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환]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본 자
[이택환]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본 자
  • 이택환
  • 승인 2019.03.0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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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목사의 설교 - 누가 9:27~36
Peter Paul Rubens(1577~1640), 예수의 변모(1605)

오늘은 주현절 후 여덟 번째 주일인 동시에 산상변모주일입니다. 동방교회는 4세기부터, 그리고 서방교회는 9세기부터 산상변모주일을 지켜왔습니다(1457년부터 8/6,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로 정함) 오늘날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따르는 세계의 모든 개신교회도 산상변모주일을 지키지요(성공회, 8/6, 주의 변모 축일).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교회력과 성서정과를 채택하지 않는 교회가 많기 때문에, 주현절이나 산상변모주일 모두 생소한 편입니다. 주님의 산상변모란, 오늘 복음서 9장 29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이 산 위에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하시고 입고 계신 옷도 희어져서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을 말합니다.

당시 함께 있었던 베드로/요한/야고보는 깊이 졸고 있어서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자 제자들이 온전히 깨어(디아그레고레오, fully awakened), 이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된 것을 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태/마가/누가와 달리 요한은 그날 변모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요한복음에 그 내용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더욱 의미심장한 말을 하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1:14)

그렇다면 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산상변모 사건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려했을까요? 28절은 주님의 산상변모 사건이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과연 어떤 말씀인가? 바로 앞의 27절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그리고 이 말씀 뒤에 곧바로 주님의 산상변모 사건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 사건이 다름 아닌, “일부 제자들이 죽기 전에 목격한 하나님 나라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목격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중의 몇 사람 예를 들면, 영국의 펄시 콜레(Percy Thomas Collett, 1902~1998)라는 목사는 5일 동안 천국여행을 하면서, 100가지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천국에 가고 싶은 열망에 잠도 적게 자고, 음식도 적게 먹고, 세상의 모든 쾌락을 멀리하면서 7년 동안 기도한 결과, 마침내 몸에서 영이 빠져나와 우주 공간을 지나 천국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천국은 지구의 80배가 되는 거대한 천체라고 하는데, 천국 주변에는 죽기 전에 가까스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천사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해요.

그는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에 자신이 목격한 것을 기록했습니다. 1986년에 한국에도 번역되어 50만부가 팔렸다고 하지요.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가령 펄시 콜레는 천국에서 엘리야로부터 자신이 죽기 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들었다는데,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님이 직접 확인해 주셨다는데, 이미 1998년에 그가 사망했습니다. 휴거도 없었지요. 휴거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셔서 택한 사람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휴거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요? 펄시 콜레 같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7년 대 환란과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며 대부분 죽습니다.

펄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의 속편인 <100가지 천국 비밀>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이장림 목사입니다. 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사건으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한 인물이죠. 다미란 그의 책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에서 나온 말인데, 당시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이 책을 추천하고 성도들이 열심히 읽었습니다. 펄시 콜레나 이장림 목사 탓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활동할 무대를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당시 그 책 내용이 궁금해서 사서 보았습니다. 시리즈물인데 1편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2편은 <하늘 문이 열린다>, 3편이 <경고의 나팔>입니다.

그 책을 읽고, 그렇지 않아도 집이 좁은데 쓰레기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싶어 이사 갈 때 버렸습니다. 후회됩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이비종말론의 대표적인 책이라, 교회사적으로 소장가치가 있거든요? 그 책에 나오는 내용, 가령 90년대 초에 휴전선이 열린다(거짓!), 그 때 북한에 선교하러 들어간 청년들이 순교한다(거짓!). 92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지만 말하지 않겠다. 3김이 아닌 것만 밝힌다(거짓!). 결국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것까지, 그의 종말예언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지요. 그러나 정작 그는 사기죄로 1년형만 살고 나와, 지금도 마포구 성산동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92년 휴거사태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한동안 천국여행자들이 잠잠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뿐이고, 90년대 말에는 성남제일교회 故박용규 목사가 전국 교회를 누비며, 자신이 임사체험 중에 경험한 천국과 지옥을 간증했습니다. 1998년, 제가 교육전도사로 있던 Y교회가 그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했기에, 저도 그의 천국설교를 직접 들었습니다. 박용규 목사에 따르면, 예수 믿어 천국은 갔지만 평상시 전도, 봉사, 십일조, 성경읽기, 주일성수 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 가서도 개털 모자를 쓰고 판자 집에 산다고 합니다. 반면, 전도, 봉사, 십일조, 성경읽기, 주일성수 잘 한 사람들은 천국에서 호화맨션에 살고 있다고 하지요.

주안장로교회 설교 동영상 중
주안장로교회 설교 동영상 중

2010년 전후로는 과거 충현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던 신성종 목사의 천국간증이 인기입니다. 그가 천국에 가서 보니까 12개의 반열이 있다고 해요. 최고 반열은 순교자, 두 번째 반열은 전도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평생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으로 봉사해 온 사람들은 제 6반열, 교회를 많이 건축한 사람들은 제 7반열, 신학교 교수나 선교사들은 제 8반열인데, 특히 선교사들이 여기에 속하는 것은 선교사입네 하면서, 실제로는 선교는 하지 않고, 교인들에게서 선교비만 뜯어내서 그렇다고 합니다. 마지막 열두 번째 반열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와 죽기 직전에 예수 믿은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할까요? 불신자를 전도하고,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한 교육목적이라고 하기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거짓말은 안 되지요. 수많은 광신도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니까, 스스로에게 속고 또 일부러 자신을 속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부흥회 때 책을 팔아서 얻는 수익과, 국내/국외 수많은 교회들을 순회하며 챙기는 부흥회 사례비만 해도 수억 원입니다. 돈벌이가 그들의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1992년에 휴거가난다고 외친 이장림 목사도 1993년 만기 채권을 샀다는 거 아닙니까? 이들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기독교 사기꾼들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천국/지옥 여행기는 사실 14세기에 나온 단테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의 패러디에 불과합니다. 신곡에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와 함께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며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죄와 벌, 구원에 관한 생각,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세계관 등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리가 신곡을 읽을 때, 무엇보다 중세를 풍자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읽는 것이지, 그것을 천국과 지옥을 사실 그대로 소개한 논픽션 작품으로 읽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오늘날 천국/지옥 간증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100% 사실로 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그렇게 믿기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서 말씀에 의하면 소위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았던 제자들조차 천국의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모세나 엘리야가 천국의 호화 맨션에 살고 있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예수님과 그들을 위해 초막을 짓겠다고 말하지요. 게다다 제자들은 오늘날 천국여행자들이 천국에서 유유자적했던 것과는 달리,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그들이 왜 무서워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영광’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의 ‘영광’중에 나타났고, 제자들이 본 것도 그들이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서 광채가 났다는 것도, 예수님의 영광을 달리 표현한 것이지요. 오늘 구약 출애굽기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34절은 구름이 밀려와 제자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한 말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그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그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종교학에서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신의 영광을 보면 큰 두려움에 휩싸인다고 하지요(누미노제 Numinose). 그래서 일찍이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 죽게 되었다고 한탄했습니다. 바울도 영광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땅에 엎드러져 눈이 멀고, 3일간 먹고 마시지 못했습니다.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처럼 되었지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나라의 실체를 온전히 목격한다면 큰 두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거룩한 부활의 몸을 입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여전히 죄의 몸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독교 사기꾼들이 우주 어딘가에 있다고 말하는 저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분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8일 전, 제자들에게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하실 때, 동시에 당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함께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특별히 우리는 오늘 말씀 가운데 31절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이야기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별세’라는 말은 단지 죽는다는 말의 높임말 아닙니다. 여기에는 헬라어 ‘엑소더스’, 곧 우리에게 익숙한 출애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별세(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는 바로 우리를 구원과 해방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출애굽, 즉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는 구원의 통로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의 별세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의 엑소더스가 이 세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산상변모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임을 보았습니다. 그 나라를 열렬히 사모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우리는 그 나라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출애굽이 이미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죽기 전에 이 땅에 도래한 그 나라를 미리 보며(맛보며, 일부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앞의 어떤 사람들처럼 해괴한 천국 여행을 다녀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경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오직 영광의 주님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관건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 곧 3월 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 안에 가득한 온갖 번잡한 소음을 가라앉히고 그 안에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사순절, 그리고 그 말씀 안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사순절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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