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 야고보가 편지합니다
[장일] 야고보가 편지합니다
  • 장일
  • 승인 2019.03.3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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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 목사의 설교 - 야고보 1:1

서 론

야고보서 강해 첫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3.1절은 그 어느 해보다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왜냐하면 올해가 3.1 만세운동과 함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100주년 기념예배를 통해 선진들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3.1운동 이후에도 항일독립운동은 계속됐습니다. 1926년에는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1929년에는 우리 광주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운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광주학생독립운동입니다. 화정동에 가면 이 역사를 볼 수 있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례로 독립유공자의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이는 작년까지 독립유공자의 심사기준이 ‘옥고 3개월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공적이 인정되어도, ‘퇴학’을 당한 사람들은 그동안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 정부가 심사기준을 바꿨습니다. 이제는 ‘퇴학’을 포함시키고 ‘학적부 전수조사’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상범위를 확대한 일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1929년은 국내외 독립운동이 침체기에 들어간 시기였습니다. 임시정부나 만주 독립군도 거의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독립을 외치지 못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항일운동을 벌였다는 점은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더 이상 저평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는 3대 항일운동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 역사적 위상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시기입니다.

 

오늘부터 15주간 야고보서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 야고보서 또한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성경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영향일 것입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편지’라고 혹평했습니다. 이는 야고보서의 메시지가 바울의 편지처럼 은혜가 아닌 행위를 강조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결코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루터가 실수한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그동안 야고보서를 어떻게 대해 왔을까요?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편지에 비하면 야고보서의 중요성은 비교할 수 없이 적었습니다. 심지어는 굳이 설교하지 않아도 될 책으로 무시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참 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야고보가 전하는 이 메시지도 함께 놓쳐버렸습니다. 이번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단 하나만을 권면합니다. 바로 말씀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문자를 넘어서 들리는 야고보의 생생한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 앞에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세우십시오. 그렇게 될 때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 공동체에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1.야고보서의 배경

야고보가 편지합니다 첫 번째는, 야고보서의 배경입니다.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첫 시간인 관계로 야고보서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른 편지들과 동일하게 1절에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발신자가 누구입니까? 야고보입니다. 문제는 이 야고보란 이름이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신약성경에는 4명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입니다. 다음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이 둘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형제이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야고보입니다. 이상 4명의 야고보 중에서 누가 야고보서의 저자일까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본서의 저자로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야고보란 인물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야고보와 사도 바울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바로 두 사람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실제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언급이 매우 부정적입니다.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했다(요7:5)” 한마디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그러나 훗날 야고보에게 충격적인 만남이 찾아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대면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야고보는 예수님을 혈육을 넘어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주후 62년 순교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초대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지도자로 활약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수신자입니다. 참고로 신약성경에서 야고보서는 공동서신으로 분류됩니다. 이는 이 편지가 특정 교회나 개인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수신자가 누구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입니다. 알다시피 열두 지파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유대인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흩어진 열두지파’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인 유대인들과 동시에 그 믿음을 함께 고백하는 이방인들입니다. 여기에는 신약의 교회들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왜 ‘흩어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스데반의 박해로 인해 모두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진 사건이 나옵니다. 분명히 지리적으로 흩어져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흩어짐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계시록 7장에 보면 열두지파가 등장하는데, 이 종말의 때에 우리 예수님께서 흩어져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바로 그때까지 새 이스라엘인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지파의 의미입니다. 자 여기까지 최대한 쉽게 설명을 드렸는데 어떻게 머리에 들어오시나요? 배경을 살펴봤으니 이어서 야고보서의 핵심메시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야고보서 왜 중요한가?

야고보가 편지합니다 두 번째는, 야고보서 왜 중요한가?입니다. 우리가 빌립보서 강해에서도 살펴봤듯이 바울의 모든 편지들은 분명한 기록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목회적 답변입니다. 이는 야고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에 나타난 교회의 당면한 문제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간상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이해를 위해 딱딱한 설명보다는 오늘날 교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 첫 번째는 ‘두 마음’의 문제입니다. 김아무개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김집사는 처녀시절 주님을 만나 올해로 10년째 신앙생활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 김집사의 표정이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한 달 전 김집사는 고교 동창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모임 안에는 최근 부동산으로 제법 큰 돈을 만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 친구의 이야기가 모임의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김집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친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참석하는 부동산 강의가 있는데 마침 한자리가 비어있으니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금액은 500만원 시간은 주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다며 친절하게 명함까지 건네줍니다. 

친구로부터 제안을 받은 김집사는 큰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다름 아닌 부동산 강의 비용과 시간 때문입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500만원은 분명 큰 돈입니다. 문제는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상황에서 김집사의 시선이 자꾸 헌금봉투로 향합니다. “헌금을 좀 줄여가며 강의비용을 마련해볼까?” 솔직히 이러한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주일 오후 1시라는 강의시간도 걸립니다. 김집사의 교회는 예배를 마치고 식사교제와 소그룹모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부동산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예배를 마치고 바로 이동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평소 식사교제와 소그룹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했던 김집사였기에 소그룹리더에게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가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이렇게 두 마음으로 나뉜 김집사에게 야고보가 말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약 1:8).”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벗함이 하나님과 등지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약 4:4).”

교회가 당면한 문제 두 번째는 ‘행함 없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황 아무개 전도사의 이야기입니다. 황 전도사의 본업은 지방의회 의원입니다. 다만 과거에 신학공부를 했었기에 교회에서는 그를 전도사로 대우합니다. 얼핏 보면 황전도사는 매우 모범적인 신앙인입니다. 그는 주일을 빠지지 않고 철저히 지키며 많은 액수의 헌금도 드립니다. 또한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발벗고나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황전도사는 교회에서 남다른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황전도사의 모습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교회에서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황전도사의 중요한 스케줄 가운데 하나는 지역 유지들과의 만남입니다. 주중에도 몇 차례 식사를 하며 함께 골프도 칩니다. 또한 경조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이러한 만남들이 계속되니 자연스레 불법적인 청탁이 오고갑니다. 오늘도 황 전도사의 의회 사무실에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특별히 몇 달째 계속되는 민원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저소득층과 장애인에게 근로의 기회를 알아봐달라는 민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도 황전도사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황전도사의 관심은 사회의 낮은 자들이 아닌 오직 지역 유지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주일 아침 오늘은 황전도사가 대표기도를 맡았습니다. 성우와 같은 목소리로 황전도사는 기도문을 읽어내려갑니다.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특별히 소외된 이웃을 사랑을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거룩한 기도를 올리는 황전도사에게 야고보는 말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약 1:22).”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27)”

여러분 어떻습니까? 비록 가공한 사례들이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일들입니다. 정확히는 우리 신앙의 민낯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야고보서의 말씀이 필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중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첫 번째 시간으로 ‘야고보가 편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1장 1절의 간략한 말씀을 통해 야고보서의 배경과 메시지의 중요성을 살펴봤습니다. 야고보서는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음 뿐 아니라 매우 실제접인 접근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흩어진 이스라엘은 오늘날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는 야고보의 음성에 어느 때보다 귀 기울여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번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 참 믿음의 실체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동시에 우리 공동체의 영성이 말씀을 통해 참 믿음 아래 세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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