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론적인 신학체계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순환론적인 신학체계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 정한욱
  • 승인 2019.04.1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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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헬무트 틸리케 - 종교개혁적인 성령론적 신학, 살림, 2005년
김영한, 헬무트 틸리케 - 종교개혁적인 성령론적 신학, 살림, 2005년

헬무트 틸리케 - 종교개혁적인 성령론적 신학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 해직됨으로서 행동하는 신앙과 양심을 보여주었던 기독교 윤리학자이자 독일의 현대 신학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복음적이며 종교개혁 사상의 전통에 섰던" 교의신학자인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6~1986)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해설서다. 그는 젊은 시절 호흡장애를 유발하는 갑상선 질환으로 인해 인간 이성과 실존의 한계상황에 직면했으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량의 약을 복용한 후 병상 침대 맞은 편에 있던 십자가의 예수 상을 바라보면서 기적적인 치유가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신학은 이 치유사건을 통해 강단 신학에서 교회 정위적이고 신앙 우위적이며 인간 고통과 영성에 관련된 성령론적 신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틸리케는 20세기 중후반기를 풍미하던 바르트의 보편 기독론적 신학,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 틸리히의 존재론적 신학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이고 종교개혁적이며 복음적인 기독교 사상을 변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하이데거처럼 존재의 질문으로 보기보다 요한복음의 말씀에 근거하여 진리 안의 존재로 해석함으로서 당대 독일의 지성계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를 역설했다고 한다. 그는 기독교의 전통 교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인 상황에 관련지음으로서 그만의 독특한 복음주의 교의학과 윤리학을 체계화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설교가였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공부의 결론으로 삼기로 한다

 

기독교인의 현실 규정 ; 역사속의 실존    역사란 "하나님 앞의 인간 역사"이다. 하나님은 주체로서 인간에게서 역사를 수행하시고, 다시 인간을 주체로서 이 역사 속으로 보내신다. 타락한 현존 역사질서 안에 있는 인간 실존은 산상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을 통해 자신의 죄성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율적이고 자존적인 존재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존재로 결단하도록 요청받는다. 그리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의로서 주어지는 의인(義認)을 통해서만 세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은총의 질서에 속하게 된다. 역사는 심판과 은혜의 변증법적인 긴장 속에 주어져 있으며, 인간은 타락한 역사질서에 메어 있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 속에 존재하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신학적 윤리학 : 응용된 의인론    기독교 윤리는 옛 시대와 새 시대, 당위와 현실, '현존질서의 고유법칙 사랑의 무조건적 계명‘ 사이의 불일치와 긴장 사이에서 형성된 비상규율.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타락을 고려하여 자신의 무조건적인 창조명령을 수정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타협으로서의 적응은 수동적 적응인 율법과 능동적 적응인 복음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수행된다. ‘복음뿐 아니라 율법과 그에서 파생되는 현존질서의 고유법칙성’ 역시 세상을 자기파멸로부터 구하려는 하나님의 보존의지에서 기인한다. 기독교인의 윤리는 당위와 현실 사이의 '타협'이라는 형식 안에서 구체화되는 '성령론적인 윤리'로 특징지워지는데, 이는 성령이 야기하는 사랑의 자발성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행위의 지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교의학      현대신학은 데카르트적 신학과 비 데카르트적 신학으로 나뉜다. 데카르트적 신학은 계몽주의가 제창한 인간의 성숙과 이성의 해방에서 출발하면서 계시의 이해 가능성과 이해 조건을 탐구하는 신학으로 틸리히, 불트만, 브라운을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비 데카르트적 신학은 논리적 구성보다는 전통의 재생산과 기존 신학과의 유기체적인 연속성을 중시하며 주로 보수주의 신학이나 정통주의 신학이 이에 해당된다. 이 두 신학의 일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계시진리(비 데카르트적 요소)를 받아들인 후 우리의 실존과 지성으로 친숙화(데카르트적 요소)함으로써 양자를 종합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해의 영 성령이 주시는 신앙 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신앙은 신학에 우선한다

신론      우리는 신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때에만 신을 알 수 있기에 신론은 계시론으로 전개된다계시란 ① 바깥으로부터 다가오고 신앙 속에서만 파악되며 낮아심 속에 현현하는 하나님의 자기 드러냄이고② 하나님을 인간 실존 규범을 넘어서는 자로 파악하는 신 질문 일반으로서의 지시이며 ③ 하나님이 역사와 사건 속에서 행위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역사 설립의 말씀이다삼위일체 속의 하나님은 무엇보다 관계의 하나님으로창조자 하나님은 세상 속에서 인간을 그의 상대자로 부르시는 분이고구속자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로고스 속에서 창조물과 연대성 속에 자신을 주시는 분이며성령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창조적인 사역 속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현재화하시는 분이다자유와 존엄과 주권 속에서 사랑 가운데 상호교제하시는 삼위 하나님은 결코 탐구될 수 없고 단지 경배될 뿐이다.  

기독론     틸리케는 예수에 대한 신앙에서 시작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한다이 기독론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다가온 계시의 역사를 중요시하며이를 통해 그려지는 예수의 상은 역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평범한 것과 전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두 가지 역설적인 차원을 동시에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인’ 그리스도는 지성적 반성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신앙 안에서 그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그리스도의 인격은 항상 직무를 능가하며선지자 · 제사장 · 왕이라는 그의 삼중적 직무는 그의 초자연적인 메시아 인격과 관련해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화해론     틸리케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하여 화해론을 전개한다. 제사장 직무를 위해 요구되는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제한적인 사랑의 동기로 죄 없는 자가 십자가에서 자기를 주셨을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하나님에게까지 고통을 당했다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깊이그리스도가 사단에게 시험받았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시험과 시험가능성을 통해 완전히 드러난다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자신을 인간에게 제물로 줌으로서 단 한번에 결정적으로 속죄와 화해를 이루신 사건이며이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악한 세력으로부터 보호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임직의식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율법에서 복음으로의 결정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해서, 율법과 복음의 순서가 바뀌면서 율법이 지닌 심판의 성격이 무시되거나, 그리스도의 대리가  우리의 따름을 요구하는 인격적인 대리라는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부활론     부활은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직무와 관련되며 십자가의 낮아짐에서 높아진 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그리스도의 높아짐으로서의 즉위행위는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과 최후의 적에 대한 선취된 승리를 포함하나이는 여전히 십자가의 못 자국을 지니고 가장 깊은 낮아짐과의 연대 속에 있기에 영광의 신학이 아닌 십자가의 신학에 머문다예수가 구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활이 실존적 사건이 아닌 존재론적 사건(역사적 사실)이어야 하지만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검증이 아닌 신앙을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부활사건이 가지는 초역사적 불연속성으로 인한 충격과 균열을 체험하지 못한 채 부활의 사실성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없이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성령의 신학    성령은 믿음 · 사랑 · 소망의 근거이자 현재화의 힘이고성령이 사용하는 현재화의 수단은 말씀이며성령이 수행하는 현재화의 모습은 교회그리고 현재화의 배타성은 다원종교라는 세계 속에서의 복음 선포이며현재화의 추월은 종말론이다신앙과 구원은 먼저 주어진 구속의 역사에 대한 성령의 현재화 사역 속에서 일어나며기독교인은 존재적 의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법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된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말씀과 성령은 다르나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성경의 권위는 문자 자체가 아닌 성령의 증언에 대한 순종에서 나오기에영이 죽은 문자와 교리는 법적인 안전화를 추구하는 죽은 정통주의에 불과하다교회란 그의 말씀과 사역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재이자 성령이 현재화하는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다기독교 복음은 유일성과 배타성을 그 특징으로 지니나신앙이란 성령 안에서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고 강요가 불가능한 자유로운 결단이기에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에 대해 포용과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말론 성령의 현재화의 추월     종말론은 현재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구속약속과 구속기대를 그 내용으로 하며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역사를 추론하면서 섭리자에 대한 신뢰와 신앙으로 약속된 미래를 기다린다산상설교의 종말론은 나는 해야 하나 할 수 없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당위와 현실 사이의 변증법적 갈등을 잘 보여 주며현재 시대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자기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종말은 이 시대 밖 다른 곳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악마와 악은 실재하나 낮선 것을 통한 신접을 통해서만 인간과 접촉하며인간을 소외로 이끌며 언어부재와 너 부재로 분열시킨다성경은 최후의 심판과 지옥의 실재성 및 영생과 영벌의 이원론을 명료하게 주장하나잃어버린 자들은 교의학적인 진술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짧은 개인적 단상     틸리케의 신학은 문자를 숭배하는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의 신학과 실천 전반에 걸친 성령의 역동적 사역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전통적이고 종교개혁적인 복음주의 신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신앙은 신학에 우선한다"나 이 책의 부제인 "종교개혁적인 성령론적 신학"이 그의 신학 전체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모든 신학적 실천적 난관을 일거해 해결해 주는 '믿음'이라는 편리한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을 언제라도 소환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런 형태의 순환론적인 신학체계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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