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설교' 그만하고, 위로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읍시다.
[김동환] '설교' 그만하고, 위로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읍시다.
  • 김동환
  • 승인 2019.04.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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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목사의 설교 - 욥 1:1~12
Job Rebuked by his Friends.
William Blake(1757~1827), Job Rebuked by his Friends(1793)

1. 욥기는 어떤 책?

‘설교’ 그만 하고, 위로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읍시다. 욥기가 하고 싶은 막을 현대인의 언어로 풀어보았습니다. 꼭 이렇게만 해석된다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는 욥기가 이렇게 읽힌답니다.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저희가 짠 교회 달력을 보고, 설마 미리 읽어오신 분이 있을까요? 없으리라 조심스러운 예상을 해봅니다.

시작 부분을 함께 읽었지요? 욥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도 열 명이나 있었고요, 부자였어요,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마리, 암나귀 500마리 등등, 당시에 최고 부자였을 것 같네요! 얼마나 믿음이 좋았는지, 아침마다 번제 제사를 드렸어요, ‘자녀들이 혹시라도 자기도 모르는 죄를 하나님께 드렸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레위기 설교할 때 기억나시죠? 제사는 자발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할 때 드리는 거라고요, 그런데 자기 죄도 아니고, 자녀가 죄를 짓기도 전에 그랬을까 봐 제사를 드린다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같아요.

그러고 나서, 카메라가 갑자기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천상에서 회의가 벌어져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잖아요? 그때 하나님의 아들을 천사라고 생각해서 쓰진 않지요? 구약의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어떤 영적 존재, 천사와 같은 존재로 묘사하기도 해요. 구약적 언어로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 신 그 자체를 뜻하는 언어는 아니라는 걸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신약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아무튼, 신기한 건 사탄도 그 회의에 참석해 있다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이 사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욥을 보았느냐, 욥처럼 온전하고 정직하며, 나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또 없다, 이렇게 칭찬을 하죠. 그러자 사탄이 말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욥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믿음으로 복된 가정과 부와 명예를 가졌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요,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과 이상한(?) 내기를 하게 되어요. 욥의 생명은 빼앗지 않는 선에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케 하도록 허락하시거든요. 욥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자녀를 모두 잃고,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신도 몹쓸 피부병에 걸리게 됩니다. 벼락같은 어둠에 잠기게 되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두꺼운 책 중에 하나인데요, 대부분의 내용은 욥과 친구들의 토론이에요. 욥과 가장 가까운 세 친구가 욥의 사정을 듣고는 찾아와서 함께 울며 위로를 해요. 그런데 그러 나서는 이제 난상토론이 시작되는 거예요. ‘믿음이 바르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텐데, 죄를 짓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무슨 죄를 지은 거냐, 빨리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러면 욥은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너네가 말하는 거른 이유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다’ 이런 항변을 하는데요, 이런 토론으로 쭉 이어지는 책이 욥기예요!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등장하셔서 모든 토론을 정리합니다. ‘됐고, 아는 척하지 말아라!' 이렇게 혼내시고는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은 욥에게 두배의 복을 주는 걸로 이야기는 마쳐요. 자녀도, 재산도 두배가 되어 동화처럼 끝난답니다.

제가 일부러 동화처럼 이란 말을 썼어요. 동화책 쓰는 건 저도 빨리 쓰고 싶은데, 학교 일 하면서 그림을 배우려니 시간이 좀 걸리네요. 올해 중 1권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동화책을 쓰는데, 동화가 무엇인가요? 사실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진실을 담고 싶어서 어떤 스토리와 그림을 담는 책이지요? 욥기도 그렇게 읽어야 해요. 제가 히브리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숭실대에서 김회권 교수님께 성문서를 배울 때 들은 건데요, 욥기가 시작과 끝 부분이 운문이래요. 중간중간에 또 운문 형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그래서 많은 구약 교수들은 욥기가 시대적으로 다른 시대의 저자들의 이야기가 합쳐진 것을 강조하는데요, 숭실대 교수님은 시대적 변화보다는 장르의 변화를 강조하세요, 조금 신학적인 이야기라 머리 아프죠?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않으면 욥기의 결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자녀 열 명이 처참하게 죽었는데, 다시 스무 명의 자녀들이 태어나서, 욥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이런다고 행복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의 시간은 멈추게 되어있는 걸요,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 같아요. 참고로, ‘생일’이란 영화가 세월호와 같은 재난사건 이후에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는데요, 한번 보시면 좋겠어요, 저도 조만간 보러 갈 예정이에요.

하지만 욥기는 이렇게 무언가 욥의 고난을 회복시켜서 갑자기 마무리해요, 다시 말하지만, 시작 부분과 끝 그러니까, 욥이 어떤 사람이고, 사탄과 하나님이 어떤 내기를 하고, 욥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는 시적인 글이라는 거예요. 이게 성문서의 장르라서 더욱 그래요. 성문서는 시편과 같은 장르를 말하거든요. 정리하자면, 욥기는, '어떤 고난을 겪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의 고난을 종교적으로 분석하려는 이들에게,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아라, 신앙으로, 죄의 문제로, 인과율로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이 있다. 말로 하나님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의 옆에 다가가 줘라’는 말을 하는 책이에요

 

2. 욥기를 이상하게 읽으면…

90%의 긴 토론은 또 뺴먹고, 맨 마지막에 욥의 자녀, 재산이 두배가 된 것만 보고, ‘아, 그렇지, 고난이 있어도 너무 하나님 원망하지 않고 참고 견디다 보면 꼭 두배로 복을 받을 거야! 참아보자!’ 이렇게 읽으면 욥기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반대로 해석하게 되는 거예요. 아니면, 욥기에 나오는 구절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서 읽는 거예요, 식당에 자주 붙어있는 성경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작은 좀 별 볼일 없어도, 나중엔 잘 될 거야! 친구에게 해서 나쁜 말은 아니죠, 좋은 말이에요, 그런데 욥기에 이 말이 나오는 문맥을 보면 좋은 메시지가 아니거든요, 제가 앞에 있는 몇 절을 더해서 읽어드릴게요, 욥기 8장 1절에서 7절입니다.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였다. 2 언제까지 네가 그런 투로 말을 계속할 테냐? 네 입에서 나오는 말 거센 바람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구나. 3 너는, 하나님이 심판을 잘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 전능하신 분께서 공의를 거짓으로 판단하신다고 생각하느냐? 4 네 자식들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 그들을 벌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5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전능하신 분께 자비를 구하면, 6 또 네가 정말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너를 살리시려고 떨치고 일어나셔서, 네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7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

아무 설명 없이 읽으면 어때요? 좋아 보이죠? 교회 목사님 설교 같아요, 교회 리더님이 하실 말 같죠? 욥기는 이런 분위기가 친구들의 조언으로 가득 차 있어요. 자기들만의 신앙의 논리로 친구를 분석하는 거예요. '너는 이래서 이런 거야, 하나님이 어떤 분인데,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고난을 주겠니?’ 우리는 이 치열한 토론 자체가 성경의 가장 두꺼운 한 권의 책이라는 걸 잊어버려요. 그런 건 됐고,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성경구절만 가지고 오는 거요, ‘집에 걸어둬야지,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이죠.

성경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은, 욥기의 욥이 실제적, 역사적 인물이라고 믿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욥기의 책 전체, 이 거대하고 치밀하고, 치사한 토론이 우리의 영혼을 찔리게 하는 그것. 자기만의 신앙의 논리, 종교의 논리에 빠져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 처한 친구를 위로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교적인 정죄만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그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게 정말 성경을 바르게 믿는 거죠.

그렇지 않고, 나중에 창대하게 될 거다는 말씀이나, 아니면 욥기의 맨 마지막에 재산이 두배가 되었다는 말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욥이 실제 인물이 아니고, 욥이 시적인 분위기의 글이라고 하면 믿음이 없다고, 신앙이 없다고 공격을 해요. 공부는 없고, 욕심만 남으면 대화가 안 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되거든요, 마치 욥의 세 친구처럼 말이죠. 욥기는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보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이상한 종교성을 보게 하는 날카로운 책이에요.

저 또한 욥기를 볼 때마다 찔립니다. 20대 때,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거든요. 욥의 세 친구들이 말이죠. 모든 걸 나만의 논리로 정리하려는 욕심이 있었어요. 종교적인 논리를 만들어서 모든 걸 거기에 담으려고 했었어요. 심지어 감기에 걸리는 것도 영적 전쟁으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감기에 걸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되겠어요? ‘아, 저 사람, 영적으로 문제가 있나 보다’, 자동적으로 이렇게 판단하게 돼요. 건강이 좋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지면, 취업이 안되면, 불행한 일이 생기면, ‘아, 저 사람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구나', 이렇게 판단하게 되는 거예요.

교만한 거죠. 세상만사의 비밀을 마치 다 알고 있는 냥,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 것인 거 마냥 멋대로 판단하게 되는 거예요.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고, 곁에 있어줄 생각보다는, 분석하고 정리하고, 판단하려는 교만이 앞서는 거예요. 욥기의 뒷부분은 이런 인간의 교만에 대해 하나님의 분노가 나와요.

Job and His Daughters(1800)
William Blake(1757~1827), Job and His Daughters(1800)

3. 사탄에 대해

제가 교회 사역을 몇 년 해오는 중에, 공동체 자체를 못 오게 막은 사람이 딱 두 명 있었어요. 한 명은 남녀 관계 문제에 좀 문제가 있던 친구고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정확히 말하면 제가 못 오게 한건 아니고, 스스로가 못 오게 되었지요. 좀 더 직접적으로 공동체를 나오지 못하도록 한 분이 한 명 있어요. 자꾸 다른 사람에게 사탄이 씌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서 해서 못 오게 했어요. 몇 번을 가르치고 설명해도 안 변하더라고요.

오늘 읽은 욥기에서 사탄은 어떤 존재로 등장하나요? 약간 검사 같은 역할을 하죠?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누가 무슨 문제가 있나를 검사하고, 하나님께 보고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탄을 미워하거나, 싸우려고 한다거나 그런 느낌이랑은 좀 다르죠. 신약에서는 사탄을 좀 악한 원수처럼 묘사하는 구절이 몇 개 있는데 구약은 좀 달라요. 사탄은 이스라엘 말로 그냥 막는 자라는 뜻이에요. 막는 사람. 좋은 일이 생길 걸 막으면 나쁜 존재고요, 나쁜 일이 생길 걸 막으면 좋은 존재이지요? 민수기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저주하러 가는 예언자가 나오는데, 그가 가지 못도록 막는 천사가 등장하거든요, 나귀가 갑자기 말을 하는, 발람에 관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죠? 그때 발람의 길을 막는 천사가 원어로 사탄이에요, 길을 막는 자, 그런 뜻이죠.

막는 자의 이미지는 구약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와요. 통일된 모습은 없고, 각 책의 장르에 따라, 주제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오지요. 그러다가 구약이 쓰이고 신약이 쓰이기까지의 몇백 년의 공백 기간에 천사와 악마, 영적 존재들의 계급, 사탄의 이야기가 민담으로 떠돌아요, 다른 종교들의 영향을 좀 받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신약시대에는 사탄이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로 이해되는 공감대가 있지요. 예수님이 귀신을 쫓는 장면이나,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표현들은 그런 신약시대의 사람들의 공감대, 눈높이에 맞는 활동과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탄, 귀신, 마귀에 대한 이야기는 중세시대에도 유행이었어요, 그러다가 유럽이 근대가 되기 전에 마녀사냥의 비극을 넘어가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지요. 세상적 언어로 말하면, ‘계몽’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외국 교회에서, 사탄, 귀신, 마귀가 실제 하는 것처럼 가르치면 종교재판처럼 조사를 받는 분위기인데, 한국에서는 거꾸로 사탄 없다, 귀신 없다 이렇게 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공격을 받는 분위기예요.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교수님들은 이런 분위기를 당황스러워하시더라고요, 물론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는 이런 마귀 이야기를 많이 할 거예요.

신앙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세계의 통치자라고 말하는 거예요. 기독교 신앙이 아닌 모든 종교와 신화에는 악신이 등장하는데, 성경은, 특히 구약은 그것을 뱀이라는 동물이라든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로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설명하는 도구로만 사용을 해요. 그런데 그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본문을 읽고는, 그래서 사탄이 있다. 실제로 검사다. 지금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꼐 무언가 보고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이상하게 성경을 읽게 되는 거죠.

그냥 살짝 믿는 건 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긴 해요. 그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 거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를 사탄이 쓰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단체가 사탄의 부하다 이렇게까가면 중증환자가 되는 거예요. 저는 잘못된 성경공부가 그런 환자를 생산해내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요.

 

4. ‘까닭 없이’의 불가능성

진짜 어려운 이야기는 사탄이 하나님께 한 이야기예요.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말이 너무 날카롭게 들리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사탄의 고발이 정말 맞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사람들의 모습, 현실을 보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바라는 게 있고, 그 바라는 열망이 강할 수 록 하나님을 더 열렬히 쫓게 되는 것 같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 저를 설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욥기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긴 있다, 혹은 그 사람이 당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 마요… 과연 누가 욥과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정말 대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사라는 사람이 어쩌면 그 열망이 가장 강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저 자신을 돌아봐요. 무슨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그것도 욕심은 아닌지, 무언가 하나님께 대가를 바라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시작했지만, 어느새 스멀스멀 무언가를 바라는 게 생기는 제 자신을 보게 되어요. 정말 모든 걸 잃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요.

욥기는 시험에 들게 하는 책이에요. 그래서 인기가 없죠. 저도 설교로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쩌면 교회가 성경을 정말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정말 많은 책들이 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왜 똑같은 책,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을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이야기들만 찾아서, 욥의 친구들이 했던,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엔 창대해질 거야, 이런 인기 있을 법한 메시지만 골라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 목사들은 무얼 바라고 설교를 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좀 어두워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 까닭 없이’의 불가능성을 깨뜨린 유일한 분을 믿는 게 우리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바로 예수님 말이에요. 사람 중에는 이유 없이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유 없이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와 닿지 않는 거죠. 저도 어느 정도는 그렇거든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조금씩 노력할 뿐이지요!

‘설교 그만하고, 위로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읍시다’

사람들에게 내가 위로가 필요하니까 나를 위로해라, 나를 도와라, 이것도 필요하긴 한데, 너무 습관처럼 하지는 마시고요, 위로 안 한다고, 도와주지 않는 다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교회 오는데 무언가 ‘까닭’이 있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부담을 주신다면, 아, 이런 사람을 도와야겠다, 누군가에게 내가 위로를 줘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가서, 너 이런 이런 거 회개하고 정신 차려야 해, 그러면 회복시켜주실 거야, 그러지 말고요,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해보시길 바라요.

수훈 형제가 올린 링크를 봤는데요, 속초에 산불피해가 엄청났잖아요? 작은 후원도 할 수 있더라고요, 오늘은 저희가 함께 의논해보고 그곳에 작은 후원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유일한 까닭 없는 사랑의 예수님을 본받아서 무언가 작은 위로의 실천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동환 목사는, 길섶교회를 섬기며, 평일에는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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