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신] 아프고 놀랍고 희망적인 이야기
[박주신] 아프고 놀랍고 희망적인 이야기
  • 박주신
  • 승인 2019.03.18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아픔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픔은 그야말로 누구나 피하고 싶은 문제이리라. 그러나 아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면해야만 한다. 커터칼에 살짝 베인 상처이든, 자동차사고로 신체 일부가 불구가 되는 아픔이든, 태어날 때부터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아픔이든, 심지어 연인에게 버림받은 아픔이든.. 이 모든 아픔들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모양으로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아픔은 아픈 것이지만, 그 아픔마저도 아름답게, 혹은 더 소중하게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픔이 계속되지 않게 하기위해, 아픔이 더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기 전에 아픔을 더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 아픔이 새로운 길을 내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나에게 세 가지 커다란,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그것은 아픔과 놀라움과 희망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아파보기도 처음이고, 이렇게 놀라보기도 처음이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희망적인 책 역시 처음이었다.

.

<아픔>

이 책은 아픔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그 아픔은 사람들의 신체적 고통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아픔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토록 아파하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으로 넘쳐난다.

직장과 학교에서 불합리한, 혹은 폭력적인 대우를 받아 우울증에 빠져있지만, 자신이 우울증인지조차 모르고 혹은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낙태를 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누군들 낙태를 하고 싶을까!) 수술대에 누워야만 했던 여성들, 심각한 근무여건으로 인해 과로에 시달리는 수련의들 등... 참으로 많은 아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 모든 아픔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었다. 사회가 형성한 거미줄에 영문도 모른 채 걸려든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며 아파해야만 했던 것이다. 원진레이온의 폐기처분 된 기계들이 한국에 들어온 이야기, 일본석면과 부산의 제일 화학이 벌이는 암담하고 음울한 이야기,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정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자들이나 트랜스젠더들이 겪어야만 하는 사회적 차별과 따가운 눈길에 대한 이야기, 세월호와 소방관들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정말로 사회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읽는 동안 숨을 몰아 쉬어야만 하는 대목이 하나 둘이 아니었고, 책장 위에 눈물 자국을 만들어야만 했던 대목들도 적지 않았다. 아픔으로 쓴 책이었고, 아픔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책을 대체 왜 쓰고, 왜 읽나. 낙태 문제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이 왜 낙태를 선택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그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p.38)

그렇다. 아픔을 대면하는 것은 아픔을 당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리라.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 그 아픔을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그 아픔이 또 다른 아픔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막을 수도 없기에, 이 책은 그렇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라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

<놀라움>.

이 책에서 만난 놀라운 이야기는 그 아픔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고통에 귀기울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회역학’이라는 용어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회역학자들은 얼기설기 얽혀서 도무지 풀어낼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질병의 사회적 원인들을 찾으려고 아픔을 당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통계들을 붙들고 싸우기로 자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것을 거미줄이라고 부른다.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는 것은 실타래를 푸는 일에 있어서 첫걸음이지만, 그 끝부분을 찾는 것으로 결코 실타래가 풀어지지는 않는다. 지난한 인내심과 합리적인 시도들과 침착한 상황 판단이 장시간 지속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복잡한 거미줄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거미줄을 만들어낸 거미가 대체 무엇이며, 무슨 종류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거미줄 위를 함께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회역학자들이다. 소위 ‘원인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들의 수고가 아니면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아픔의 현상만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사회는 아픔이 보여주는 또 다른 길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 길은 아픔이 좀 더 줄어들 수 있는 길이고 불필요한 아픔들을 방지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그 길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길이다.

또한 트라우마와 동성애, 트렌스젠더 등에 대한 이 책의 전문적인 정보들은 사실상 처음 접하거나, 나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려주는 것들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명칭 역시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그 치유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등을 설명해주는 부분들은 이전에는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저자는 그 트라우마가 결국 사회적인 것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176p.)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성애는 오래전부터 의학적으로 일관되게 질병이 아니라고 하는 설명이나 트렌스젠더는 수술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논의들도 새로운 이야기였다. 주지하듯히 동성애자들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나 역시 그러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은 뒤, 좀 더 분명해진 것은 나에게도 이 사회에도 객관적이면서 감정적이지 않은 그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희망>.

저자는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교도소 재소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교도관들이 하는 말에 적잖은 자극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마치 그들이 자신에게 ‘당신들이 뭘 알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 참 무서운 말이고 아픈 말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상황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전혀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알 수 없다는 인식 그 자체에서 이 아픈 이야기들의 희망이 시작된다.

저자는 아픔과 고통의 역학들을 덤덤하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희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망이 없다면 애시당초 이런 일을 할 수조차 없었으리라. 우리는 어떤 희망들을 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희망은 바로 공동체다. 사회의 문제를 사회가 함께 바라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219p.)는 신영복 선생의 말을 그는 묵직하게 인용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계속해서 강력하게 함께 맞는 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오래 산다”(258p.),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292p.)다는 그의 말들은 공동체가 사회적 아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토 노이라트의 배에 관한 이야기는 참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p.83)

그렇다. 우리는 사실 다 함께 같은 배에 탄 운명공동체다. 순풍을 받으며 나아갈 때는 함께 여유를 누리지만, 배가 좌초의 위기에 처하면 함께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힘을 보태야만 하는 것이다. 당장 내 선실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닐까? 조금 먼 일과 조금 가까운 일이 있을 뿐,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함께 극복해 나가기 위해 각자의 역할들을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이 책은 나에게 그러한 도전을 강력하게 던져주었다.

또 다른 희망은 거미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 그 일을 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저자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166p.)라고 말하며 지속적인 기록 작업을 해 나갈 것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사회역학자들은 충분한 데이터들이 누적되어야 유의미한 통계와 결론을 얻을 수 있기에, 태생적으로 아픔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이 학문의 딜레마라고 저자는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점에서 ‘사전주의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는 대신, 이제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해야”(283p.)한다는 것이다. 사회역학자들과 의료계, 그리고 언론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적지 않은 책임을 안고 있지만, 그러한 책임을 담담히 감내해 내려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다행히도 참 많다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닐는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 책은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 자체를 크게 흔들어 주었고, 교정해 주었다. 조금 더 넓어진 마음과 넓어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도 한 배에 탄 사람임을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감당함으로써, 이 땅의 아픔들이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오지 않도록 작은 오솔길이라도 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