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을 과소비하기보다 칼뱅을 만나도록 돕는 책
칼빈을 과소비하기보다 칼뱅을 만나도록 돕는 책
  • 김동문
  • 승인 2019.05.07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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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고든, 칼뱅, IVP, 2018년
브루스 고든, 칼뱅, IVP, 2018년

칼빈은 ‘칼빈주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종종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칼빈의 삶과 말 그 자체가 칼빈을 강조하는 이들이 말하는 그의 삶과 그 흔적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과연, 칼빈은 그런 말을 했을까?“, ”칼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할 내용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른바 팩트 체크할 칼빈을 둘러싼 담론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 다수가 칼빈의 삶, 글, 말을 직접 마주하기 보다 2차 자료 3차 자료.. 4차 자료 등 간접적인 자료를 그것도 그 내용이 아니라 특정 용어를 과잉소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했다.

나의 관심사인 이슬람에 대한 칼빈은 이슬람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칼빈의 대표 저작으로 지목되는 기독교강요의 방대한 분량에 무슬림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5번 정도 나온다. 칼빈의 소책자와 668통의 서신 등에 10번 정도 언급되고 있다. 2천 편이 넘는 칼뱅의 설교 가운데, 200편의 구약성경 신명기 설교문의 220만개 이상의 단어 중 이 연관어는 50번 정도, 159편의 욥기 설교 중 여섯 번의 설교에서 이슬람에 관련한 8개의 관련어가 나올 뿐이다. 방대한 분량의 그의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서 가운데 신약 주석에서 9번, 구약 주석에서 16번 정도 나타날 뿐인데도, 칼빈은 이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칼빈의 이런 정도의 이슬람 또는 무슬림에 대한 언급을 두고 칼빈은 이슬람(또는 무슬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였다고 주장하기에는 그 근거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으로 ‘칼빈’을 과잉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다. 보수 장로교 배경을 가진 교인과 목회자일수록 칼빈, 깔뱅, 칼뱅, 칼빈주의, 칼빈주의자를 많이 접하고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칼빈주의 정신이니, 칼빈주의 신학이니 하는 표현도 이들에게 넘쳐난다. 이런 가운데 칼빈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가볍게 취급하거나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빠른 이들도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칼빈을 미화하거나 절대화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칼빈 가라사대 하는 식으로,, 칼빈은 언제나 옳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런 경향의 기독교인이 내게 익숙한 이유는 내 자신이 자라오고 소속한 공동체나 이웃이 보수적인 장로교 배경인 것도 한 몫한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 ‘칼빈주의’를 강조하되 칼빈의 생에나 사상에 대해 직접적인 연구나 검토를 하지 않은 이들이 다수였다. 칼빈주의를 연구한다는 학자나 학회, 연구소에서도 칼빈의 1차 자료를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칼빈주의 용어 사용의 과잉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 번역서가 나왔다. 나는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칼빈을 “산성화하는 경향”을 가진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으로 느낀다. 역자인 이재근 목사가 언급하듯이, ‘마치 칼뱅이 성육신한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비밀의 지식을 직접 전수받은 사도인 양, 칼뱅을 모든 성인과 성자를 능가하는 무오하고 유일한 절대 성자로 칭송하는 경향“을 가진 이들에게 다시 생각할 꺼리를 안겨주는 듯하다. 이 책의 두 번째 말동무는, 칼빈을 “절대 복종과 순종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강요한 신학적 신앙적 독재자이자 교조주의의 주창자로 혐오하는 이”들이 이 책의 말동무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칼빈주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를 살았던 한 인물 칼빈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마주한 세계가 무엇이었는지 차분하게 마주하도록 돕는다.

이 책은 ‘칼빈주의’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를 살았던 한 인물 칼빈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마주한 세계가 무엇이었는지 차분하게 마주하도록 돕는다. 칼빈의 의지와 의도에 관계없이 그를 “성인 취급하는 일”과 “적대적인 저슬가들의 비방” 가득한 지금, 그를 다시 봐야한다. 이 책은 칼빈에 대해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독자의 이런 필요를 돕고 있다. 그때 그 칼빈이 마주하지 못한 현실을 사는 나는 어떻게 그로부터 배우고 나의 길을 갈 것인지를 묻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길동무가 될 것 같다.

잘 읽히는 번역은 덤이다. 덕분에 칼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허는 이들도 그를 잘 읽도록 돕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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