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여성 당사자 한 사람만의 문제?
낙태, 여성 당사자 한 사람만의 문제?
  • 이택환
  • 승인 2019.08.2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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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임신중절과 낙태

낙태는 “절대 안 된다(죄!)/ 할 수도 있다(무죄!)”, 우리가 제 3자 관전평 하듯이 한가하게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목사의 예를 들자면, 선교사 나간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고는 담임목사 청빙 받아 가는 사람도 있고, 개척교회는 죽어도 안 한다더니 결국 교회 개척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순교가 그렇다는 말이 있다. 정작 순교 할 것 같은 목사는 순교하지 않고, 순교할 것 같지 않던 목사가 순교한다고 하지 않던가? 낙태 또한 당사자나 당사자 가족이 되어 당해 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서구에서는 우리 사회와 달리 미혼모가 당당하게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특별히 뭐라 그러지도 않는다. 미혼모의 아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적지 않다. 또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는데 우리 사회와 같은 차별도 거의 없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도움을 주기는 커녕, 외부는 물론 가족 친지에게서조차 냉대와 멸시와 모욕만 당한다. 부모 형제도 낙태를 권할 것을 알기에 당사자가 가능한 한 조용히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한편 미혼모 낙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우리 사회의 기혼모 낙태다. 기혼모 임신이 미혼모 임신보다 월등히 많아서 낙태도 약 6:4로 더 많다. 이미 아이가 하나, 둘 있는 가정도 대부분 셋, 넷을 키울 형편이 안 된다. 건강한 아이를 출산해도 힘든데, 만약 임신 중 약물 복용이나, 노임으로 태아의 기형, 장애가 예상될 경우에는 어떨까?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대통령령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제한되어있다. 예상치 않은 임신/출산으로 직장을 잃어버리게 될 여성도 적지 않다. 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처럼 기혼모도 낙태라는 낭떠러지에 직면하는 우리 현실 속에 미혼모는 오죽하겠는가? 서구인들이 우리보다 생명을 유달리 사랑해서 낙태율이 낮은 게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경제적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미혼모라 해도 그들은 아이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기혼모라도 여러 사람들의 축복 가운데 아이를 낳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난 몇 십년간 우리는 거의 세계 최고의 낙태율을 가진 불명예스런 나라가 되었다.

목사가 낙태를 찬성한다는 거냐? 절대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여성 당사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낙태는 오롯이 여성 한 사람에게 십자가처럼 지워진 면이 있다. 제대로 된 성교육, 피임교육만 잘 했어도 이 정도는 안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최악의 교육여건,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막막한 현실, 임신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여성의 현실, 미혼모에 대한 눈초리(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등등 동시에 바뀌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 모든 게 차후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바꾸면서 함께 고려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다.

내가 아는 마포의 한 교회는 자녀를 출산하는 가정에 100만원을 지급한다(미혼모의 경우에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정도 베이스를 가지고, 교회가 낙태반대운동을 해야 일말의 설득력이나마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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