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택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이택환
  • 승인 2019.03.10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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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의 설교 - 눅 4:1-13
Gustave Doré: The Temptation by the Devil(1865)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는 이야기입니다(마귀/디아볼로스, 사탄). 지난주일 예수님의 산상변모 사건도 신비한데, 오늘 이야기도 신비합니다. 산상변모 사건을 최초로 전승한 사람들은 아마도 베드로/요한/야고보 세 목격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목격자가 없어요.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마귀가 실제로 예수님 앞에 흉악한 모습으로 드러냈을까요?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여주고, 또 순간이동으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웠을까요?

누가복음을 기초로 만든 한 기독교 영화에서는 사탄이 뱀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뱀이 말도 하구요, 예수님을 데리고 순간이동도 합니다. 한편,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는 사탄이 한 인물로 등장하지요. 구두수선공 아하스페르츠, 그는 인간의 배고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를 찾아가, 그의 능력으로 굶주리는 인간들에게 빵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니라!” 며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아하스페르츠가 예수님을 격렬하게 비난하는데, 오늘 말씀에 대한 그럴 듯한 해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마귀의 유혹은 실재가 아니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 중, 내면에서 일어난 영적 싸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구성해 낸다는 것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 때 마귀가 실제로 당신 앞에 나타난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100% 믿으라! 우리에게 당부하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유연하게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약화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는 이 이야기를 기록한 누가의 의도,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뿐 아니라 마태/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시험 이야기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사건 다음에 나옵니다. 그리고 공관복음 모두, 예수님의 세례 사건 마지막 장면이 똑같습니다. 세례 받으신 예수님을 향해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소리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요? 아마도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사실을 보여줄 만한 어떤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은 모두 오늘 예수님의 광야 시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렇게 보면, 광야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시험하는 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신 분이 다름 아닌 성령, 곧 하나님의 영입니다(1-2). 이것도 공관복음이 다 똑같아요. 이 시험의 주도자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난해하긴 하지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사탄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구약의 욥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에게 고난당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탄과 한 통속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사탄이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 하나님과 대등하게 맞서거나, 심지어 하나님도 손 쓸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Philips Augustijn Immenraet(1627–1679), Temptation of Christ(1663)

사탄을 하나님과 맞서는 존재로 보는 것은 이원론입니다. 조로아스터교, 마니교가 그렇지요. 세상을 선신과 악신의 대결구도로 보는 이런 이원론은 세상에 악이 왜 득세하는가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주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사탄에게 속한 썩어질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예술, 모두 사탄이 지배하고, 하나님은 단지 교회 안에만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예술이 썩었다면 사탄에 속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썩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의 시험의 초점은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요구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 모르는 쪽은 사탄이 아니라, 실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시험은 사탄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려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기 위한 시험이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분이 메시아(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 받은 자, 즉 왕, 선지자, 제사장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이지요. 유대사회에서는 원래 한 사람이 이 세 역할을 동시에 담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마지막 종말의 메시아는 이 세 직분을 총괄하는 메시아입니다. 그가 장차 이스라엘을 온갖 압제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도래하는 새로운 시대가 유대의인의 하나님 나라지요. 그런데 누가복음은 그 메시아가 단지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닌, 온 세상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도 온 세상의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 장면과 사탄의 시험 사이에, 예수님의 긴 족보를 소개합니다. 그 족보는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을 거쳐, 온 인류의 조상 아담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담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누가는 그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유대인의 메시아일 뿐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아이심을 보여줍니다. 누가는 그의 또 다른 책 사도행전에서, 이를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표현으로 다시 진술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이 과연 그 온 인류의 대표, 즉 온 세상의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시험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 세상의 메시아가 왜 굳이 이런 시험을 받아야 할까요? 첫 번째 사람 아담(아담=사람)이 그 시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로 인해 세상에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이제 새로운 해방의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사람, 즉 새로운 아담이 그 실패를 되돌려놓아야 합니다. 그 일을 할 자가 바로 온 인류의 대표, 온 세상의 메시아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이 시험은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시험에 대한 두 번째 아담의 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문제는 물론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고 있는 상징은 동일합니다.

그 점에서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사탄의 유혹은, 일찍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는 뱀의 유혹과 같은 상징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아무 것도 부족할 것 없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여 선악과를 먹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은 사십일을 주리신 상태에서, 사탄의 유혹에 굴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 즉 사람이 떡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깨뜨리고, 사람의 생명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그분과의 관계에 있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첫 시험에 승리하셨습니다.

물론 아담이 배가 고파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닙니다. 배고픔보다 더 갈급한 권력의 욕구,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욕망 때문에 선악과를 취한 것이지요. 이에 사탄은 예수님을 천하만국이 보이는 높은 곳으로 이끌고 가서 말합니다. 5-7절,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아담이 선악과를 덥석 문 것도 바로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거짓입니다. 모든 권위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욕망에 눈이 멀어, 사탄의 그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탄의 편에 섰지요. 그러나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며 사탄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로써 두 번째 시험에서도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10-11절,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역시 아담의 시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사탄을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습니다. 그 결과는 에덴에서의 추방, 곧 죽음이었지요(하나님과, 자연과 사람과의 단절!).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기 말씀(6:16)으로 사탄의 세 번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참 메시아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광야시험의 의미입니다.

그날 이후 얼마 동안 사탄이 예수님을 떠납니다(13). 다시 온다는 것이며,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온 세상의 메시아임이 온전히 드러난 곳은 광야가 아닌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광야의 유혹은 아무 증인도 없는, 어쩌면 예수님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영적 시험일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개된 시험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께서 그 십자가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대적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를 통해서도 역사했습니다(마 16:22-23).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은 것도 사탄이었습니다. 심지어 사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에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온 세상의 메시아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활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온 인류를 대표하는 참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된 바로 우리들입니다. 오늘 설교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심의 승리 이후에도 세상이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누군가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궁금한 것 한 가지, 지금 나의 삶이나 우리 주변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말을 도저히 모르겠다. 뭐 하나의 증거라도 있어야 믿을 텐데 하나도 안 보인다.” 오늘 말씀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실감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아마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비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비밀을 맡아, 그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에 전할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입니다. 그것을 실감하는 정도가 우리의 믿음이요, 우리의 영성입니다.

“주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눈과 귀와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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