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 흔들기, 황제 환영 코스프레?
종려나무 흔들기, 황제 환영 코스프레?
  • 김동문
  • 승인 2019.04.1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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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한 주 다시 읽기(2) - 종려나무와 올리브 잎사귀를 흔들며 환영하다
Carle Vernet(1758~1836), Detail of The Triumph of Aemilius Paulus(1789)

기록된 성경, 특히 복음서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또는 벌어질 사건에 대해 공부하는 책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은 성경 공부의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대변인의 성명서나 전문가의 해설이 덧붙여지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저 현장에 다양한 역할로 자리했던 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동일한 사건(말과 행동 등)을 제각각 느끼고 반응하였을 것 같습니다. 특정 단어, 인물, 그림 언어가 다가오는 정도가 다릅니다. 요즘 이 단어를 보면서 다른 느낌과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극기? 까마귀? 부먹 찍먹?

복음서를 듣던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그 현장에 있던 이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고대 제국 지배하에 있던 땅에 살던 이들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열두 번도 더 방문했을 예수님께서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예루살렘에 입성 하셨습니다. 때는 유월절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백성들도 나귀를 탄 예수님을 향해 감람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호산나’를 연호 했습니다. 마치 로마 황제나 개선장군이 승리 행진을 하듯이! 이것은 전에 없던 풍경입니다.

Jean-Hippolyte Flandrin, Christ's Entry into Jerusalem(1842~1848)
Jean-Hippolyte Flandrin, Christ's Entry into Jerusalem(1842~1848)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한복음 12:12, 13) 

예수가 평소와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을 12번 이상을 방문했을 예수가 마지막 유월절 직전 찾은 예루살렘에서는 독특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의 생애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장면입니다. 이 입성식(?)은 도대체 누가 기획하고 연출한 것이었을까요? 백성들이 제각각 즉흥적으로 연출한 것일까요?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 당시 로마 황제(또는 개선장군, 총독 등)가 그가 정복한 도시에 입성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많이 닮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황제의 입성식 따라하기가 펼쳐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고대 로마제국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상징이었고, 감람나무 잎사귀는 평화의 여신 팍스Pax의 상징이었습니다. 황제(또는 정복자)는 전쟁에서 승리해 정복한 성에 입성할 때 감람나무 잎사귀로 만든 화관을 썼고, 황제를 환영하는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물론 종려나무 가지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권에서도 영원성을, 유대 문명에서는 축제를,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권에서 승리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던 그림 언어였습니다. 그리고 지리 정치적으로 유대땅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 지배하에 유대 지역 통치자가 발행한 주화에 종려나무가지가 등장합니다. 이때 로마 황제는 머리에 올리브나무 잎사귀로 만든 화관을 쓴 모습으로 자주 그려집니다. 더욱이 가이사 아구스도 디베료 황제의 은화 데나리온에는 올리브 면류관을 쓴 황제와 종려나무 잎사귀를 손에 쥔 신의 이미지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 살던 이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던, 그것을 나중에 듣게된, 읽게된 이들은 그 사건 묘사에 담겨있는 그림 언어를 통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 자리에서 백성이 외쳤던 소리는 어떠했나요? '구원하소서' 또는 '구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산나'는 로마 황제에게 칭해지던 세상의 구주라는 표현과 닮았습니다. '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또는 로마 황제를 수식하던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황제를 연호하는 듯한 분위기로 예수를 한껏 구원자로 연호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의 땅에서 황제를 지칭하던 동일한 또는 유사한 표현을 예수에게 퍼붓는 이 무리를 바라보는 로마 제국 관계자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요? 이 장면을 목격한 로마 당국과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권력자들이 느꼈을 긴장감과 분노가 다가옵니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유대인의 눈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모든 것이 완전한 왕 즉위식, 자기의 땅에 입성하는 그림 언어로 가득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타고, 새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새 예루살렘의 왕으로 오는 것입니다. 분노와 공포, 적개심을 갖고 있던 이들 또한 그 현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에 나름 정통했던 성전 제사장 권력의 눈에는 이런 풍경이 크게 불쾌감을 가질만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이 현장에 있던 예루살렘과 온 사방으로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해 몰려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잖이 흥분하고 설레었을 것입니다.

Pietro di Giovanni d'Ambrogio (1410–1449), Entry of Christ to Jerusalem Date between(1435~1440)
Pietro di Giovanni d'Ambrogio (1410–1449), Entry of Christ to Jerusalem Date between(1435~1440)

황제의 도시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즉위했음을 백성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읽을 여지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찾은 백성이 연출한 이런 풍자 가득한 행동은, 황제의 신성과 권위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식 현장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적 정치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하는 제자와 백성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예수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황제에게 도전하는 반역자로 몰아가는 자들, 그 사이에서 예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긴장감이 사라진 동화가 된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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