없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 라고, 저는 생각하는 부분이 솔직히,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예민하고 세상이 망할 것 같이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횟수보다, 탐욕에 대해서 경고하고 이야기하시는 횟수가, 열배 가까이 더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탐욕 하는 문제에 대해서 길거리에 드러눕고, 시위하고, 분노하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우리가 탐욕을 인정하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성 간에 연애, 성관계에 대해서 질색을 하면서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접근을 하지만, 그러면 그게 동성이 아닌 이성이라면 어떻습니까? 이성간의 관계라면 다 괜찮습니까? 부부간의 관계를 벗어난 비밀스런 자극적인 욕구, 뭔가를 찾아보는 나만의 비밀, 결혼 전에 누리는 자유로운 성관계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동성애보다는 쪼끔 나은 겁니까? 그래서 좀 부끄러운 나만의 비밀을 가지고는 있지만, 내가 저들보다는 낫기 때문에, 나는 저들 앞에서 드러누워야 하는 겁니까? 이런 주제가 조금 불편하시다면, 시기 질투의 문제는 어떠십니까? 베풀지 못하고, 나만 가지려고 애쓰는 욕심 부리는 태도는 어떠십니까? 쫌 더 가지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가지지 못해서 미래를 걱정하는 태도는 어떠십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는 어떠십니까? 이런 문제들을, 성경에서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하고 많이 반복하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간과합니다.

(18:45) 동성애라고 하는 감정을, 사실 저도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이해는 잘 안갑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다양한 뭐 이유가,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건지, 착각인건지, 뭐 자극을 찾다가 그 끝을 가서 그거를 가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상상상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뿐이에요. 자극적인 것을 찾다가 그 끝이 바로 이 동성애 아닐까? 왜 이렇게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것일까? 행복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만족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뭔가 결핍이 있기 때문에 그 결핍을 위해서, 조금 더 강력한 자극, 조금 더 자극된 것, 위로가 되는 것을 찾다가 거기까지 가는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극적인을 찾다 살아가니, 그렇게까지 가는 것 아닐까? 라고 밖에, 저는 상상이 솔직히 안 돼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면, 동성애를 틀어막는 것보다, 우리의 일상,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상처, 건강한 가정상, 건강한 부부관계, 여기서부터 다뤄야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쪽입니다.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제 입장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문제에서도 결국 희망은 복음이라고 믿습니다.

말로써, 그 사람들을 막으면서, 너 그러면 지옥 간다 라고 하는 저주가 아니고 정상적이고도 너무 행복한 부부관계,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의 바로 그대로의 성, 행복한 가정생활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크리스찬의 삶, 이것이 대안이고 이것이 희망이라고 저는 믿는 다는 것이죠. 이제는요, 지식과 지적과 저주가 아니구요, 삶으로서 샘플을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그렇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렇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성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능력이 있다고 저는 믿는 쪽입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아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우리가 읽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1511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요즘 우리의 표현으로 바꾸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비기독교인과 싸우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들과 얼마나 잘 싸우고, 그들을 막고 그것이 너희를 바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그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를 가지고, 나는 너희를 판단할 것이다, 라고 연결시켜서 적용한다면, 큰 비약이 될까요? 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예상하건데 세상은 아마 앞으로 더 이상하게 나아갈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습에 비하면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그 앞에서 이 세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현실과 상관없이, 이런 제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훨씬 더 높은, 이 성경에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앞에 보여주는 것, 저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분당A교회 B목사 설교 동영상 갈무리

초대교회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사도행전 247절을 보면, 이제 초대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평가가 나타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를 바라보면서 칭찬을 하는 시대가, 바로 이 초대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로마시대에 시작되었던 교회입니다. 로마시대는요.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성적으로 완전히 문란하고 타락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시대에 많았던 철학자들과 교사들이, 어린 아이 한명씩을 제자로 삼아서 그들과 함께 동성애 관계를 맺으면서, 내가 너에게 지식도 가르쳐주고, 몸으로도 가르쳐주면서,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너에게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 준다 라는 시대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 자연스러운 시대였어요.

초대교회는요, 그런 시대에,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전혀 다른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초대교회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 초대교회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너무 바르게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칭찬을 받은 거예요. 이 칭찬받던 교회가, 핍박가운데서도 세상에 퍼져나갔고, 결국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그 타락했던 로마가, 교회가 가득했던 시대로, 교회가 나라를 뒤집어 엎어버렸습니다. 초대교회가 당시에 칭찬을 받았던 이유들은, 그들이 뭐, 예배규칙을 잘 지켰다 라거나, 예를 들어서 예배시간에, 오늘날로 치면,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불렀느냐 복음성가를 불렀느냐 이런 문제로 칭찬받고 욕먹고 그런 게 아니라, 사도행전을 했느냐, 교독문을 읽었느냐, 이런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삶이 교회 밖에서도 얼마나 아름답고 모범적이었느냐, 그 사실을 가지고,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 노예와 주인이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세상이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어요.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사서 손해를 보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그런 세상 논리를 뛰어넘는 높은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로마 시대를 뒤집어엎는 동력원이 되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에도 그랬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도님들께 도전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우리, 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동성애를 추구하느냐, 반대하느냐 라는 사실 외에는, 그들이나 우리나 살아가고 추구하는 모습이 하나도 다른 게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드릴 것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과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며, 세상이 바라볼 때,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이 성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바보같이 살까? 그런데 왜 저렇게 행복해보일까? 도대체, 저 삶의 사람 비결이 뭘까?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바로 구별됨이고, 그게 바로 거룩함이며,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신 태도가, 바로 그 태도, 아니겠습니까?

성도님들, 우리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교회, 우리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성경을 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성경을 좀 읽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거룩하고, 뭐가 하나님께서 반대하시는 것이고, 뭐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인지를 알려면, 우리가 성경을 쪼금 더 가까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눈뜨고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바이블을 켜고, 큐티 책을 열고, 말씀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앞에서, 내 오늘 하루를 비추어 보며, 하나님 내가 오늘 어떻게 살아가야하겠습니까? 이것이 되어야, 그 다음 단계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지금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목사님 말이 그렇지 현실 모르고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시는 것 아닙니까? 현실이 녹록치 않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성도님이 계시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성도님들께, 오히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바로 지금이, 우리가 바로 크리스천임을 증명할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모두가 교회를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니들과 우리가 도대체 다른 게 뭐냐? 니들이 사는 모습이나,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다른 게 뭐냐? 라고 그 비난을 받으면서, 내가 기독교인을 드러내기가 부끄럽다고 이야기하는 이 시대 가운데에서, 그 부담을 가지고 있는 바로 이때가, 내가 바로 그것을 추구하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나서야 될 그 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걸 하라고 하시는데,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결국 하신 이야기가, 다 그 얘기입니다. 너희 세상 따라가지 말아라.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 말고, 내가 원하는 것 추구하고 살아라. 내가 너희를 할 수 있다. 내가 너희를 힘주마. 내가 너희에게 승리를 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지 말고 그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너희가 살아가면 너희가 뭘 두려워하느냐? 내가 너에게 승리를 허락해주마.

동성애이야기는 발끈하면서, 정치이야기 발끈하면서,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지적도 하지 못하고, 왜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고,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다 그런 연약한 우리들이지 뭐, 하며 왜 이렇게 살아가시는 겁니까? 지금이 바로, 우리가 말씀 앞에 거룩한 크리스천으로 일어서야 할 때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을 향해 다른 기준으로 도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세상에 먼저 보여주면서, 우리 이 세상 앞에 당당히 우리의 모습을, 지적과 비난보다 아름다운 모범으로 먼저 내세울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목소리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드리, 내세우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준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서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서,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하여서, 일 주일 간의 삶을 통하여서,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그 도구가 되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특정인의 말과 글, 행동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표현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지지 또는 반대에는 적절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비판은 범위가 제한되어야 한다. 특정 사안에 관한 것을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모든 것, 그 사람이 속한 단체 등을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그렇게 들었다', '그가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그가 보았다', '그렇게 적힌 것을 보았다는 그 사람의 말을 누가 들었다'? 내가 들은 것, 본 것은 어느 만큼 사실일까? 묻지도 않은 우리의 일상은 누군가가 만든 지식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 "정말일까?" 물어야 한다. 건강한 비판은 바로 묻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감 2019-06-12 18:31:58
휼륭한 보수적 입장에서의 설교입니다. 비난할 여지가 전혀없습니다. '동성애' 말만 나오면 부들부들 떠는 이들의 편협한 시각이 문제입니다. 그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