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 부활을 부활시키다 1
[곽건용] 부활을 부활시키다 1
  • 곽건용
  • 승인 2019.06.1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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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 목사의 설교 - 요한 20:24~29

불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

오늘 설교도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다음 주일까지 이어집니다. 한 번에 끝내려고 애썼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을 부활시키다’ 1편이고 2편은 다음 주일에 이어지겠습니다. 우리 겨레에게 가장 가까운 종교는 불교입니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가깝고 또 친숙한 종교도 불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저급한’ 종교 또는 ‘나쁜’ 종교로 잘못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 기독교 안에도 불교를 비롯한 우리 고유 사상이 적지 않게 들어와 있습니다. 다만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불교는 철학적 성격이 짙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어렵습니다. 따라서 불교 역사 초기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화할 필요가 제기되었고 그런 흐름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의 본질이 기복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의 기복종교적 성격은 대중화 과정의 한 측면인데 마치 그것이 불교의 전부인양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석가모니가 당시 최상층에 속한 분이었고 따라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분 아니었습니까. 불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그 종교가 갖고 있는 깊은 가르침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근본적인 가르침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화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 하는 얘기는 대개는 저 자신의 생각입니다. 제가 이 생각을 확인하려고 참고서를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학자들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겠지만 굳이 출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왜 설교에서 하느님의 말씀만 전하지,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할 분이 있다면 사도 바울도 서신에서 주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 생각임을 밝힌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을 얘기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그런 문제 제기를 할 분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불교는 고독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홀로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교에도 스승이 있지만 그 역할은 다른 종교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안거, 하안거 하는 말을 여러분도 들어봤을 겁니다. 겨울과 여름에 밖에서 문을 걸어놓고 수행에 정진하는 것을 동안거와 하안거라고 부릅니다. 이것만 봐도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고독한 종교인 걸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경우는 어떨까요? 기독교는 불교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불교와는 달리 대중적인 종교로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을 포함해서 첫 제자들 중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시에 글을 읽고 쓰려면 극히 소수에게만 부여된 특권인 학교교육을 받았어야 하는데 가난한 수공업자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이 그런 특권을 누렸을 리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무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는 문맹률이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고 해서 무식하고 무지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을 거라고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기도 하고요.

예수의 가르침은 교육의 결과였다기보다는 ‘영감’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체득한 지식이요 지혜였다는 겁니다. 물론 하느님과의 친밀한 소통과 교제의 결과이기도 했고요.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그 소재는 예외 없이 민중의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비유 그 어디에도 철학적인 용어나 개념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깊은 사상과 철학이 도달하지 못했던 삶의 깊은 사상과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Palma il Giovane  (1544–1628), 바울의 회심
Palma il Giovane (1544–1628), 바울의 회심(1590!1595)

바울이라는 터닝 포인트

초기 기독교 역사에는 두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는 바울에 의해 이루어진 방향전환입니다. 바울은 유대 배경을 갖고 있는 동시에 그리스 교육은 받은 젊은 유대인 사상가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그의 유대교 신앙과 신학에 의거해서 첫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서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의 목표는 로마제국에 예수님의 복음은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선교’가 그의 삶과 신앙의 목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로마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선교의 대상이 그리스-로마인이었으므로 그의 이런 노력은 당연이 해야 할 노력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는 친숙하지만 로마인들에게는 낯선 개념과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인들이 예수의 복음 메시지와 만나는 지점을 확보해야 했던 겁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그런 지점을 확보하면서도 예수사건과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간직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사건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십자가는 형틀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 반역한 사람이나 노예를 처형할 때 쓰는 형틀이었던 이 십자가를 바울은 ‘옛 자아의 죽음’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부활을 ‘새로운 존재’(new being)로의 재탄생으로 해석한 것은 십자가에 대한 재해석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적 예수 복음의 그리스-로마세계에의 ‘토착화’였던 셈입니다.

 

도마복음서라는 터닝 포인트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도마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본문을 읽은 직접적인 이유는 다음 주일에 얘기하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도마의 이름이 붙어 있는 <도마복음서>가 가장 대표적인 영지주의 복음서이기 때문입니다. 도마복음서는 1945년 이집트 나일 강 상류의 ‘나그 하마디’란 곳에서 발견된 52종의 문서 중 하나로서 초대기독교에 대한 그 전까지의 이해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고 할 만큼 충격적인 문서입니다. 도마복음서는 모두 114개의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로 없고 전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서가 바로 도마복음서입니다. 이 복음서의 또 다른 특징은 거기에는 기적이나 예언의 성취, 종말과 부활과 재림, 그리고 고난, 십자가.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 대신 하느님은 각 개인의 내면에 빛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하느님을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되고 자유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믿음’보다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약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및 복음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내용을 전하는 이 문서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문서로 여길 수도 있지만(그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거기 담겨 있는 114개의 어록 중에 적어도 절반 정도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이 문서를 복음서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서가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을까요? 학자들은 이렇게 추측합니다. 기원후 4세기 초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에게 다양하게 공존하던 기독교 내의 종파들을 하나의 통일된 종교로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곧 기독교가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신앙고백, 하나의 성서, 하나의 종교가 되라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 어찌 됐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격렬한 교리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논쟁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했던 아타나시우스파가 인성을 강조했던 아리우스파를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파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스물일곱 권의 문서를 기독교의 정경으로 확정했고 자기들의 교리와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문서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어 문서들을 파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파기될 문서를 빼돌려 보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집트의 일군의 수도자들이 한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문서들을 몰래 빼내서 항아리에 담아 묻어뒀는데 그 문서들이 1945년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고 추측됩니다. 그게 바로 도마복음서가 포한된 <나그 하마디 문서>입니다.

 

오랫동안 묻혀 있는 복음서

지금 도마복음서 내용을 얘기할 여유는 없습니다. 몇 가지만 얘기하면, 이 문서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합니다. 이곳 미국에는 영지주의와 도마복음서 전문가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들의 저서들 중 여러 권을 읽어봤지만 그 얘기를 할 여유는 없고 다만 최근에 도마복음서에 대해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쓴 우리나라 학자들 중 몇 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겠습니다. 오강남 교수 같은 비교종교학자는 도마복음서가 영지주의처럼 하나의 특정한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보다는 어느 종교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심층적 차원, 곧 신비주의적 차원을 강조한다고 보는 게 옳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강연한 적이 있는 오 교수님이 강조하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가 여기에도 적용된다는 겁니다. 한편 도올 김용옥 교수는 선생은 도마복음서에 대해 3권짜리 두꺼운 책을 썼습니다. 사실 도올은 영지주의나 도마복음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학문분야에 대한 그분의 열정은 알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도마복음서에 대한 그분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는 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그분이 갖고 있는 기본전제는 도마복음서가 기독교 복음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은 서구의 주류전문가들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물론 그들 중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소수의 주장입니다. 도올에 따르면 도마복음서가 마태, 마가, 누가복음보다 더 본래적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글쎄요, 저는 그 어떤 문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문서도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일종의 ‘해석’일 뿐인데, 어떻게, 무슨 근거로 그게 원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도마복음서처럼 특정 사상(영지주의)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문서가 예수님 가르침의 원형이다? 이런 주장은 이 분야 학계의 정설과는 다를 뿐 아니라 저도 수긍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이처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 가지 터닝 포인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고, 또 그런 변화가 불가피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변화가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고 그 변화는 이후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변화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이 시작한 하느님나라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하나가 잊히거나 약화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하려고 바울과 도마복음서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얘기했던 겁니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가서 그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실마리가 되는 얘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들에 의해 묻힌 것이 있다!

첫째로 바울의 경우를 보면 그는 예수사건과 그분의 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유대공동체라는 범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그 사건을 유대공동체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사건으로,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메시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른바 ‘선교’를 하기로 한 겁니다. 그는 로마사회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로마제국의 판도에서 하느님나라 운동을 펼치기로 작정했으므로 유대적 색채가 짙은 예수님의 복음을 제국에서 통하는 언어와 개념으로 ‘번역’하고 ‘재해석’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우리가 갖고 있는 바울서신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서신들이 자기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논문’은 아니고 각각의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사상이지만 거기에는 복음을 유대사회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메시지로 만들려는 그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본래 예수사건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던 중요한 요소 하나가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뭔지는 다음 주일에 얘기하겠습니다.

도마복음서로 대표되는 영지주의 기독교에도 같은 요소가 빠졌습니다. 요즘 들어 한국기독교에 미약하나마 도마복음서를 강조하는 흐름이 존재합니다. 서구 신약학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한국기독교에는 최근 들어 이런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신약학자들은 꾸준히 이에 관한 글을 써왔지만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책을 쓰는 바람에 그리 된 듯합니다. 저는 도마복음서가 공관복음에 앞서는 기독교 복음의 원형이라는 도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기적으로 봐도 그런 주장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도마복음서는 공관복음보다 후대에 초대기독교 안에 존재하던 어떤 특정한 무리 또는 흐름을 반영하는 문서로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도마복음서에 대한 영지주의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고 보지만 그 덕분에 이 문서가 다른 종교에도 존재하는 종교의 심층적 차원, 신비주의적 차원을 간직하고 있다는 오강남 교수의 주장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도마복음서는 예수운동이 중요하게 여겼던 한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는 버릴 수 없습니다. 그 측면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부수적인 측면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측면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고 도마복음서도 그렇고, 이 측면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다음 주일에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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