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갈
내 이름은 미갈
  • 박근한
  • 승인 2019.05.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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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도레
다윗을 탈출시키는 미갈Gustave Doré(1865)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의 둘째딸이며 두번째 왕 다윗의 첫번째 부인. 하지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마도 내 남편의 눈이 무서워서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내 남편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람의 딸이고, 내 뜻은 아니었지만 살아있는 남편을 두고 재혼한 여인이며, 야훼의 궤 앞에서 기뻐 춤춘 남편을 모욕한 현명치 못한 여인일 뿐일테니까.

잘 참고 있었는데 남편에 대한 원망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하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살렸는데!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당신은 도망쳐 다니느라 몰랐겠지만, 내가 목숨 걸고 당신을 탈출시킨 뒤에 내가 얼마나 치욕을 겪었는데! 내가 당신 탈출 시키고 아빠 눈 밖에 나 팔려가듯이 강제로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었다는 건 당신이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런 내가 정숙하지 않아 보여? 그런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자결이라도 했어야 했을까?

그런 당신은 뻔히 살아 있는 아내를 두고 결혼을 해? 그것도 두 명이나? 아빠한테 그 죽을 고생하면서 도망다니면서도 결혼할 정신은 있디? 내가 발디엘한테 시집갈 때 왜 나 데리러 오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당신이 나 구하러 오는 상상을 얼마나 했는데?

그럴 거면 나 그냥 조용히 살게 내버려두지, 왜 다시 불러들여? 이제 겨우 당신에 대한 원망을 접고 조용히 발디엘하고 정 붙이고 살고 있는데 왜 이제서야 나를 다시 데리고 와 그 착한 사람이 엉엉 울면서 나를 뒤따라오게 만들어?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제 겨우 당신 잊고 착한 사람 믿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래, 내가 필요했겠지. 사무엘한테 기름부음 받았다는 걸로는 부족했겠지. 결국 당신이 필요한 건 사울왕의 사위라는 이름이었을테니까. 그럴려면 내가 당신 곁에 있었어야겠지. 그래도, 그거 알아? 저렇게 울면서 나를 쫓아온 못난 남편 발디엘이 안쓰러워 나도 많이 울었지만 다윗 당신이 나를 잊지 않고 다시 불러들여 고맙기도 했고 조금은 행복했어. 당신이 왜 나를 필요로 했는지 알면서도 말이야.

그러고 보면 우리 서로 참 사랑했었는데. 비록 내 결혼선물이 피칠갑된 블레셋 병사 200명의 목숨이었지만 난 그래도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 당신이 전쟁 영웅이 아니었더라면 내 아빠가 당신을 그리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까?

당신, 이제 나를 찾지 않을거라는 거 알아. 우리 사이에 아이도 없겠지.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엇갈리는 운명이었을꺼야. 그래도 당신이 한번만이라도 나한테 고맙다라고 해줬더라면, 미안하다고 해줬더라면. 다른 사람하고 결혼한 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아니 그냥 나를 옛날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한번만이라도 봐줬더라면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대했었을까.

나중에 사람들은 나를 못된 여자로만 보겠지. 하지만 나는 사울 왕의 둘째 딸.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을 내 지략으로 구출시킨 담대한 여인. 비록 험한 시절에 태어나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떠돌았지만 내 고귀함마저 뺏을 수 없었던, 내 이름은 미갈(Michal).

(이 글은 사무엘상 14장 - 사무엘하 6장의 이야기에 약간의 상상을 더하여 각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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