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가 꿈꾸었던 ‘난장판’ 같은 천국을 떠올린다
아렌트가 꿈꾸었던 ‘난장판’ 같은 천국을 떠올린다
  • 정한욱
  • 승인 2019.05.03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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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더숲
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더숲
켄 크림슈타인,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더숲

이 책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한때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나치의 박해를 떠나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후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과 같은 책으로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삶과 사상을 ‘세 번의 탈출’이라는 모티프로 풀어 낸 그래픽 노블(=만화책)이다. 위에 언급한 아렌트의 대표작과 한 권의 전기를 포함해 그와 관련된 책 몇 권을 접했지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던 아렌트의 생생한 숨결과 극적이었던 삶의 자취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이 책이 독보적이었다. “시의적절한 전쟁 모험담이자 성장소설이며, 철학 그래픽노블, 정치적 전기, 진리를 향한 러브레터”라는 작가 마이클 티세랑의 평가가 이 우아한 그래픽 노블의 정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06년 독일의 하노버에서 독일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칸트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렌트는 14살에 칸트의 저서를 모두 섭렵하고 그리스어로 비극을 공연하는 연극단을 결성할 정도로 조숙한 천재였으며, 마르부르그 대학에서 교수였던 하이데거를 만나 그와 연인관계가 된다. 그러나 갑자기 그에게 버림받은 후 베를린으로 첫 번째 탈출을 감행해 베를린 명문가의 장님인 슈테른과 결혼했으며 ‘로마니셰스 카페’를 중심으로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을 가진 수많은 사상가 및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간다. 

그 후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는 와중에 사망한 아버지의 시온주의자 친구의 부탁으로 도서관에서 반유대적인 기사와 선전물을 수집하다 나치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후 체코를 거쳐 파리로 향하는 두 번째 탈출을 결행한다. 파리에서 그는 슈테른과 이혼한 후 그의 평생의 반려가 될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고(연인), 발터 벤야민을 포함한 여러 망명자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사상을 벼려 나갔으며(사상가), 유대인 아이들을 유럽 밖으로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단체의 활동가로 활약했다(활동가). 그러던 중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적성국 국민으로 프랑스의 귀르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혼란을 틈타 극적으로 탈출하여 마르세이유와 리스본을 통해 미국으로의 세 번째 탈출에 성공한다.

미국에서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 자리를 잡고 반셈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그녀는 고국에서 들려오는 유대인 학살의 소식에 충격을 받고, “거짓에 맞춰 현실을 조작함으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조건을 빼앗는 새로운 힘”인 ‘전체주의’를 깊이 연구하여 ‘나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비판한’ 문제작 『전체주의의 기원』을 내놓음으로서 일약 전후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 후 독일을 방문하여 하이데거와 재회하지만 연인관계를 지속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존재 자체’와 ‘죽음’에 천착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반대하여 ‘복수성’과 ‘탄생성’을 강조하는 정치이론가로 자신을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후 펴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아이히만은 악의 화신이거나 괴물이 아니며 그의 죄란 자신의 행위가 야기할 결과에 대해 철저하게 사유하는 대신 순종의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격렬한 논쟁과 유대 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그는 1975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악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인과 아랍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과 그들이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강력해 옹호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마지막 몇 문장이야말로 책 전체의 결론으로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세상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유일한 진리나 이해를 위한 묘책 같은 건 없다. 영광스럽고 끝나지 않는 난장판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끝없는 난장판 말이다 ..... 복수성과 탄생성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비록 소풍 같지는 않겠지만, 아우슈비츠나 굴라크, 스톤월 항쟁, 폴 포트, 아티카, IS를 막으려면 인류라는 하나의 종으로서 그것을 포용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혹시 당신이 보수적 그리스도인이라면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들 대부분이 꿈꾸는 ‘획일적 천국’이 아렌트의 ‘끝없는 난장판’ 보다 더 나은 세상일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나는 혹시 보수적 그리스도들인이 꿈꾸는 ‘천국’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거기야말로 바로 '전체주의'가 구현된 지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천국의 모습은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요란하고 유쾌한 차이들로 가득 찬 세상”일 것이며, 그곳은 아마도 '당신들의 천국'보다 아렌트가 꿈꾸었던 ‘난장판’과 훨씬 닮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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