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의 한국 기독교사 각론
‘세계기독교’의 한국 기독교사 각론
  • 정한욱
  • 승인 2019.04.3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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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득,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새물결플러스
옥성득,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새물결플러스

현재 UCLA에서 한국 근대사와 한국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는 기독교 역사가 옥성득 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교회 안에 편만해 있는 역사적 적당주의에 도전하고 초기 교회사를 읽는 바른 방법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 “교계에 널리 알려진 초기 한국 개신교의 역사적 사실 가운데 잘못 전해진 오류를 검증하고 근거 없는 신화와 치우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여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은혜스럽기만 하다면 역사적 오류라도 검증 없이 옮기고 당파적 이익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역사적 적당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세대가 생산한 원자료로 돌아가 느리더라도 과정을 중시하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회개의 여정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저자는 5부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인 ‘사관’에서 초기 한국교회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표적인 사관인 백낙준과 민경배의 해석을 살피며, 2부인 ‘선교사’에서는 내한 선교사들의 신학 및 사역과 관련된 논쟁을, 3부인‘ 교회’에서는 초기 한국교회의 설립과정과 조직, 일치 및 전도 운동을 소개한다. 그리고 4부인 ‘예배’에서는 초기 한국교회의 여러 예배유형의 유래와 정착 과정을, 5부인‘ 논쟁’에서는 초기 한국 개신교 내에서 발생한 신학적 문화적 논쟁점들을 토론한다. 교회사가로서의 칼날 같은 지성과 한국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고언으로 가득한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후 개인적인 단상을 덧붙이기로 한다. 

 

1부 - 사관

백낙준의 『한국 개신교 선교사』는 그의 스승이었던 케네스 라투레트의 세계 선교 확장사 시리즈의 일부로 “기독교는 그 본질에서 선교史”라는 선교사관을 견지했다. “정체성과 선교력을 가진 사회 변혁 공동체” 라는 1930년대 2세대 한국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세대 역사를 정리했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느라 학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가지 못함으로서 한국교회사는 한 세대 이상의 공백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반해 민경배는 근본주의와 문화 제국주의에 경도된 초기 선교사들이 이 땅에 말씀은 있으나 성찬이 결여된 서구적인 교파형 교회 형태를 이식했고, 이는 점차 재래종교와 결합되어 현실도피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 형태를 양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기 한국 교회는 교회론이 분명하고 현실 참여적이며 토착적인 민족교회였다.

 

2부 - 선교사 

논란이 있었던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처음에 무모한 선교로 비판받다가 1910년경부터 순교로 찬양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로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해석이 더해지면서 찬양과 비판이 교차하고 있다. ‘첫 선교사’의 정의는 첫 방문이나 임명일이 아닌 첫 주재/정착 및 임명지 도착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이에 따르면 첫 개신교 방문 선교사는 귀츨라프(1832), 첫 한국 개신교 선교사로 임명된 자는 헤론(1884년 4월), 첫 한국 내한 선교사는 알렌(1884년 9월), 첫 내한 목회 선교사는 언더우드(1885년 4월), 감리회의 첫 선교사는 스크랜턴(1885년 5월)이 된다. 이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에 의해, 신학이 아닌 의술에 의해, 기독교 복음보다 기독교 문명에 의해 한국 개신교 선교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 파송 때 아펜절러가 받은 편지와 선교사들의 한국어 공부 과정, 그리고 랜디스나 헐버트가 펴낸 한국 속담 해설집을 살펴보면 초기 선교사들의 치열한 소명과 삶, 그리고 선교지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제물포에 막 도착한 젊은이였던 아펜젤러가 드린 승리주의적 · 제국주의적인 기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되뇌이며 ‘정지된 시간’을 살고 있는 한국교회는 반성해야 하며, 토마스 목사의 죽음이나 언더우드의 기도, 루비 캔드릭의 행적, 마페트의 턱 상처와 같이 초창기 선교사들의 삶과 행적 중 잘못 알려졌거나 미화된 부분은 객관적 사료에 입각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3부 - 교회

교회의 설립일은 신앙 공동체의 출발이 아닌 교회가 조직된 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나, 선교 초기에 설립된 교회들이 발간한 자체 역사서를 검토해 보면 ‘최초’를 차지하기 위해 사료를 무리하게 해석한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소래교회와 장대현 교회의 건축은 대부분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뤄졌고, 기독교가 본토 토양에 뿌리를 내린 성공적인 토착화의 증거로 여겨졌다. 1900년 친러 보수파에 의해 꾸며진 기독교인 말살 음모(한국판 부림절 사건)가 한 장의 라틴어 전보로 발각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초대 한국교회에서는 고전어 공부나 기도 콘서트와 같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났다. 초기에 목사가 부족했던 한국교회는 대부분 평신도가 설교와 치리를 담당하는 자급 · 자전 · 자치의 교회로 존재했고, 사경회를 통해 전 교인을 전도인화하고 자치역량을 키워나갔으며, 장로교회의 대의 민주주의와 회중교회의 직접 민주주의라는 두 날개로 성장해 나갔다. 하나의 예수교회를 세우기 위한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운동에서 알 수 있듯, 1910년 이전에 내한한 미국 선교사들은 분리적 교파주의자나 전투적 근본주의자가 아닌 교회연합 정신의 소유자였다. 초기 개신교는 민족의 문제에 참여적이었고 봉건적 가치를 부정했으며(기독교 민족주의), 근대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명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기독교 문명 보급), 전통 종교들에서 접촉점을 찾아 기독교화하는 현지화(기독교의 토착화)를 이룸으로서 부흥을 경험하며 신흥종교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4부 - 예배

초기 선교사들의 설날 장감 연합예배에서 힌트를 얻은 초대 한국교회의 송구영신예배는 구정 전날에 열렸으며, 이때 제웅을 버리는 풍속을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죄를 회개하는 1-2주간의 사경회를 열었다. 새벽기도회는 무교(여성의 새벽 치성)이나 불교(승려들의 새벽 예불)가 아닌 선도(仙道) 수련에서 유래했고, 세속 도성의 새벽 파루와 함께 시작되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기도였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초월성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역사성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수요기도회는 18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하던 공적 모임에서 시작되었고, 새벽기도회는 사경회 때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에서 시작되었으며, 초창기의 부활 예배는 복음서 내용을 알리고 신자와 부활과 사후 영생을 강조하는 변증론이 주를 이루었다. 이같이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유불선무(儒彿禪巫)의 의례를 통해 오랫동안 종교생활을 해온 한국의 전통을 따라 토착화된 기독교식 의례와 예배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나, 교회론과 예전론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문화에 적응하므로 현 시대와 문화에 적절한 교회 형태, 교회 정치, 교회 예배 등을 만들어가야 한다.

 

5부 - 논쟁

‘하나님’이라는 신명은 단군 민족주의를 촉매로 하여 하늘의 초월성과 위대성이라는 토착성과, 유일성이라는 개신교의 정체성과, 민족운동이라는 역사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한국 기독교 특유의 용어다. 귀신을 쫓는 전도부인들의 출현은 선교사들의 세계관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개신교의 전도의 성공에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었다. 내한 초기의 선교사들과 외국인 여행자들의 한국관은 문명화된 서구와 미개한 동양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이분법과 ‘백인의 짐’과 ‘명백한 운명’을 강조하는 제국주의적 시각에 의해 지배되었으나, 10년 이상 장기 거주한 선교사들은 점차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면서 한국학의 선구자가 되거나 기독교의 한국화(토착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선교 초기에 타종교와의 관계에 있어 ‘우월론’의 입장을 견지했던 한국 기독교는 18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유교와의 관계에 있어 ‘공존론’이나 ‘성취론’과 같은 온건한 복음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했으나, 1970년 이후 사회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근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국교회는 약 20여 년간의 교파별 찬송가의 정착기를 거쳐 1908년 이후로는 연합 찬송가를 사용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고 있다.

 

개인적 단상

1. 이 책에서 ‘내용’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방법’이다. 저자는 ‘은혜’와 ‘교파적 이익’을 위해 역사적 오류를 검증 없이 옮기거나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역사적 적당주의’가 한국교회 안에 만연해 있다고 개탄하면서, 1차 사료에 대한 엄밀하면서도 세심한 해석에 근거해 한국교회사에서 잘 알려진 몇몇 이야기들의 ‘사실’을 둘러싸고 있는 ‘신화와 거짓과 과장된 해석’이라는 두꺼운 외피를 과감하게 벗겨 내며, 한국교회사의 ‘정설’로 확립되어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결론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역사가가 ‘사료에 대한 엄밀한 고증과 세심한 해석’이라는 자신의 무기로 어떻게 ‘사실’이라는 퍼즐을 하나 하나 맞추어 가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비록 고통스럽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과정과 원칙을 고수하고, 그 결과 드러난 ‘불편한 진실’의 편에 기꺼이 서고자 하는 저자의 태도야말로 결과주의와 적당주의에 물들어 진실을 외면하다 위기에 빠진 오늘의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주목하고 배워야 할 정신이다.

2. 저자는 초대 한국교회가 흔히 알려져 있듯 선교사들의 근본주의 신앙을 무비판적이고 피동적으로 받아들인 서구교회의 복사판이 아니라,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현실 참여적 교회이자 서구 기독교의 정신을 한국의 전통 안에서 창조적으로 구현해 낸 토착화된 교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문화의 벽을 넘었을 뿐 아니라 새로이 만나는 문화에 맞춰 끊임없이 ‘재번역’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회심’이란 자신들의 문화나 전통을 버리고 선교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종과 달리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문화와 사상이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만드는 '방향전환'에 가깝다”는 ‘세계기독교’의 비조 앤드류 월스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낙준 교수의 저술이 라투레트의 ‘세계선교 확장사’ 시리즈의 일부였다면, 저자의 연구는 ‘세계기독교’의 한국 기독교사 각론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모든 시대는 나름의 신학과 문화적 표현을 가진 기독교를 가져야 하며, 그것은 정통으로 규정되는 특정한 기독교의 방식에서의 일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재번역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앤드류 월스의 통찰에 발맞춰 우리 시대 이 땅에 현현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새로이 발견하고 '세계기독교'에 공헌할 우리의 기독교 신학과 문화적 표현을 만들어 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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