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장일]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 장일
  • 승인 2019.05.06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일 목사의 야고보서 강해 설교 4 - 야고보서 1:9~11
2018년 10월 14일 파리 공연중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서 론

야고보서 강해 네 번째 시간입니다. 요즘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수가 있습니다. 한국 가수인데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방탄소년단 영어 이름으로는 BTS 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대중가요의 계보를 조용필, 서태지, 그리고 현재는 방탄소년단이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오늘 저녁에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큰 행사가 열립니다.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성공을 위한 콘서트입니다. 이 행사를 위해 전 세계 65개국에서 1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광주를 찾았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왔을까요? 오늘 콘서트에 방탄소년단이 출연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명의 청년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은 연일 한국 대중가요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앨범도 빌보드 차트 곧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벌써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한국가수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 미국을 점령한 것입니다.

5월부터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를 돌며 콘서트를 갖습니다. 영국의 한 경기장은 9만 명이 들어가는 규모인데 무려 90분 만에 티켓이 모두 매진됐습니다. 참고로 이 경기장을 매진시킨 가수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같은 전 세계에서 이름만대면 알아주는 가수들입니다. 한마디로 방탄소년단은 이제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가수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문화 국가대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이러한 업적으로 최연소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제 방탄소년단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교포들까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여기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자랑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들을 자랑합니다. 비단 나 뿐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이나 일들까지 자랑합니다.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이 대한민국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편지를 받는 교회는 어땠을까요? 흩어진 교회 안에도 이 자랑 때문에 여러 갈등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이 자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또한 “우리의 자랑과 세상의 자랑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의 참 자랑을 발견하고 이 자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높아짐을 자랑하라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첫 번째는 ‘높아짐을 자랑하라’입니다.

9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야고보서의 수신자인 흩어진 교회는 여러 시험에 당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시험이 뭐였습니까? ‘가난과 부의 문제’였습니다. 가난에서 오는 역경과 부와 번영에서 오는 유혹이 가장 치명적이었습니다. 앞서 8절에서도 두 마음으로 나뉘게 하는 요인이 바로 이 문제 때문임을 살펴봤습니다.

흩어진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로마제국의 변방에 살았습니다. 땅을 갖고 있는 일부 지주나 사업가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가 소작농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삶은 비천함 그 자체였습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이 턱없이 낮았기에 그들은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 삶에는 이 자랑처럼 예민한 문제가 또 없습니다. 핸드폰을 열어보면 온갖 자랑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저는 주로 페이스북을 아내는 인스타그램을 사용합니다. 원래 SNS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SNS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요. 나는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대기업 명찰을 달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친구의 사진봤어요. 기분이 어떨까요? 짜증나죠. 나는 휴가도 제대로 못 가는데 해외 고급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는 지인을 봤어요. 기분이 어때요? 자존감이 확 떨어집니다.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죠.

우리집은 비만 오면 물이 새는데 친구는 CF에 나오는 레미안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기분이 어때요? 극도로 우울해집니다. 뭔가 나만 실패한 인생을 산 것 같고 그 순간 분노의 화살이 누구에게 향합니까? 죄 없이 자고 있는 배우자에게 향합니다. 뭐 이러한 사례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어떨까요? 저희 어머니가 몇 달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오셨습니다. 어머니 세대인 60대 이상인 분들은 가장 큰 자랑이 뭘까요? 바로 자식 자랑입니다. 자기 자녀가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말 그대로 입에 침이 튑니다. 심지어는 묻지도 않은 사위 연봉까지 자랑을 해댑니다. 이렇게 우리는 온갖 자랑으로 도배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야고보는 비천함에 놓인 성도들에게 자랑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 참 황당하지 않습니까? 대체 그들에게 자랑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들은 변방에 살고 있고 스펙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한 자랑은 이 세상의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높아짐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예수 안에서 높아진 우리의 신분’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왜 세상의 자랑 앞에 무기력합니까? 왜 계속 두 마음을 품습니까? 우리가 어떠한 신분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비유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 유명한 비유가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한 사람이 밭을 갈고 있는데 쟁기에 뭐가 걸립니다. 확인해보니 맙소사 보물들이 묻혀있는 노다지 땅입니다. 이제 남은 일이 무엇입니까?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정말 이러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도 우리의 신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라는 사실을 못 박습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높아진 신분을 너무도 영광스럽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목사님 저는 자랑할 게 없는데요. 저는 가방끈도 짧고 직장은 변변치 못하며 자식들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와요” 죄송하지만 그걸 자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야고보는 비록 우리의 인생이 비천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높아진 우리의 신분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천한 삶을 사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죄도 아닙니다. 오히려 비천한 삶보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 비참한 삶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논쟁이 나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이들이 누구입니까? 당시에 최고로 자랑할거리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선고입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알다시피 세리와 창녀는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비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종교 지도자들이 나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높고 낮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자랑이 많은 삶보다 그렇지 않은 삶이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또한 그 통치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자랑을 동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밭에 감추인 보화보다 더 큰 가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신 예수만을 자랑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낮아짐을 자랑하라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두 번째는 ‘낮아짐을 자랑하라’입니다. 10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 골몰하는 동안에 시들어 버립니다.

앞서 야고보는 교회 안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이제 권면이 대상이 누구로 바뀝니까? 교회 안에 있는 부유한 성도들입니다. 동일하게 야고보는 부유한 성도들에게도 자랑을 주문합니다. 무엇을 자랑하라고요?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바로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낮아짐을 자랑해야 할 이유가 나옵니다. 부자의 운명이 무엇과 같습니까? 풀의 꽃과 같습니다. 올 봄에 핀 벚꽃도 얼마나 예뻤습니까?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모두 사라졌습니다. 부자의 운명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적은 수이지만 흩어진 교회 안에는 부유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백화점 명품매장에 한 사람은 츄리닝을 한 사람은 정장을 입고 갔습니다. 당연히 누가 대우를 받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부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른바 VIP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부유한 성도들에게 낮아짐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 가서 경비원이 갑질하는 거 보셨나요? 주로 누가 갑질을 합니까? 부자들이 갑질을 합니다. 그 심리가 뭔지 아세요? 남보다 돈이 많으니까 내가 사장이니까 내가 회장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설령 자신이 재벌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따라야 합니다. 부자들이 자랑해야 할 낮아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 가치와 일치시키는 겸손! 바로 이 겸손이 낮아짐의 본질입니다.

작년에 국세청이 연간 탈세 금액 2억원 이상인 조세 포탈범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명단 안에는 어느 장로님 한 분도 포함됐습니다. 이 장로님은 국가조찬기도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매우 신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모 기업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주일은 쉽니다’라는 광고로 매우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러나 이 장로님은 법원으로부터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증여세 등 25억 7백만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징역 4년 벌금 30억을 선고받았습니다. 알다시피 납세의 의무는 모든 국민이라면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보여준 신앙의 민낯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아닌 세상의 가치를 따른 모습이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 앞에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권사님이십니다. 또한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갤러리의 대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공부했던 에스라성경대학원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이분은 1970년대에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있는 동산 일부를 구입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은퇴 이후에 거처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말씀사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저희 학교의 초대 총장님이시죠.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을 양성하는 일을 놓고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때가 되어 학교 설립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됩니다. 이때 이 권사님의 헌신으로 1020평 규모의 땅에 저희 대학원 설립이 된 것입니다. 올해로 개교 22주년을 맞는데 변함없이 말씀의 종들을 세우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낮아짐을 자랑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있는 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부를 좇다가 결국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인생의 종말을 깨닫는 것입니다.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착각하기 쉽습니다. 돈이 주는 안정감 소유가 주는 편안함이 영원할 것 같은 거죠. 그러나 나에게 있는 돈 내가 가진 소유는 잠깐입니다. 야고보도 말하지 않습니까? 풀의 꽃처럼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린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뭘 의지해야 합니까? 무엇만을 자랑해야 합니까?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미 시작된 그리고 완전하게 임할 하나님 나라.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야고보서 강해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무엇을 자랑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흩어진 교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가난한 성도들이었습니다. 또한 소수의 부유한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도 아니요 부도 아니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자격 없는 우리를 높이신 그리스도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유함을 얻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부유함은 없어질 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유함은 영원합니다. 그렇기에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 우리는 온갖 자랑으로 도배된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같은 허탄한 자랑 앞에 결코 기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참 된 자랑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가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품격을 자랑하는 팔로우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